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등만이 살아 남는다." 적자생존의 기업환경에서 이만큼 분명한 명제는 없다. 초일류, 세계 1등, 월드베스트…. 이건희 삼성회장과 구본무 LG회장, 정몽구 현대·기아차회장 등 국내 대표 기업의 오너들이 매년 신년사에서 빠짐없이 직원들에게 요구하고 일깨우는 주문이기도 하다.
■ 끊임없는 혁신·과감한 투자/ 1등 삼성의 ‘힘’
매출액 135조, 세전이익 19조. 삼성그룹이 지난해 올린 성과다. 매출액은 우리나라 전체 1년 예산과 맞먹고 총수출 527억 달러는 우리나라 전체수출액 2,542억 달러의 20.7%를 차지한다.
삼성그룹의 눈부신 성과는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간단하다. 세계 1등 상품을 생산하는 세계 최고 회사를 많이 거느렸기 때문이다. 삼성의 비공식 집계에 따르면 20여개 제품 분야에서 세계 1위에 올라 있다. 우리나라 ‘세계 1등 상품’의 본산인 셈이다.
삼성전자는 9개 제품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1등이다. 메모리분야는 10년전부터 1등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29%의 세계시장 점유율을 자랑하는 D램은 1992년, 시장점유율 26.9%인 S램은 95년부터 최고 자리를 지키고 있다. 2002년부터 1등을 놓치지 않고 있는 플래시메모리는 점유율이 20%에 달한다.
또 D램과 S램, 플래시메모리 등 여러 반도체를 하나의 반도체 칩으로 합친 멀티칩패키지(MCP)는 지난해 시장점유율 29%로 1위에 올랐다. 이밖에 초박막액정화면(TFT-LCD·시장점유 22.7%)과 VCR(24.8%), LCD구동칩(LDI) 등도 3~5년 전부터 1위를 지키고 있다. 삼성전자는 이 같은 1등 제품을 바탕으로 지난해 10조원대 영업이익 시대를 열며 사상 최대의 실적을 기록했다. 브랜드 조사 기관인 ‘인터브랜드’는 삼성전자의 브랜드 가치를 100억 달러가 넘는 것으로 평가했다.
삼성은 1등 제품을 더욱 늘리기 위해 끊임없이 도전하고 있다. 노키아에 이어 2위인 휴대폰 애니콜은 물론이고 플라즈마디스플레이패널(PDP)·액정화면(LCD) TV, LCD모니터, 디지털캠코더 등 디지털미디어분야에서도 올해를 세계 1등 기업 진입의 원년으로 선언했다. 여기에 P램 등 차세대 메모리 반도체와 모바일 중앙처리장치(CPU) 등 차세대 복합칩, 컨버전스폰, 유비쿼터스, 로봇, 4G 휴대폰 등 차세대 전략상품에 대한 연구개발에도 온 힘을 쏟고 있다. 삼성SDI도 PDP TV에 이어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수동형(PM) 시장점유율이 지난해 40%를 차지하며 1위에 오르는 등 상승세를 타고 있다. 삼성 관계자는 "1등 삼성은 경영진의 리더십과 책임감, 임직원들의 의욕과 실행력 덕분에 가능했다"며 "그러나 무엇 보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를 끊임없이 혁신해 새로운 자기 경쟁력을 갖추려는 자발적인 노력"이라고 강조했다.
김동국기자
■ 세계시장 통합 ‘수확체증의 법칙’ 시대로
지난해 "일류는 더욱 발전하고 이류와 삼류는 힘없이 쓰러지는 냉엄한 생존의 원리가 그 어느 때보다 뚜렷해질 것"이라며 1등을 통한 생존을 주장했던 이건희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도 초일류기업 달성을 강조했다. 구본무 회장은 새해 ‘일등경영을 통한 일등LG’를 주문했고, 정몽구 회장도 ‘세계 초일류’를 3대 핵심과제 중 하나로 제시했다.
오너들이 끊임없이 세계 최고를 요구하는 것은 ‘세계 1등’이 전략목표가 아닌 생존의 전제조건이 됐기 때문이다. 개별 국가의 경제울타리 안에서 각 분야에서 2,3개 기업이 시장을 분할해 생존을 도모하던 시대는 이미 끝났다. 국가간 경제 경계선이 무너지고 세계경제가 단일시장으로 통합된 상황에서는 1등이 아니면 살아남을 수 없는 게 현실이다.
LG경제연구원 김주형 상무는 "소련이 붕괴되고 냉전체제가 해체된 뒤 세계경제가 급속히 하나의 단일시장으로 통합되면서 경쟁력이 가장 강한 기업만 살아 남는 상황이 됐다"며 "세계 1등은 기업들의 절박한 과제"라고 말했다.
세계 1등은 단순히 시장에서 차지하는 지위의 변화만이 아니라 2등과 극명하게 차이가 나는 이익으로 기업의 생존을 담보해준다. 삼성경제연구소가 지난해 7월 내놓은 ‘글로벌 기업의 최근 동향과 부침요인’에 따르면 세계 500대 기업간 2002년도 순이익 편차가 전년에 비해 89% 증가했다. 특히 2002년 세계 통신기기 업계가 147억 달러의 대형 적자를 낸 와중에도 선두 기업 노키아는 32억 달러의 흑자를 기록했다. 산업 전체가 43억 달러의 적자를 보인 종합전자 분야에선 삼성전자가 60억 달러 흑자라는 눈부신 성과를 이끌어냈다. 이처럼 ‘세계 1등’ 기업의 위력은 불황기에도 뚜렷하게 발휘된다. 때문에 기업들은 부단한 연구개발(R&D)과 과감한 투자는 물론 시장의 변화에 맞는 자신만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전력을 쏟고 있다.
‘1등 기업 생존원리’는 경제원칙마저 바꾸고 있다. 세계경제에서 비중이 높아지는 정보기술(IT)분야에서는 기업의 생산이 증가할수록 비효율성도 높아져 수확이 줄어든다는 전통적인 ‘수확체감의 법칙’에 정반대인 ‘수확체증의 법칙’이 적용되고 있다. 일단 1등에 올라서면 확보된 네트워크와 규모의 경제 등으로 1등 기업의 이익은 더욱 증가하지만 하위 기업들은 도태된다는 설명이다. 김 상무는 "수확체감의 법칙이 통용되는 시장에서는 2, 3위의 기업이 공존할 수 있지만 수확체증의 법칙에선 2등이 설 여지가 없다"며 "수확체증의 법칙을 적용할 수 있는 분야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김동국기자 dkkim@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