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양 지진해일의 충격이 세계를 휩쓴 지 보름이 지났다. 대재앙에 덩달아 놀랐던 우리 사회는 우리 국민 희생이 사망과 실종 20명에 그친 것에 안도하면서 교육부총리 인사 스캔들 등 국내 이슈에 다시 매달리고 있다. 각국의 지원 경쟁과 극적 생환 스토리가 더러 관심을 끄는 정도다. 이런 우리와 대조적으로 유럽은 해일 쇼크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많게는 몇 만 명씩 자국민이 재난에 휘말리는 비상사태를 만났기에 후유증도 심각할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들이 사태에 대응하고 논란하는 모습에서 사회적 안목과 국가적 비전이 다르다는 생각을 새삼 갖게 된다.
대재앙은 각국 정부에 두 가지 긴급한 과제를 안겼다. 자국민의 안위를 돌보는 일과, 재난지역에 인도적 지원을 베푸는 것이다. 이 가운데 우선 다급한 자국민 구호에서는 독일 등 몇몇 나라를 제외하고는 안이한 판단으로 늑장 대응했다는 비판과 반성이 많다.
태국에만 자국민 2만 여명이 머문 스웨덴 정부는 외무장관이 사태 당일 저녁 연극을 관람하는 등 심각성을 오판했다는 비난이 높다. 외무장관은 그날 밤 현지로 달려가 구호작업을 지휘했고, 실제 확인된 피해도 사망 50명 실종 700명으로 예상보다 적다. 그러나 총리가 사죄하고 국왕 부부와 함께 희생자를 맞아 여론을 위무하는 한편 정부 실책을 규명할 민간조사위원회까지 구성했다.
사정은 태국 스리랑카 등을 ‘휴양낙원’으로 부르는 북유럽이 모두 비슷하다. 사망 16명 실종 90명에 그친 노르웨이는 진상조사를 총리가 자청했다. 50명이 사망한 영국은 심장수술을 받고 이집트에서 휴가 중이던 블레어 총리가 정초에야 귀국한 것과 관련, 사태 대응을 주도한 브라운 재무장관과 권력투쟁 양상까지 보이고 있다. 이와 반대로 즉각 휴가를 중단하고 서둘러 대응한 슈뢰더 독일총리는 안팎의 칭송을 듣고 있다.
유럽 사회의 해일 쇼크가 심각한 데는 서민층도 즐기는 인도양 휴양을 그들 사회가 누리는 복지의 하나로 여기는 인식이 작용한다. 여느 제3세계 천재지변과 달리 일상적 복지에 위협을 느낀 것이 충격과 논란을 크게 한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이런 이기적 측면의 분석보다 주목할 것은 사회적 연대의식이 강한 것이 바탕이라는 지적이다. 민간이 재난구호와 지원에 앞장서 정부를 곤혹스럽게 하는 현상은 부와 복지를 나누는 데 익숙한 사회 구조와 국민 의식에서 비롯된다는 풀이다.
블레어 총리가 궁지에 몰린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심장수술을 받은 처지이기에 휴가를 계속한 것 자체는 이해하는 분위기다. 또 총리 없이도 정부는 사태 당일 긴급배치팀을 재난지역에 보내는 등 기민하게 대응했다. 재해대책본부는 접수요원만 300명을 동원해 하루 4만 건의 소재확인 요청을 처리했고, 생환자들에게 의료구호 등에 집 문을 여는 열쇠공까지 지원했다. 그러나 다이애너 비의 죽음에 국민의 애도를 선도, 국가적 불행을 국민 단합의 계기로 바꾼 블레어가 침묵한 것은 사회적 연대를 이끌어야 할 지도자의 책무를 외면했다는 비판이다. 뉴욕 테러사태에 단호한 연대를 과시한 것과도 비교된다는 지적이다. 국민의 자부심과 국가적 체모를 손상했다는 결론이다.
독일 정부가 칭찬 받는 것은 재난상황에 잘 대처하는 동시에 재난지역 부조(扶助)에도 모범을 보인 때문이다. 여기에는 물론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 등 외교적 이익을 노린 측면이 있다. 국제 재난은 원래 드물게 찾아오는 정치적 영향력 확대기회로 통한다. 그러나 독일과 유럽은 단기적 이익추구를 넘어, 국제정치의 게임방식을 바꾸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안보동맹이 지배하는 국제사회에서 인도적 연대를 앞세워 독자 영역과 지위를 개척하는 국가 비전이 두드러진다는 것이다. 우리 정부와 사회는 이번 사태에서 과연 어떤 안목과 비전을 내보였는지 되돌아볼 일이다.
강병태 논설위원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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