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기쁘고 고맙습니다. 신대륙에 노예로 끌려왔을 때부터 지난해 11월 선거에서 최초의 흑인 상원 의원(배럭 오바마)이 탄생한 것까지 흑인 역사의 모든 것을 담아야지요. 아프리카에서 흑인들을 실어나른 노예선에서 쓰던 쇠사슬, 애고 어른이고 할 것 없이 가축이나 가구와 함께 올려 세우던 노예 경매대도 전시해야겠지요. 미국 역사에 남긴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헌신과 공헌의 깊이와 넓이를 둘러보게 되는 날, 반대파(인종차별주의자)도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입니다."
존 루이스(65) 미 하원 의원(민주·조지아주)은 최근 USA 투데이 및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어투에는 감개무량함이 서려 있었다. 1986년 하원에 진출한 이후 고독하게, 그리고 끈질기게 추진해 온 ‘국립아프리카계미국인역사문화박물관(the National Museum of African American History and Culture·약칭 흑인박물관)’이 이제 실현을 눈앞에 두게 됐기 때문이다. 이 박물관은 흑인들의 고난과 함께 그들이 미국 역사 및 세계 인권 신장에 얼마나 기여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 주는 현장이 될 것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가 흑인박물관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60년대 흑인 인권 운동에 앞장서면서부터였다. 63년 흑인 수십만 명이 동등한 투표권을 요구하며 수도 워싱턴으로 행진했을 때 그는 마틴 루터 킹 목사 등과 어깨동무를 하고 있었다. 남북전쟁 때 북군으로 참전한 흑인들이 이미 박물관 건립을 추진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부터 그 계획을 실현하겠다고 다짐했다.
88년부터 2003년까지 매 회기마다 박물관 건립 및 모금에 관한 법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번번이 외면당했다. 심지어 제시 헬름스 같은 유명한 상원의원은 흑인박물관을 국가 명의로 세워주면 이익단체들마다 너도 나도 자기네 박물관을 세우라고 요구할 것이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그럼 다음은 히스패닉 박물관이냐?"는 야유도 나왔다.
그러나 마침내 2003년 11월 의회는 건립안을 승인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도 서명했다. 설계 및 교육 프로그램 운영을 위해 연방정부가 일단 3,200만 달러를 지원하고 총 건립·운영예산 4억~5억 달러 가운데 2억5,000만 달러는 박물관 건립·운영을 맡게 되는 스미스소니언협회에서 민간 모금을 하도록 했다. 모금이 잘 되고 있어 예상보다 훨씬 이른 5~7년 후면 박물관이 위용을 드러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2월부터 본격 활동을 시작할 모금위원회에는 토크쇼 진행자 오프라 윈프리, 흑인연예TV 창립자 밥 존슨, 음악 프로듀서 퀸시 존스 등 유명인사가 대거 참여하고 있다.
루이스 의원은 박물관이 반드시 수도 워싱턴의 내셔널 몰에 들어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워싱턴과 링컨 대통령 기념관, 2차 대전 기념비 등 유명 건물·기관이 밀집해 미국을 상징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스미스소니언협회도 그 쪽으로 입지를 검토하고 있다.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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