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1월12일 옛 소련 최고회의 간부회의 의장을 지낸 니콜라이 빅토로비치 포드고르니가 모스크바에서 작고했다. 향년 80. 우크라이나 카를로프카 출신의 포드고르니는 키에프의 식량공업기술학교에서 엔지니어로 훈련 받은 뒤 공산당 활동을 시작했다. 1957년부터 1963년까지 우크라이나공산당 제1서기로 일한 그는 1964년 브레즈네프와 함께 소련공산당 서기로 취임했고, 1965년부터 1977년까지 소련 최고회의 간부회의 의장으로 봉직했다. 그의 전임자는 1964년부터 한 해 동안 간부회의 의장으로 일한 아나스타스 미코얀이었다. 미코얀이 물러난 것은 그가 흐루시초프파였기 때문이다.
포드고르니는 최고회의 간부회의 의장직에 오름으로써, 한 해전 흐루시초프로부터 공산당 서기장 자리를 빼앗은 레오니드 브레즈네프, 역시 흐루시초프로부터 총리(연방각료회의 의장)직을 물려받은 알렉세이 코시긴과 함께 이른바 트로이카(3두마차) 체제를 구축했다. 말하자면 당은 브레즈네프가, 정부는 코시긴이, 입법부는 포드고르니가 맡는 집단지도 체제였다. 공산주의 국가가 일반적으로 당 우위 체제이므로 최고권력자는 브레즈네프였지만, 적어도 1970년까지 소련은 절대권력자가 존재하지 않는 권력 분점 상태에 놓여있었다. 1970년대 이후 브레즈네프가 권력을 독점하게 되는 과정은, 1953년 스탈린이 죽은 뒤 말렌코프, 불가닌 등과 잠시 권력을 분점했던 흐루시초프가 점차 정적들을 주변화시켰던 과정과 유사하다.
1977년 포드고르니가 어쩔 수 없이 비워준 최고회의 간부회의 의장 자리는 브레즈네프가 차지했다. 소련에서 최고회의 간부회의 의장은 단지 입법부의 최고위직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얼굴이기도 했다. 간부회의 의장이 국가원수였던 것이다. 북한의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국가의 얼굴 노릇을 하는 것과 통하는 데가 있다. 고종석 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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