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리앗(HSBC)과 다윗(스탠다드차타드·SCB)간의 제일은행 쟁탈전에서 다윗이 극적으로 막판 뒤집기에 성공했다. 씨티그룹에 이어 또 하나의 외국 금융회사가 국내에 상륙함에 따라 ‘은행대전’은 더욱 가열될 전망이다.
◆ 대역전극 = 지난 연말까지만 해도 제일은행의 HSBC행을 의심하는 시각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일찌감치 제일은행 인수 의사를 표명한데다가 인수가도 실사가격보다 높은 주당 1만3,000원 이상을 제시, 사실상 협상이 종료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SCB는 HSBC의 10분의 1에 불과한 외형(총자산)이나 인수 능력면에서 상대가 안 된다는 게 다수의 관측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24일 제일은행 대주주인 뉴브리지캐피탈이 인수자 발표를 무기연기하면서 이상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SCB가 주당 1만7,000원에 육박하는 파격적인 인수가를 제시한 것. 인수가의 40%를 차입 등을 통해 조달하겠다는 ‘꼬리표’가 달렸으나 사모펀드인 뉴브리지로서는 당장 구미가 당기는 조건이었다. 결국 HSBC는 내부 검토 끝에 발을 뺐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SCB가 지난해 한미은행 인수전에서 먼저 가격을 제시했다가 씨티그룹에 뒷통수를 맞은 교훈을 잊지 않은 것"이라며 "‘크렘린 전략’이 주효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 향후일정 및 전망 = 새로운 통합은행의 출범 시기는 3~4월 정도로 예상된다. SCB측은 6~12주 정도면 정부 등과의 나머지 절차를 마무리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SCB측은 이후 소매금융과 신용카드, 모기지론 등에 영업력을 집중, 자산 기준 6%대인 제일은행의 시장 점유율을 8~12%까지 늘린다는 계획이다.
SCB 관계자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상장폐지, 은행명 변경 등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며 "지점 수는 그대로 유지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또 ▦장기적으로 한국인 은행장 영입 추진 ▦신입사원 채용 증대 ▦중견급 간부의 해외파견 확대 등 인력운용 방침을 밝히기도 했다.
◆ 공적자금 손실 = 제일은행의 최대주주(51.44%)인 우리 정부로서는 매각 차익이 다소 늘어나게 됐지만 공적자금 손실을 메우기에는 여전히 역부족이다. 정부는 외환위기 이후 제일은행에 17조원의 공적자금을 쏟아 부었으나 지금까지 회수한 액수는 10조원에 불과하다. 이번에 주당 1만6,511원의 매각가를 감안할 경우 정부는 1조7,400여억원을 추가로 손에 쥐게 되지만 전체적으로 득실을 따져보면 5조2,000여억원 손해를 본 셈이다. 반면 1999년 말 49%에 가까운 지분을 주당 5,000원의 헐값에 매입한 뉴브리지는 5년여 만에 1조1,511억원의 차익을 올리게 됐다.
박진석기자 jseok@hk.co.kr
■스탠다드차터드 은행/ 150년 역사 가진 영국계 은행 자산 1,200억弗우리銀과 비슷
스탠다드차타드(Standard Chartered) 은행은 15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대표적인 영국계 은행이다. 1853년 설립된 차타드 은행과 1862년 설립된 스탠다드 은행이 1969년 합병해 현재의 스탠다드차타드가 됐으며 본사는 영국 런던에 있다. 아시아, 아프리카, 미국, 유럽 등 50여개국에 500개 이상의 지점, 3만명 이상의 직원을 보유하고 있다. 2003년말 현재 총자산이 1,200억 달러(한화 126조원 상당)로 우리은행과 비슷한 규모이며 2003년 영업이익은 15억4,200만 달러(한화 1조6,100억원 상당)에 달한다.
스탠다드차타드는 지난해 12월 중국 보하이(渤海)은행 지분 19.99%를 인수하는 등 아시아지역 영업 확대에 힘을 쏟아 왔다. 한국의 한미은행과 중국 지아오통(交通)은행을 각각 씨티그룹과 HSBC에 빼앗긴 뒤 이를 만회하기 위해 제일은행 인수에 총력을 기울였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1968년 한국지점이 설립됐으며 지난해에는 PB센터가 개설됐다.
박진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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