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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의 길위의 이야기] 아버지의 얼굴 쓰다듬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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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의 길위의 이야기] 아버지의 얼굴 쓰다듬으며

입력
2005.01.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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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에 한번 아내와 함께 농협에서 운영하는 대형시장에 가 장을 봐온다. 특히 농산물 코너에 진열된 상품들은 그것을 사든, 사지 않든 물건 값을 꼼꼼하게 살핀다. 그런 나를 아내는 시장을 보러 나온 게 아니라, 시장조사하러 나왔다고 말한다.

그런데 가끔 물건 값을 보다가 턱, 하고 숨이 막힐 때가 있다. 진귀한 남방과일 몇 개와 또 잘 생긴 사과와 배를 마치 꽃꽂이하듯 예쁘게 포장하여 7,8만원씩 받는 선물용 과일 바구니 가격에도 놀라지만, 그보다 더 놀라게 되는 것은 우리 농산물의 터무니없이 낮은 가격에 대해서이다.

어른 주먹만하다면 거짓말이고, 아이들 주먹만한 양파를 여덟 개 넣어 묶은 그물망 하나 값이 700원이다. 창고 보관비와 운임, 시장 이문을 포함한 가격이 그 정도라면 지난 가을 산지에서는 씨앗 값과 수확 품삯조차 나오지 않아 그냥 밭에서 썩혀내던 물건이라는 뜻이다. 저 양파 100망이 저쪽의 선물용 과일바구니 한 개 값이란다.

붉은 그물망에 얼멍덜멍 담긴 양파가 고향에서 농사를 지으며 사는 내 아버지와 형님들의 못난 얼굴 같아 자꾸 만져보고, 또 만져본다. 아버지의 얼굴을 쓰다듬는데 아들은 자꾸 화가 난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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