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무장단체의 한국인 인질 납치 주장이 다행히 단순한 해프닝일 가능성이 커져 가고 있다. 하지만 이 사건을 둘러싸고 정부가 ‘특정한 의도’로 피랍설 공개시기를 조절한 것 아니냐는 등의 각종 의혹이 제기되고 있어 정부의 납득할 만한 해명이 있어야 할 것이라는 지적이 높다.
가장 석연치 않은 대목은 ‘2대강의 국가의 알 지하드’라는 이라크 현지 무장단체가 6일 오후 10시(한국시각)께 처음 웹사이트에 올린 한국인 납치 주장을 우리 정부가 처음 파악한 시점이다. 이는 정부가 미리 첩보를 입수하고도 공개 시점을 늦추면서 공개 효과를 극대화했을 수 있다는 세간의 의혹과 연관돼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이규형 외교통상부 대변인은 10일 "외교부는 9일 오후 무장단체의 납치 주장을 국내 대 테러 첩보 수집 부서로부터 입수했다"고 밝혔다. 외교부 주요 당국자들은 9일 오후 7시 30분 국내 정보기관으로부터 관련 첩보를 통보받고 오후 9시 긴급 대책회의를 가졌다.
특히 이 대변인은 "첩보를 입수한 국내 정보기관도 9일 오후 처음 첩보를 입수했다고 밝혀왔다"고 덧붙였다. 국가정보원도 무장단체의 주장이 게재된 지 사흘이 돼서야 처음 인지했다는 말이다.
하지만 정부측 주장은 정황상 쉽게 수긍하기 어렵다. 무장단체가 한국인 납치 주장을 게재한 사이트(www.alezha.com)는 이라크 과격 무장 단체들이 즐겨 이용하는 곳으로, 서방 정보 기관들이 항상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는 대상이다. 특히 이 사이트는 지난해 9월 영국인 케네스 비글리(62)가 살해됐다고 최초로 공개, 유명세를 타기도 했었다. 따라서 설령 정부측 설명이 사실이라면 국내 대테러 정보 수집 부서는 ‘그간 무엇을 했는가’라는 질책을 받아 마땅하다.
수긍하기 어려운 또 다른 ‘우연’은 정부측에게는 ‘최적의 시점’에 발표가 진행됐다는 사실이다. 정부가 피랍설을 공식 발표하기 1시간전인 9일 오후 10시는 무장단체가 한국 정부에게 준 72시간의 시한이 종료되는 시점이었다. 따라서 정부는 시한이 경과한 후 이라크 현지 교민과 자이툰 부대의 피해가 없다는 점을 확인한 뒤 홀가분한 심정으로 발표를 진행할 수 있었다. 즉 정부측 부담이 최소화하는 시점에 피랍설의 전모가 공개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이라크 현지 우리 대사관과 자이툰 부대는 불과 몇 시간만에 ‘부대와 교민들은 안전하다’는 기민한 보고를 올리기도 했다.
이런 의문 제기에 대해 당국자들은 "결과론적으로 따져보면 오해가 생길 만 하다"면서 "하지만 김선일 사건 당시의 악몽을 떠올리면 가장 높은 수준의 대응 태세로 상황에 대처한 정부측 입장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공교롭게 9일은 이기준 전 교육부총리 사퇴 파문이 각 언론에 대서특필되던 날이어서 이미 사안이 종료된 납치설로 ‘물타기’를 시도했지 않나 하는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이영섭기자 youn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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