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銀河 탄생 밝혀라" 日탐사위성 막바지 테스트 한창
우주에 존재하는 빛 중에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전체의 약 0.001%에 불과하다. 우주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다양한 파장의 빛은 적외선 가시광선 자외선 X레이 등으로 대략 구분된다. 하지만 원적외선 근적외선 원자외선 근자외선 등 파장대를 세분화할수록 더욱 섬세하게, 다양한 모습으로 우주의 속살을 보여준다. 우주 광선은 우주진화의 신비를 담고 있는 보고(寶庫)이지만, 그 광선을 감지하고 분석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눈(망원경)’을 만들어 지구 밖 멀리까지 쏘아올려야 한다. 일본의 적외선 탐사위성 ASTRO-F의 개발은 이 같은 우주의 비밀을 캐기 위한 본격적인 작업의 일환이다. 일본 우주과학연구본부(ISAS·Institute of Space and Astronautical Science) 소속 연구진 30여 명이 매달려 완성 단계에 이른 적외선 탐사위성 ASTRO-F 개발 현장을 찾았다.
기자가 방문했을 때는 망원경을 실은 위성 본체의 기기테스트가 한창이었다. 지금까지 개발된 두 개의 적외선 위성은 하늘의 일부분만을 볼 수 있지만, ASTRO-F는 세계 최초로 전체 하늘을 커버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과학자들은 우주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빛 중에 적외선 탐사를 통해 은하의 생성비밀을 추적한다. 150억년 전 빅뱅 이후부터 70억 년 전 사이, 초기 은하단계에서 발산된 아주 멀고 약한 빛을 감지하는 작업이다. 은하 생성 때에는 무수한 우주먼지들이 발생하는데, 적외선으로 보면 우주먼지에 둘러싸여 있어도 은하 내부 모습이 생생하게 보인다.
ASTRO-F 개발의 핵심은 두 가지다. 우선 기존 적외선 위성보다 더 멀리, 더 자세히 볼 수 있도록 감도가 뛰어난 망원경 거울을 만드는 것이다. 또 하나는 극한의 ‘차가움’ 속에서만 감지할 수 있는 적외선의 특성상 망원경을 6K(-279℃)까지 냉각해 유지하는 기술이다. 적외선은 아주 약한 에너지가 내보내는 빛인데다, 이를 감지하려면 주변의 온도가 극히 낮아야 하기 때문이다.
ASTRO-F는 극궤도 745㎞ 상공으로 쏘아 올려져 항상 태양과 직각을 이뤄 돌게 된다. 6개월 동안 전체 하늘을 한차례 훑으면서 1.8~200마이크론 대의 적외선 파장을 감지, 1초에 25차례 탐사자료를 보낼 예정이다. 이 기간 동안 헬륨이 냉각제로 쓰이며, 헬륨이 떨어지면 태양광을 이용한 자체 냉각기기로 수명을 연장한다.
ASTRO-F의 기기테스트가 진행된 곳은 일본 남단 마츠야마 인근 니하마에 위치한 스미토모 중공업(SHI) 공장. 도쿄 근교 사가미하라시에 있는 ISAS 본부에서 출발하면 하루가 꼬박 걸려야 도착한다. 위성 개발 프로젝트는 다양한 분야의 첨단공학기술이 유기적으로 결합돼야 실현될 수 있다. 때문에 망원경 거울 개발에는 니콘, 본체개발에는 SHI 등 일본의 대표적인 민간기업이 대거 참여했다.
기기테스트 현장에 들어서니 연구진이 무게 970㎏에 이르는 원통 형태의 위성 본체를 둘러싸고 각자 노트북 앞에 앉아 수많은 데이터를 입력하고 있었다. 연구진은 암호 같은 수많은 명령어들이 재빠르게 모니터상에서 업데이트 되는 모습을 팽팽한 긴장감 속에 주시했다. ‘셔터를 닫아라’ ‘플래시를 써라’는 등의 의미를 지닌 명령을 보낼 경우 망원경이 실제 명령대로 작동을 하는지 확인하는 과정이다. 옆에서는 냉각제로 쓰이는 헬륨이 끊임없이 위성 본체 안으로 주입되고 있었다.
연구진을 지도하는 마츠하라 박사는 "기기 테스트 외에, 진공 상에서 제대로 작동하는지 확인하는 ‘진공 테스트’, 위성을 발사할 때의 충격으로 기기들이 부서지지 않는 지를 확인하는 ‘진동 테스트’ 등 수많은 테스트를 거쳐야 한다"고 설명했다. 최근 진행된 진동 테스트에서는 망원경 지지대가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깨져 수정하는 과정을 거쳤다고 한다. 니하마에서 테스트를 마친 위성 본체는 흔들림을 줄이기 위해 배에 실려 ISAS 본부로 옮겨진다.
이렇게 혹독한 점검 과정을 거쳤다고 해서 완벽을 장담할 수는 없다. 수년 전 은하 핵 연구 목적으로 개발된 X레이 탐사 위성 ASTRO-E는 각종 테스트를 무사히 통과했는데도 발사 당시 로켓 재료의 문제로 폭발해버렸다. ISAS의 한 연구원은 "일부 연구원은 폭발사고에 절망해 연구소를 떠나기도 했다"고 전했다. 현재 폭발했던 ASTRO-E를 그대로 복원한 ASTRO-E2 개발이 막바지에 이르러, ASTRO-F에 앞서 올해 안에 발사될 예정이다.
ASTRO-F 개발에는 우리나라 영국 네덜란드 등의 과학자도 참여하고 있다. 서울대 홍승수 교수가 교환교수로 참여하고 있고, 서울대 박사과정을 마친 정웅섭 박사가 위성에서 보내온 자료를 분석하는 소프트웨어 개발임무를 맡고 있다. 정 박사는 "팀원 모두 연구와 일밖에 모를 정도로 위성개발에 모든 걸 바치고 있다"고 소개했다.
정확한 발사 일정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ASTRO-F는 조만간 일본이 개발한 세계 최대의 고체연료 로켓인 M-V에 실려 지구를 박차고 올라갈 것이다. 개발 단계에서는 ASTRO-F, SOLAR-B 등 임무와 개발 순서에 맞춰 알파벳이 붙은 이름으로 불리지만, 일단 발사에 성공해 임무를 시작하면 공식명칭이 주어진다.
ISAS는 1970년 ‘오수미(OHSUMI)’를 시작으로 2003년 5월 ‘하야부사(HAYABUSA)’에 이르기까지 총 26개의 위성 및 탐사체를 발사했다. 현재도 ASTRO-F를 포함한 5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개발 단계에서 MUSES-C라는 이름으로 불린 하야부사는 세계 최초로 소행성과 직접 접촉, 샘플을 채취한 뒤 지구로 귀환하는 임무를 수행할 계획이다.
기기테스트 중간에 잠시 쉬고 있는 연구원들에게 우주 개발분야에서 이루고 싶은 꿈에 대해 물었다. 카네다 박사는 "여러 개의 망원경을 연결한 위성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정밀한 관측을 위해 여러 개의 전파망원경을 나란히 세우는 작업이 알마(ALMA)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진행 중이지만, 우주로 발사한 위성 중 여러 개의 망원경을 동시에 이용한 것은 아직 없다는 것이다.마츠우라 박사는 "태양광을 피해 우주배경복사를 관측할 수 있도록 멀리 목성의 인력권까지 진입이 가능한 탐사위성을 개발하고 싶다"고 말했다. 지구 근처에서는 태양광의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어두운 우주 깊숙이 위성을 쏘아보고 싶다는 것이다. 우리 앞에 펼쳐지는 새로운 우주의 모습은 이렇게 과학자들의 머리 속에서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사가미하라시·니하마=글 사진 이진희기자 river@hk.co.kr
■ 日 우주항공산업 개발 연구
1955년 연필 크기의 ‘펜슬(펜시루·ぺンシル)’이라는 실험용 로켓을 발사하며 우주의 꿈을 꾸었던 일본. 그동안 8명의 우주비행사 배출, 자체 로켓 개발, 수많은 탐사선 및 위성발사 등으로 우주산업 강국의 대열에 합류했다.
일본 우주항공분야 연구의 주축이었던 3개 연구기관은 2003년 10월 1일 JAXA(Japan Aerospace Exploration Agency)라는 통합기구를 출범시켜 더욱 기민하고 효율적인 우주산업 개발 체제를 갖추었다. JAXA 산하에는 각각 연구분야가 다른 ISAS NAL NASDA 등 3개 기구가 있다. 1964년 도쿄대 연구진을 주축으로 만들어진 ISAS는 우주과학과 관련된 순수연구 목적의 위성 및 탐사체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현재 연구진은 300여명.
NAL은 400여명의 연구진이 주로 항공기술과 관련된 기초공학 연구를 수행한다. 이온엔진 개발 등이 대표적인 성과다. NASDA는 1,100여명의 연구진이 포진한 최대 기구로 일본 정부가 정책적으로 추진하는 연구과제를 수행한다. 초고속 인터넷 위성이나 환경관측 위성, 보안위성 등 정부의 이해에 맞는 실용적인 연구에 중점을 두고 있다. 연구 예산은 2002년 기준으로 ISAS와 NAL이 각각 230억엔(2,300억원), NASDA가 1,450억엔(1조 4,500억원) 가량이다. ISAS 간부인 무라카미 박사는 "소속 과학자(천문학자)와 엔지니어(공학자)들이 회의를 거듭해 프로젝트 제안서를 올리면, 정부에서 예산에 맞춰 가능한 프로젝트를 선택한다"며 "예산 때문에 신경을 써야 하긴 하지만, 인적 자원은 충분해 큰 어려움은 없다"고 말했다.
이진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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