髮白非心白(발백비심백)
古人曾漏洩(고인증누설)
今聽一聲鷄(금청일성계)
丈夫能事畢(장부능사필)
머리는 세어도 마음만은 늙지 않는다네
옛 사람이 이미 그렇게 말했거늘
지금 닭 우는 소리 듣고
대장부의 할 일 다 마쳤노라
조선 중기의 고승 서산(西山)대사가 어느 마을을 지나다가 닭 울음을 듣고 홀연 지혜의 눈을 밝힌 뒤 지은 깨달음의 노래다. 경북 문경 땅의 봉암사(鳳岩寺), 눈 밝은 납자로 널리 알려진 선원장 정광(淨光·63) 스님은 서산대사의 오도송(悟道頌)으로 말문을 연다. 을유년, 닭의 해의 덕담이다.
봉암사 역시 닭과 얽힌 창건설화를 간직하고 있다. 산문으로 이어지는 숲길을 따라 백운계곡이 펼쳐지는데 거기에는 계암(鷄岩)이라는 제법 큰 바위가 자리를 잡고 있다. 신라의 지증(智證)대사가 희양산 중턱에 절을 지을 당시 닭 한마리가 매일 계암에서 새벽을 알렸다 하여, 붙여진 절 이름이 봉암사다.
"예부터 깨달은 선사들은 말했지요. 늙지 않는 마음을 간직하라고. 그러면 불생불멸(不生不滅)의 마음을 얻는다고. 나고 멸함이 없는 불생불멸은 마음의 근원자리입니다. 이 근원으로 돌아갈 때 생로병사의 고해(苦海)를 건너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는 거지요." 스님이 우정 고인의 오도송을 꺼낸 까닭이 가슴에 와 닿는다.
"닭 울음소리를 듣고 저마다 캄캄한 무명에서 깨어나 밝고 아름다운 삶을 사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닭의 울음은 우리에게 늘 깨어 있으라고 알려주는 경책의 소리입니다. 닭이 우는 새벽 1시부터 3시 사이의 축시(丑時)를 계명이라고 하잖아요. 바로 이 시간대에 기운이 바뀌며 새 날이 시작됩니다. 사람의 혼탁한 마음도 계명과 동시에 씻겨지고 새롭고 깨끗한 마음이 찾아 듭니다. 닭이 울면 귀신과 도깨비도 자취를 감춘다고 하잖아요. 닭은 그만큼 신령스런 동물이자 사람과 인연이 깊은 가축입니다. 닭의 해에는 부처님 말씀처럼 스스로 깨어 있는 삶을 살도록 노력하길 바랍니다."
그런 삶의 조건으로 스님은 소욕지족(小欲知足), 정진(精進), 하심(下心) 세 가지를 제시한다. 사바세계에서 살아가는 모든 이가 평생의 화두로 삼아달라는 의미로 들린다. 석가세존은 입적을 앞두고 수행자가 지켜야 할 여덟 가지 덕목에 대해 설했다. 그 덕목 중에 소욕(적은 욕심), 지족(만족할 줄 아는 삶), 정진(노력)이 포함돼 있다.
"인간의 고뇌는 탐욕에서 나오고 탐욕은 만족할 줄 모르는 데서 생깁니다. 소욕지족을 추구하는 사람은 마음이 넉넉한 삶을 살게 됩니다. 적은 욕심으로 만족하되 부지런히 노력해야 합니다. 게으름은 병입니다. 부지런하지 못한 사람은 죽은 사람입니다. 게으른 이에게는 희망이 없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성실하게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세존은 생전에 가섭(迦葉)을 보고 "그대와 같이 부지런히 애쓰는 사람이 있으면 나의 법이 성할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망할 것이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가섭은 세존의 10대 제자 가운데 소욕지족의 삶을 가장 앞장서서 실천한 수행자로 세존의 입적 후 교단을 수호하고 이끌었다.
"세상에는 제 잘난 맛에 살아간다고 하는 사람이 꽤 많은 줄 압니다. 그런 사람들은 ‘내가 잘낫다’고 하는 생각에서부터 시비와 갈등의 싹이 트고 온갖 분쟁이 생긴다는 사실을 모릅니다. 겸손과 양보의 미덕이 없으면 마음에 병이 듭니다. 겸손은 곧 인격입니다. 부처님은 겸손을 성취하신 분입니다." 스님은 주역까지 예로 든다. 주역의 64괘(卦) 가운데 겸괘(謙卦)를 제외하곤 나머지는 모두 길흉이 반복되는 점괘를 갖고 있지만 겸괘만은 일체 나쁜 내용이 없다. 겸손한 마음만 갖춰지면 이(理·정신)와 사(事·육체), 모든 것이 두루 형통해진다는 것이다. 이렇듯 길흉화복을 예언하는 주역조차 겸손한 사람을 으뜸으로 꼽는다. 말이나 행동으로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마음이 바로 보시라고 스님은 힘주어 말한다.
"적은 욕심과 겸손은 세상에서 가장 값진 보배입니다. 그런 마음을 지닌 사람은 언제 어느 자리에 서도 그 순간 그 자리가 극락이 될 겁니다. 세상살이가 한결 가벼워지지요." 허나 ‘나를 잊고 집착을 버리면’, 이토록 험한 세상을 무슨 수로 살아가야 하는가. 어찌 보면 문화와 문명의 진화는 집념과 집착의 산물일 수도 있는데.
"아, 그런 문제는 이렇게 이해하면 될지 모르겠습니다. 정욕(正欲), 즉 바른 욕심을 가지면 되지요. 공자님 말씀에도 있지 않아요. 극기복례위인(克己復禮爲仁)이라, 욕망을 누르고 예절을 좇게 함이 곧 인이라는 말을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요. 정욕이나 극기는 모두 사리사욕을 멀리하고 이웃과 사회를 위한 공리에 힘쓰라는 가르침 아닙니까. 세상의 이익을 자기 것으로 하고자 할 때 몰락이 시작됩니다. 요즘 세상은 재물욕과 명예욕이 난무하니 이는 사람을 망치는 지름길입니다. 세상은 베푸는 것 이상으로 보답합니다. 욕심을 덜 내면 상대의 신뢰를 삽니다. 베풂의 삶은 너와 나의 간격을 줄여주고 없애줍니다."
정광 스님은 이 대목에서 다시 인격의 문제로 돌아간다. "인격은 사람의 본래모습, 다시 말해 때 묻지 않은 인간성입니다. 사람의 숨겨진 바탕인 인격은 언행으로 표출되지요. 지식을 갖춘 사람이라고 해서 반드시 인격이 훌륭한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인격과 지식을 겸비한 사람이 바로 깨달은 사람입니다. 우리는 결코 지식인만 되어서는 안됩니다. 인격이 바르지 않은 사람은 지식을 올바르게 쓰지 못합니다." 자기 중심의 삶을 사는 사람, 남을 자기 삶에 필요한 수단으로만 여기는 사람에게는 돌아올 게 아무 것도 없다. 환경문제만 해도 그렇다. 자연이 우리의 후손이 앞으로 살아갈 터전이라고 생각한다면 어떻게 감히 사욕의 대상이 되겠는가. 스님의 할이요, 방이다.
스님은 율장에 나오는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에 대한 게송으로 대화를 마무리짓는다. 사람의 모든 허물은 몸과 입과 생각에서 나오기 때문에 늘 조심하라는 교훈이다.
守口攝意身莫犯(수구섭의신막범)
如是行者能得道(여시행자능득도)
입으로 지키고, 뜻으로 거두고, 몸으로 짓지 말라
이렇게 수행하면 능히 깨달음을 얻을지라
정광 스님의 주석처인 동암(東庵)을 뒤로 하고 태고선원 앞에 이르렀다. 구도의 길에 오른 순례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봉암사에 가서 정진하자"고 말한다. 봉암사의 수행처 태고선원은 출가자에겐 마음의 고향이다. 너무도 엄숙해서 바람도 숨을 죽여 간다는 태고선원, 그 청정도량에선 이따금 무명을 뿌리뽑는 죽비소리만 깊은 적막을 깨뜨린다.
lkc@hk.co.kr
● 정광스님은 누구
봉암사 동암, 여기가 태고선원의 내로라 하는 납자들을 깨달음의 길로 인도하는 정광스님의 거처다. 예닐곱 평 남짓한 공간에 지붕에는 그나마 슬레이트가 얹혀 있다. 그제서야 암자로 안내하던 젊은 스님의 말뜻을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하게 됐다. 암자는 스님의 마음을 닮은 듯 소박하다. 경내에서 가장 허름한 건물일 것 같다.
뭐라 표현할 길이 없어 "좀 이상합니다"라고 정광스님을 향해 말을 건넸다. 스님 역시 "예, 여기 오시는 손님마다 그렇게 얘기 합니다. 하지만 사는 데 전혀 불편이 없지요"라며 미소를 띄운다. 올해로 예순 셋의 스님이 구도의 발길을 멈추고 봉암사 동암에 머문 지는 20년째다. 스님은 여기서 ‘지증대사비명소고’라는 책을 펴냈다. 봉암사를 창건한 지증대사의 비명을 토대로 한국 선불교의 독창성을 밝힌 역저로 종단에서는 평가한다.
절집과의 인연은 지금 생각해 봐도 정말 자연스럽다. 1942년 경남 창원에서 태어난 스님은 10대에 유교 도교 등 제자백가를 두루 섭렵하고 나서 불교경전을 접할 기회를 갖게 됐다. "아, 내가 가야 할 길은 이것이로구나"라는 생각이 가슴을 쳤다. 생로병사의 일대사를 해결하자는 당찬 결심을 세우고 19세 때 쌍계사로 출가했다. 머리를 깎은 뒤 비로소 고향의 부모에게 "저에 대한 생각을 거둬 주십시오"라고 편지를 띄웠다.
스님의 화두는 ‘(불생불멸하는) 나의 진면목은 무엇인가’이다. 진면목은 본래모습을 일컫는 선가의 언어다. 사람들은 분별심과 망상에 가려져 자기의 참모습을 잃고 살아간다. 망상의 구름을 걷어내면 그 자리에 본래 깨끗했던 참모습이 오롯이 나타난다. 스님은 화두를 타파하기 위해 전국의 선방을 참례하는 고행을 마다하지 않았다.
"불교는 사람을 새롭게 만드는 종교입니다. 스스로 자기를 발견하도록 이끄는 역할을 합니다. 자기를 새롭게 발견하는 순간 하루를 살아도 가볍고 넉넉하게 살 수 있습니다." 좀처럼 속세의 발길을 허용치 않는 봉암사에서 스님은 길손에게 아낌없는 법보시(法布施)를 베풀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