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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만금보다 값진 80평생 나눔의 삶/ 독립운동가 후손 김춘희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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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만금보다 값진 80평생 나눔의 삶/ 독립운동가 후손 김춘희 할머니

입력
2005.01.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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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의 후손으로 평생 옥탑방 신세를 면치 못하면서도 남을 위해 수입의 3분의 2 이상을 나눠주는 삶을 실천해온 80대 할머니가 자신에게 마지막 남아 있는 재산과 몸을 모두 이웃을 위해 바쳤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12일 김춘희(80) 할머니가 자신이 죽으면 옥탑방 전세금 1,500만원을 모두 기부키로 약정하고 장기와 시신 기증에 대한 서약도 마쳤다고 밝혔다. 김 할머니는 통장에 남아있는 예금 1,000만원도 사후(死後) 기부를 약정할 계획이다.

김 할머니가 전세금을 내놓은 서울 양천구 신정동 옥탑방은 콧구멍만한 주방과 화장실이 딸린 3평가량의 누추한 공간이다. 그러나 이는 김 할머니가 평생 모은 재산이다. 할머니는 하루 단 두 끼만 먹는다. 점심은 인근 사회복지관에서 주는 도시락으로, 저녁은 텃밭에서 키운 채소를 갈아먹는다. 자신은 이렇게 살면서도 정부에서 1개월에 35만원가량 나오는 생계유지비 가운데 10만원 정도만 생활비로 쓰고 나머지는 모두 불우이웃 돕기 성금으로 내놓는다. 김 할머니는 "평생 힘들게 살아왔기 때문에 어려운 사람들의 사정을 잘 안다"며 "기부한 재산이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할아버지가 러시아에서, 아버지가 강원지역에서 독립운동을 펼쳤던 김 할머니는 경성제대 의대병원에서 간호사 생활을 하다 해방 후 고향인 강원 금화군 창도면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인민군이 교회에 다니지 못하게 하는 등 탄압이 심해 단신으로 월남했다. 고향에 남은 할머니와 부모, 언니와 두 동생은 더 이상 만날 수 없게 됐다. 서울에서 온갖 잡일을 하며 어렵게 살아가던 김 할머니는 한국전쟁 직후 우연히 서울에서 만난 고향 이웃으로부터 청천벽력 같은 얘기를 들었다. 가족들이 전쟁 중에 인민군에게 몰살됐다는 것이었다. 김 할머니는 가족을 따라 죽을까도 생각했지만 마음을 고쳐 먹었다. 자신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이었다.

김 할머니는 그 후 결혼도 하지 않고 주위의 불우한 이웃을 위해 투신했다. 충남 홍성의 한 고아원에서 10여년간 생활하며 고아들을 돌봤고 이후 서울 구로구 고척교회로 기거를 옮겨 나눔의 삶을 계속했다. 김 할머니는 생선가게와 행상 등을 하며 번 돈을 불우이웃성금으로 기탁했고 틈만 나면 장애인 시설에 나가 봉사활동을 했다.

김 할머니는 평생 이웃사랑을 통해 자신을 비우는 성자 같은 삶을 살아왔지만 아직까지 버리지 못하는 것이 있다. 바로 가족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다. 김 할머니는 "기증한 장기를 모두 좋은 곳에 쓴 후 시신을 화장해 고향 가까운 곳에 뿌려줬으면 좋겠다"며 "그렇게라도 다시 한번 고향 땅을 밟아보고 싶다"고 말했다.

최영윤기자 daln6p@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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