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의 맹점과 당국의 무관심으로 노부모를 모시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세금감면이나 전기료 등 공과금 산정 과정에서 오히려 불이익을 받고 있다. 제도개선을 촉구하는 민원이 관련 부처에 잇따르고 있지만, 정부는 세수부족과 형평성을 이유로 소극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
김모(40)씨는 70세의 부친을 모시고 사는 바람에 지난해 연말정산에서 불이익을 받았다. 무주택 근로자인 김씨는 장기주택마련저축에 가입하면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다는 은행 직원의 말을 듣고 가입했으나 소득공제를 받지 못했다. 소득공제를 받으려면 무주택 근로자이면서 세대주여야 하는데 주민등록 상 부친이 세대주로 돼 있기 때문이었다. 김씨는 "아버님이 세대주이지만 경제력이 없어 주택마련저축에 가입할 수 없다"며 "부모를 모시는 근로자에게 혜택이 돌아가게 하기 위해서는 소득공제 대상을 세대주로 정하는 것보다 한 세대에 한 사람씩으로 바꿔야 한다"고 재정경제부에 민원을 제기했다.
서민의 전기료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한국전력이 운영 중인 ‘1주택 수가구 요금제도’에 대해서도 부모 봉양가구의 민원이 쇄도하고 있다. ‘1주택 수가구 요금제도’란 동일 주택에 생계를 달리하는 여러 가구가 함께 거주할 경우 세대별로 전기료를 부과하는 제도이다. 이 제도가 적용되면 전력 사용량에 따른 누진 부담이 사라져 전기료 부담이 평균 10%가량 경감된다. 이모(43)씨는 "2003년부터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데 전기료가 사용량에 따라 누진되는 바람에 전기료 부담이 급증했다"고 말했다. 그는 "노부모를 모시고 3대가 함께 사는 가정에 대해서는 ‘1주택 수가구’ 제도를 적용해 전기료 부담을 낮춰달라는 민원을 청와대와 산업자원부 등에 제기했으나 반영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뇌졸중, 치매 등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노부모의 요양을 위해 지출된 비용도 연말 정산 때 소득공제에 포함시켜 달라는 민원도 계속되고 있다. 최모(52)씨는 "치매에 걸린 노모를 민간 요양시설에 맡기고 매월 150만~200만원을 부담하고 있으나, 소득공제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며 재경부에 민원을 제기했다. 그는 "소비재 구입에 사용한 카드대금은 소득공제를 해 주면서 노모를 위해 지출한 것에는 혜택을 주지 않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시민단체 관계자는 "정부는 얌체 가구의 악용 가능성에 따른 세수감소 등을 이유로 부모 봉양가구에 대한 지원확대에 소극적이지만, 지원대상을 엄격히 규정하면 부모를 모시는 사람이 피해를 입는 일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조철환기자 chcho@hk.co.kr
■ 경로할인 확대하긴커녕…/ 철도公, 고속철·새마을 적자이유 폐지 검토
한국철도공사(사장 신광순)가 경영적자 해소를 이유로 고속철도(KTX)와 새마을호에 적용되고 있는 경로할인제도 폐지를 검토하고 있어 장삿속만 따진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12일 철도공사에 따르면 경로우대 차원에서 만 65세 이상의 노인에 대해 지난해 10월부터 KTX와 새마을호 주중 운임의 30%를 할인해 주고 있으나 누적적자 해소 등을 위해 폐지를 검토 중이다. 철도공사는 또 모든 등급의 장애인에게 전 열차운임의 50%를 할인해 주는 장애인 할인제도도 앞으로 장애 등급에 따라 차등을 두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철도공사는 지난해 경로할인 등 열차의 공공할인에 따른 손실금액이 565억원에 이르며, 올해 고속철도 경로할인으로 228억원의 재정 손실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철도공사는 "지난해 말까지 건설교통부 보건복지부 등과 협의해 KTX와 새마을호에 대해서도 정부의 공익서비스 보상(PSO·오지 노선 운영 및 공공할인 등에 대한 재정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법 개정 약속을 받았지만 아직까지 개정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노인복지법 시행령 상 PSO를 전제로 한 열차운임 할인은 무궁화호 이하 열차로만 규정돼 있다.
대전=허택회기자 thhe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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