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올해 새로운 국제음악제가 출발한다. 실내악 축제를 표방한 제1회 부산국제음악제다. 18일부터 31일까지 부산문화회관과 파라다이스 호텔에서 열리는 이 행사는 부산의 공연기획자인 부산아트매니지먼트 대표 이명아(50)씨 혼자 힘으로 준비되고 있다. 기업이 돈 대는 것도 아니고, 부산시가 지원하는 것도 아니다.
국제음악제를 개인이 연다는 건 사실 무리다. 여러나라 연주자를 부르고, 무대를 마련하고, 청중을 불러 모으려면, 돈도 많이 들고 준비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올해로 5회를 맞는 통영국제음악제, 지난해 출발한 대관령국제음악제는 통영시와 강원도가 각각 주최하고 있다. 부산에서는 1990년대 초반 부산국제음악제가 열렸으나 3회로 끝났다. 1996년과 97년 ‘부산 이바하 페스티벌’이 열려 수준 높고 짜임새 있는 실내악 축제로 사랑을 받았지만, 이것도 98년 IMF가 터지면서 스폰서로 나섰던 기업의 지원이 끊겨 사라졌다. 당시 참여했던 음악가와 청중들은 지금도 그리워한다. "참 좋았는데…" 하고.
실무 책임자였던 이씨의 아쉬움은 그래서 더욱 크다. 직접 해봤으니 국제행사를 치르는 어려움도 누구보다 잘 안다. 그런데도 일을 벌였다. "부산은 국내 제2의 도시이고 영화제로 유명해졌지만, 클래식 음악 상황은 별로 좋지 않아요. 조수미 같은 대형 스타의 공연만 표가 팔리고, 그보다 덜 유명한 연주자의 무대는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관심 밖이죠. 그러다 보니 다양하고 수준 높은 음악회가 꾸준히 소개되지 못하는 편입니다. 공연기획자로서 참 안타깝습니다. 그냥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다 싶어서, 해가 갈수록 황폐해지는 부산의 클래식 공연문화에 불씨를 지피는 심정으로 부산국제음악제를 시작합니다."
부산 토박이인 그녀는 부산에서 20년째 클래식 음악만 붙들고 공연기획 일을 해왔다. 음악을 전공하지는 않았지만, 음악이 좋아 이 일에 뛰어들었다. 다른 공연기획사에서 일하다가 98년 부산아트매니지먼트를 차려 독립했다. 부산에서 열리는 굵직굵직한 공연 대부분이 그녀의 손을 거친 것이다. "간 크게 시작은 했지만, 걱정이 돼서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요.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지?’ 하고. 그때마다 음악을 들으면서 좋아할 사람들 생각에 열심히 해야지 하고 다짐합니다. 이바하 페스티벌 당시 청중들이 보여준 진지한 태도와 기쁨이 제게 힘이 됩니다. 예산 5억원 중 외국에서 오는 음악가들의 항공료와 숙박비는 호텔과 항공사가 협찬하고, 소소하게 여기저기서 후원을 받고, 나머지는 표를 팔아 충당합니다. 매년 이어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부산국제영화제처럼 자리잡는 게 소원입니다. 시작은 제가 하지만, 나중에 부산시에 헌납할 겁니다."
요즘은 지방자치단체마다 공연장을 짓고 문화재단을 만드는 게 유행이지만, 부산에는 그런 문화재단이 하나도 없다. 부산국제영화제는 명물이 됐지만, 클래식 음악은 아직 지역사회에서 큰 관심사가 되지 못하고 있다. 이바하 페스티벌이 중단된 뒤로는 사정이 더 나빠졌다.
그녀는 무대예술가와 관객을 이어주는 공연기획자의 역할에 더욱 보람을 느낀다. 음악회는 만찬과 비슷하다. 요리사가 최선을 다해 맛있는 음식으로 멋진 식탁을 차려도 맛있게 먹어줄 손님이 없으면 무슨 소용인가. 부산국제음악제의 성공 여부는 관객에게도 달려있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 부산국제음악제는/ 명연주자 14명 ‘실내악 향연’ 최은식·백혜선 부부 음악감독
올해 첫발을 떼는 부산국제음악제는 운이 나쁘면 이번 한 차례로 끝날 수도 있다. 하지만 준비된 프로그램과 참가하는 연주자들을 보니 그랬다간 몹시 서운할 것 같다. 오붓하고 정밀한 실내악의 즐거움을 만끽할 만한 좋은 음악, 훌륭한 연주자들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비올라 연주자 최은식과 피아니스트 백혜선 부부가 음악감독을 맡아 정성껏 프로그램을 짰다. 악기전공 학생들을 위한 마스터클래스도 동시에 진행한다.
세계적인 연주자 14명이 참가한다. 현존 최고의 클라리넷 연주자로 꼽히는 리처드 스톨츠만을 비롯해 피아노에 백혜선, 블랑카 유리베, 마르쿠스 그로, 바이올린에 루시 스톨츠만과 알리사 박, 김수빈, 줄리언 홀마크, 비올라에 최은식과 노부코 이마이, 나카툴라 인게냐마, 첼로에 로렌스 레서, 안드레스 디아즈 등.
음악회는 모두 7회. 부산문화회관에서 열리는 21일 개막공연은 ‘내가 사랑하는 실내악의 명곡’이라는 부제아래 모차르트의 현악5중주 K.515, 아렌스키의 피아노3중주 d단조, 슈만의 피아노5중주 작품 44를 연주한다. 같은 곳에서 모차르트의 피아노4중주 g단조와 브루흐의 클라리넷·비올라·피아노 3중주, 브람스의 현악6중주를 연주하는 신년음악회(25일), 스톨츠만의 클라리넷과 백혜선의 피아노가 만나는 ‘겨울밤의 클라리넷’(28일), 비올라와 피아노의 이중주부터 현악8중주까지 멘델스존의 곡으로 이뤄진 가족음악회(29일)가 있다. 파라다이스 호텔에서는 디너콘서트(22일)와 교수와 학생이 함께 하는 음악회(30일)가 있다. 27일은 울산 현대예술관으로 가서 연주한다. (051)747-1536 www.busamusicfestiv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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