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개혁이 시급하다. 지난 해 17대 국회가 보여준 파행과 비효율은 국회 개혁의 공감대를 확산시켰다. 국민의 따가운 눈초리를 의식해 국회에서도 스스로 개혁의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문제는 국회 개혁의 수단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법과 제도의 미비로 인해 국회가 삐걱거린다면 법과 제도를 고치면 된다. 그러나 법과 제도가 없거나 잘못돼서 그런 것이 아니라 국회의 잘못된 관행이나 국회의원들의 그릇된 의식 때문에 국회가 파행되고 비효율적으로 운영된다면 사정이 달라진다. 관행을 제도를 통해 고친다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닐 뿐더러, 의식을 제도로 바꾼다는 건 더더욱 어렵다. 또 국민의 대표이자 개개인이 독립된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의 행동 하나하나를 규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않다.
예컨대 원내교섭단체의 독선적이고 무책임한 국회운영은 제도의 개선으로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 원내교섭단체를 없애자는 주장도 있지만 효율적인 의회운영과 원내 과반의석을 차지한 정당의 독선을 막기 위해서도 원내교섭단체 제도는 유지하는 것이 좋다. 다만 원내교섭단체들이 갖는 무원칙한 특권을 대폭 줄이고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하지 못하는 소수 정당을 의회운영에 참여 시키도록 하면 된다.
현재 원내교섭단체 구성 요건은 20석 이상이다. 구성요건을 의석의 3%(9석) 정도로 낮추면 민주노동당과 새천년민주당도 원내교섭단체가 된다. 아니면 원내교섭단체를 따로 등록하게 하지 않고 5석 이상의 의석을 갖는 정당을 원내교섭단체로 인정할 수도 있다. 3%나 5석이라는 기준은 현재의 비례대표 배분 기준이다.
영국 의회의 ‘야당의 날’ 제도를 응용해 ‘비교섭단체의 날’을 운영하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다. 국회가 열리면 일정한 날을 비교섭단체의 날로 지정해 비교섭단체가 제출한 안건만을 다루도록 하거나, 비교섭단체가 동의한 안건만을 처리하도록 하는 것이다. 교섭단체들의 비협조로 비교섭단체의 의안들이 충분히 다루어지지 않으면 비교섭단체의 날이 다음날로 자동적으로 연장되도록 하면 된다.
또 지난해에는 제출된 안건을 논의조차 못하게 하는 입법권 포기행위들이 자주 발생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제출 뒤 일정기간 동안 다루지 않은 안건은 자동 상정되도록 하고, 자동 상정된 안건들이 최우선적으로 처리되도록 하면 된다. 이렇게 하면 소위를 통과한 안건을 상임위원회에서, 상임위를 통과한 안건을 본회의에서 일정기간 동안 미뤄놓는 일들도 없어질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을 제도로 개선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의원들이 면책특권이나 불체포특권을 국민을 위해 효율적인 의정활동을 하는데 쓰지 않고 악용, 남용하는 것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 허위사실을 폭로하거나, 동료의원들이나 특정인, 또는 국민의 명예를 훼손하는 발언은 막아야 한다. 부패 비리를 저지른 의원을 감싸는 일도 없어져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면책특권이나 불체포특권을 아예 없애서는 안 된다. 대정부질문은 국회가 정부를 견제하는 중요한 수단이므로 없애서는 안 된다. 무책임한 폭로나 인신공격, 정쟁의 수단으로 전락했다고 해서 의제 외의 발언을 전면적으로 통제하려는 것도 좋지 않다. 긴급한 현안이 발생해도 국회가 바로 다루지 못하는 일들이 일어나게 된다.
국회개혁에서 주의할 것은 생산성과 효율성을 강조해 국회나 의원들의 자율성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의원들의 발언과 행동을 일일이 규제해도 안 되고, 의원들이 최소한의 합리적 사고, 또는 양심에 따라 의정활동을 했으면 일어나지 않았을 문제들까지 규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물론 그렇다고 의원들이 비합리적으로, 비양심적으로, 비효율적으로 의정활동을 하는 현실을 그냥 놓아둘 수는 없는 일이다. 정말 딜레마다.
손혁재 참여연대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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