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부가 무섭다. 행정수도 공약은 내가 있는 충남·대전 지역 외에는 공감대가 크지 않은데도, 그리고 불가하다는 헌재의 판결이 났는데도 어떻게 해서든 추진하려 한다. 그런가 하면 환경을 지켜달라는 소리에는 귀를 막고, 심지어 환경을 지키겠다는 자신의 공약마저도 ‘선거전 공약은 모두 지킬 수 있는 게 아니다’라고 저버린다. 사패산 터널 공사는 계속되고 지율스님이 지키는 천성산마저도 위태롭다. 정부는 곳곳에서 그린벨트를 해제하고 있고, 골프장 230개를 건설할 방침이며 새만금 방조제도 판결만 나면 추진할 태세다. 110여개 환경, 시민, 학술 단체들이 현 정부를 ‘녹색색맹’으로 규정하고 환경비상시국 선언을 한 것은 괜한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환경과 관련해 좋고 나쁜 점을 두루 가지고 있다. 지진이 잘 나지 않는 온대지역으로 토질이 좋아 양질의 음료수를 얻을 수 있고, 산이 많아 산업화의 광풍 속에서도 아직 녹지대를 많이 보유하고 있으며, 바다와 섬과 갯벌을 마음껏 향유할 수 있는 자연조건이 있다.
반면 인구밀도가 높아 수자원 소비가 많고 쓰레기와 생활하수를 많이 배출하고 에너지를 많이 쓰며, 토지가 작아 공업에 매달려야 하는데 공업은 이산화탄소와 각종 폐기물 등 독성 공해물질을 다량 배출할 수 밖에 없다. 이 좁은 나라에서 이 많은 인구가 자자손손 살아가려면 환경을 사랑하고 아껴서 환경에 주는 부담을 최대한 줄여야 한다.
환경파괴의 주 원인 중 하나는 국책사업이다. 근대화의 초기단계를 확실히 통과하고 개인 국민소득 1만불을 넘은 이제는 맹목적인 개발일변도에서 벗어나 개발 프로그램이나 국책사업이 환경에 주는 영향을 생각해 볼 때도 됐다. 그리하여 예상되는 부작용에 대해서 충분한 대책을 세우거나 중지해야 한다. 그러나 여전히 정부가 앞장서 환경파괴를 자행한다. 그래서 노무현 정부가 무섭다는 것이다.
새만금은 이 정부의 잘못된 환경정책과 일부 국민의 잘못된 환경의식을 보여준다. 갯벌은 수질을 정화하고 인간에게 좋은 먹을 거리를 제공하며, 물고기 산란장과 철새의 휴식처가 된다. 해일이나 태풍 때는 완충지대 역할을 한다. 있는 농토도 농사짓지 않으면 보상금을 주는 마당에 농토가 더 필요할까, 공장부지를 조성해도 입주업체가 없어 비어있는 땅이 많은데 공장부지가 더 필요할까. 아니면 천혜의 갯벌을 죽음의 땅인 골프장과 맞바꾸려는 것일까.
조상에게서 받은 땅과 갯벌을 난도질할 권한이 우리에게는 없다. 우리 삶에 꼭 필요한 만큼만 개발을 하고 나머지는 그대로 자손에게 전달할 의무만 있다. 그게 환경윤리다. 토지를 소유한다는 것은 일시적, 잠정적으로 점유해 사용하는 것을 편의상 그렇게 표현하는 것 뿐이다. 토지는 조상들이 아득한 옛날부터 사용해온 것이고 후손들이 머나먼 미래까지 사용할 것이며, 날아오는 새, 찾아오는 짐승, 그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는 지렁이, 두꺼비, 미생물과 공유하는 것이다.
유한자가 무한자를 소유할 수 없듯이 인간은 토지를 소유할 수 없다. 공주 박물관에 있는 무령왕능 묘지석(墓誌石)중의 하나는 매지권(買地券)으로 불린다. 이 돌은 묘지를 위해서 땅을 산 증서로서 토지신(土地神), 곧 토왕(土王), 토백(土伯), 토부모(土父母) 등에게 곡식 2,000석을 주고 샀음을 밝히고 있다. 대지의 주인은 자연 자체이며, 우리가 불가피하게 그것을 사용할 때에는 대자연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정신을 표현한 것이다. 국책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아름드리 소나무를 마구 잘라내고, 산이며, 강이며, 해안선이며, 섬 전체 까지를 불도저로 마구 파괴하는 이 시대에 더욱 절실해지는 정신이다.
이동인 충남대 사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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