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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의 정치논평] 오만과 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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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의 정치논평] 오만과 오기

입력
2005.01.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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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 중 다행이다. 처음부터 상식 이하였던 교육부총리 인사가 이기준씨의 자진사퇴로 3일 만에 일단락됐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각종 의혹들이 봇물처럼 터져 이씨와 청와대가 도저히 버틸 수 없을 정도로 이씨의 행적에 문제가 많았던 것이 오히려 다행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뭐라 해도 불행은 불행이다. 이번 파동으로 새 출발을 하려던 노무현 대통령에게 이미 상당한 타격이 가고 말았다. 엎질러진 물이니 이제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왜 이런 일이 터졌는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모두가 지적하듯, 노무현 정부의 인사시스템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 노 대통령도 재산 검증을 위해 사전동의서를 받아 검증하는 방안 등 개선책을 지시했다. 그러나 이는 사태의 핵심을 잘못 파악한 것이다. 이번 일은 사전검증의 한계 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니다. 현재의 검증 시스템 하에서도 공직기강비서관실이 이씨에 대해 사실상의 부적격 판정을 내렸다. 문제는 이를 인사추천회의가 무시한 것, 그리고 그 회의를 이씨의 오랜 친구인 김우식 비서실장이 주재한 것이다. 게다가 청와대는 법도 모른 채 인사 검증을 했다.

이씨가 서울대총장으로 사외이사를 겸직한 것이 문제 된 2002년에는 사외이사 겸직이 금지되지 않았다는 해명이 그 증거다. 분명히 국가공무원법에 당시 서울대 교수의 사외이사 겸직은 금지돼 있었다. 또 교육부는 2000년 각 대학에 문제의 국가공무원법을 근거로 교수들이 사외이사에 참여하지 말라는 공문을 보냈다. 이씨 자신도 총장으로서 이 공문을 교수들에게 보냈다. 한 마디로 청와대가 공무원법조차 살펴보지 않고 이씨가 규정을 어긴 것은 아니라고 잘못 판단해 인사를 했다는 얘기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부총리에 대한 인사검증이 이 정도로 주먹구구라면 이는 도덕적 해이를 넘어서 직무유기다. 그리고 이런 것이 노무현 정부가 목에 힘을 주고 자랑하던 인사시스템 개혁인지, 화가 치민다.

인사시스템을 넘어 근본적 원인은 오만과 오기다. 김영삼 정권 때의 이야기다. 90%대에 이르렀던 인기가 초기 개혁이 자취를 감추면서 급락하기 시작했다. 그 때 ‘오만의 정치’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김영삼 정부는 "무지보다도 더 무서운 것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것은 오만"이라는 내용이었다. 사실 군사정부는 무지했는지 모르지만 오만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김 전대통령은 자신이 민주화운동출신으로 정통성이 있다는 자만이 있었다. 그리고 이 때문에 여론이 나빠지면 그럴수록 오기로 버티는 오기의 정치까지 더해졌다. 이는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심화돼 왔다.

오만이 아니라면, 많고 많은 사람 중에서 이미 각종 불미스러운 문제로 서울대총장에서 밀려난 사람을 골라 부총리를 시킬 이유가 없다. 대한민국에 사람이 그렇게 없는가? "우리가 개혁적이고 도덕적인 정권이기 때문에 흠이 있는 사람도 우리가 쓰면 별 문제가 없다"는 오만이 사고를 부른 것이다. 김대중 정부도 마찬가지여서 광주의 피도 마르기 전인 전두환 정권초기 교육수석을 한 이상주씨를 데려다가 교육부총리 등 요직을 시켰다. 누구의 표현을 빌리자면, 자신들이 세례를 주면 어떠한 죄인도 죄가 사하는 구세주로 자신들을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항복을 하고 말았지만 오기도 문제다. 각종 의혹에도 불구하고 ‘대학도 산업’이라는 천박한 논리에 기반해 이씨가 적임자라고 대통령이 직접 전면에 나서 그를 옹호했다. 또 청와대는 사임 날 아침까지도 이씨의 유임을 재확인하는 등 오기로 버티기 작전을 폈다. 노무현 정부, 아니 우리 모두는 이번 파동을 통해 오만과 오기의 결과가 무엇인가를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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