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5년 1월10일 러시아 농민반란군 지도자 예멜리안 이바노비치 푸가초프가 모스크바에서 참수됐다. 33세였다. 푸가초프는 돈강(江) 근처의 카자크 출신이다. 카자크(코사크)란 15세기 후반에서 16세기 전반에 걸쳐 러시아 중앙부에서 남방 변경으로 이주해 자치적 군사공동체를 꾸린 농민집단을 가리킨다. 러시아의 예카테리나2세가 주변국과 치른 여러 차례의 전쟁에 종군한 뒤 각지를 방랑하던 푸가초프는 1773년 자신이 표트르3세라고 주장하며 카자크를 규합해 반란을 일으켰다.
표트르3세는 예카테리나2세의 남편이다. 그는 1762년 1월에 즉위했지만 육체적으로나 지적으로 허약했고, 대외적으로 프로이센을 추종하고 대내적으로 정교회를 탄압해 인기가 없었다. 아내 예카테리나는 남편이 즉위한 지 6개월 만에 궁정쿠데타를 일으켜 스스로 러시아 황제가 되었다. 제위에서 쫓겨난 표트르3세는 일주일 뒤 암살됐다. 그런데 푸가초프는 자신이 바로 암살됐다고 잘못 알려진 표트르3세라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푸가초프 휘하에는 카자크만이 아니라 농노와 소수민족 유랑자 등 하층민 다수가 모여들었고, 이들 대부분은 푸가초프를 표트르3세로 여겼다. 푸가초프는 이들에게 자신이 부당하게 제위에서 쫓겨났지만 그 덕분에 인민의 슬픔을 알게 됐고, 그래서 농노제를 폐지하고 모든 인민에게 자유를 주기 위해 예카테리나에 맞서 전쟁을 시작했다고 선언했다. 그는 주변 인물들로 ‘내각’을 조직하는 쇼를 벌이기도 했다. 우랄에서 시작된 푸가초프 반란은 삽시간에 각지로 퍼져나가며 스텐카 라진의 반란(1670~1671) 이래 러시아 최대의 농민전쟁으로 발전했다. 푸가초프의 군대는 점령 지역에서 지주의 재산과 토지를 몰수해 농민에게 나눠주며 해방자의 이미지를 만들기도 했다. 2년 만에 진압된 이 반란은 뒷날 푸슈킨의 소설 ‘대위의 딸’의 배경이 되었다.
고종석 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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