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구대 한 구석에서 당구공을 치면 쿠션(가장자리의 안쪽 면)에 몇 번이나 부딪힌 후 다른 구석에 도달할까? 실제 당구에서는 공의 회전이나 마찰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예측이 쉽지 않지만, 마찰이 없는 이상적인 당구대를 가정해보자. 또 당구공의 정 중앙을 맞춰 공이 쿠션과 45° 각도로 굴러가며, 쿠션에 반사돼 45° 각도로 튕겨 나와 입사각과 반사각이 같다고 하자.
이처럼 몇 가지 가정을 할 때, 가로와 세로의 비가 m:n인 당구대에서 공이 구석에 도달하기까지 쿠션에 반사되는 회수는 m+n-2가 된다. 예를 들어 그림에서 왼쪽의 당구대는 가로와 세로의 비가 1:2이다. 즉 m=1, n=2이므로 m+n-2=1이 된다. 예컨대 한쪽 구석에서 친 공은 쿠션에 한 번 반사된 후 반대편 구석으로 굴러간다. 그림에서 가운데 당구대는 가로와 세로의 비가 2:3이며 이 경우 m+n-2=3이 된다. 마찬가지 방법으로 가로와 세로의 비가 3:5인 오른쪽 당구대에서는 m+n-2=6이 된다.
다리가 네 개인 탁자의 다리들이 바닥 면에 완전히 닿지 않아 덜거덕거리는 경험을 해보았을 것이다. 그런데 다리가 세 개인 탁자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사진기를 세워놓는 삼각대(tripod)나 토지 측량기구의 다리가 세 개인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 삼각대를 세우면 경사진 곳이나 평평한 곳이나 바닥의 굴곡과 상관없이 세 다리가 모두 바닥에 닿아 안정적인 상태가 된다. 또 다리를 다쳐 목발을 짚고 다니는 경우도 성한 다리 하나와 목발의 두 다리, 모두 세 개의 다리로 지탱한다. 이처럼 세 개의 다리로 수평을 유지하는 상황은 몇 개의 점에 의해 평면이 결정되는가 하는 기하학의 문제와 관련된다.
두 점을 지나는 선은 무수히 많이 그릴 수 있다. 그러나 두 점을 잇는 직선은 하나밖에 없다. 수학적으로 표현하면 두 점은 ‘직선의 결정 조건’이 된다. 마찬가지로 세 점이 주어지면 하나의 평면이 결정되므로 세 점은 ‘평면의 결정 조건’이 된다. 세 개의 다리가 바닥에 닿아 생기는 세 점은 하나의 평면을 만들어 내므로, 세 발 탁자는 언제나 수평을 유지한다. 그러나 네 점은 특수한 경우에만 한 평면을 결정한다. 네 점이 하나의 평면을 결정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은 네 다리가 동일한 평면에 있지 않아 덜거덕거릴 수 있다는 것을 설명해 준다.
요즘 거의 사라졌지만, 예전에는 그림과 같이 마름모(네 변의 길이가 같은 사각형) 모양이 반복적으로 배치된 철창을 흔히 볼 수 있었다. 철창을 접었다 펼 때 변의 길이는 고정되어 있지만 마름모의 모양은 변한다. 주어진 길이를 한 변으로 하는 마름모는 한 가지가 아니라 여러 가지이기 때문이다. 이를 일반화하면 네 변이 주어졌을 때 이 변들로 만들 수 있는 사각형은 여러 개이다. 그러나 삼각형이 되면 상황이 달라져 세 변이 주어졌을 때 삼각형의 모양은 한 가지로 고정된다. 철창의 무늬를 삼각형이 아닌, 마름모 모양의 사각형을 선택한 것도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기하학은 2차원 평면이나 3차원 입체 공간에서 성립하는 다양한 성질을 탐구하는 분야로, 일상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당구공의 반사 횟수는 당구대의 가로와 세로의 비에 따라 계산된다. 또 세 발 탁자와 네 발 탁자는 평면의 결정 조건과 연관 지을 수 있으며, 철창에 배치된 반복적인 모양은 변이 주어졌을 때 결정되는 다각형의 유일성 문제로 바꾸어 생각할 수 있다. 이처럼 일상적 상황의 이면에 있는 수학적 원리를 파악하고 공식화하는 것은 우리의 사고를 단련하는 효율적인 ‘정신 체조’가 될 것이다.
박경미 홍익대학교 수학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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