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해 동안 가장 많은 화제를 일으킨 TV 프로그램 중 하나가 MBC ‘신강균의 뉴스서비스 사실은’일 것이다. 래리 킹을 연상케 하는 멜빵을 걸치고 높은 톤의 목소리로 프로그램을 이끌던 진행자는 여느 시사프로그램과 확실히 차별됐다. 많은 사람들이 소홀하게 여기던 이슈들을 끄집어내어 집요하게 공략하는 포맷은 극단적인 팬과 적을 양산하고 상도, 욕도 충분히 받았다.
이 화제의 프로그램이 막을 닫게 되었다. 그 직접적 계기가 된 소위 ‘명품 핸드백 사건’에 대해서는 이런 저런 보도들이 계속되고 있으니 더 언급할 필요가 없겠다. ‘…사실은’의 주요 표적이었던 일부 미디어의 기사 행간에 사뭇 통쾌해 하는 분위기가 숨어있음 또한 굳이 강조할 필요가 없겠다. 종영을 아쉬워하는 시청자들과 인과응보라며 박수를 치는 시청자들이 설전을 벌이는 인터넷 게시판의 모습도 상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기자의 윤리적 문제, 연줄 위주의 한국사회, 블로그의 위력 등 ‘…사실은’의 종영이 던진 생각거리는 만만치 않게 많다. 그러나 이 기회에 다시금 고민해야 할 가장 큰 문제는 ‘미디어비평 프로그램’의 본질이 아닐까? ‘…사실은’의 생명은 금기시되던 매체간 비평을 활성화한 점이다. 한 울타리에 있다는 이유로 서로의 못난 모습을 적당히 눈감아주는 모습에서 탈피하여 "사실의 실체에 더욱 가까이 가고자 한다"는 취지에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문제는 사실의 실체에 빨리 다가가고자 하는 욕심이 앞서서 준비되지 않은 과속을 일삼았다는 점이다. 작년 말 ‘…사실은’은 ‘터뜨리고 보는 국회의원과 검증없이 받아쓰는 언론’을 ‘폭로 저널리즘’이라는 용어로 비판했다. 사실 ‘폭로 저널리즘’과 ‘…사실은’이 지향하는 ‘탐사 저널리즘’은 종이 한 장 차이다. 준비가 부족한 상태에서 탐사결과를 밝히는 것은 폭로와 다를 바 없다. 지난 한해 ‘…사실은’이 칭찬 받았던 사안들은 대개 ‘잘 준비된’ 폭로들이었고, 비판 받았던 사안들은 반대로 ‘성급한’ 폭로들이었다.
따라서 MBC가 새로이 시작한다는 ‘미디어비평 프로그램’의 목표는 신중함과 준비성이어야 한다. 뉴스 애프터서비스(AS)는 꼭 필요한 작업이지만, 그렇다고 AS를 믿으며 불완전한 제품을 시장에 내놓을 수는 없는 일이다. 작년에 있었던 한나라당 전여옥 대변인 인터뷰 사건이나 편집 및 자막관련 실수들은 모두 서두름의 결과이다. 그냥 서두르다가 실수한 것이 아니고, 정해진 결론을 향해 과속하다가 저지른 실수들이다.
취재원이 항상 상냥하게 인터뷰를 응대하란 법은 없다. 기어코 인터뷰를 성사시키거나 대안을 찾는 것이 성실한 저널리스트이다. 그런데 취재원이 기자를 피했다는 사실 그 자체를 마치 하나의 증거로 삼는 일종의 관습은 성급함에 무책임을 더한 꼴이다. 일주일이라는 기간이 신중함을 요구하기에 너무 짧다면, ‘탐사’를 위해 ‘속보’를 포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효과’를 위해 ‘신중’을 버린다면, 이야말로 선정주의이다.
‘…사실은’의 초심은 계속되길 기대한다. 그러나 그 허물은 극복되어야 한다. 가뜩이나 정파성이 강화되는 한국 언론의 속내를 깔끔하게 도려내어 보여주는, 그래서 정말로 ‘사실의 실체에 다가가는’ 새로운 미디어비평 프로그램을 기대한다.
연세대 영상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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