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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성의 정치읽기/ 세 번 머리감고, 세 번 식사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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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성의 정치읽기/ 세 번 머리감고, 세 번 식사해야

입력
2005.01.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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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늘 겸손하고 차분했다. 그러면서도 누구보다도 논리적이고 분석적이었다. 그렇다고 따분하지도 않았다. 세상 돌아가는 사정에도 익숙했기 때문이다. 일 처리도 야무졌다. 그래서 그가 청와대에 들어간다고 했을 때 노무현 대통령이 적절한 사람을 곁에 두었다고 생각했다. 노 대통령이 세상사의 한 면만을 고집하더라도 그가 다른 면을 세련되게 보여줄 것으로 믿었다.

그런 그와 최근 전화로 신년 덕담을 나눴다. 이기준 전 교육부총리가 사퇴하기 몇 시간 전이었다. 평소와는 달리 예민해져 있었던 그는 대뜸 "섭섭하다"고 했다. 언론이 이 전 부총리를 너무 가혹하게 비판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민심을 보라"고 했다.

그러나 그는 수긍하지 않았다. 노 대통령이 정말 새롭게 출발하려고 한다, 언론이 도와달라, 이기준 씨는 대단히 능력있는 사람이다… 등등. 그의 말에는 왜 큰 것을 못 보고 작은 것에 매달리느냐는 원망과 안타까움이 묻어있었다. 그리고 몇 시간 후 이씨는 사의를 표명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했던가. 그는 변했다. 아니면 이 전 부총리의 낙마를 막기 위해, 그래서 그가 모시는 노 대통령에 흠집이 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 변한 척 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느 경우든 그답지 않았다. 그가 섭섭했다면 나는 더 섭섭했다.

그 때 그와 마주보고 얘기하고 있었다면, 중국 주나라를 창업한 주문왕의 아들이자 2대 주무왕의 동생이며 3대 주성왕의 숙부인 주공(周公)의 고사를 얘기해주었을 것이다.

조카 주성왕을 대신해 7년 간 섭정을 하면서 나라의 틀을 세운 주공은 자신의 아들에게 "나는 한 번 머리를 감으면 세 번 감아야 했고, 한 번 식사를 시작하면 세 번 식사를 해야 했다"고 말했다. 수천년간 군주와 재상의 덕목으로 내려온 이 얘기는 최고권력자가 식사를 하다가도 사람이 찾아오면 얘기를 듣느라 상을 치우고 나중에 다시 먹기를 세 번씩이나 했다는 겸손의 정치, 여론의 정치를 의미한다.

그도 이 고사를 알 터이다. 그러나 그 의미를 많이 잊은 듯 했다.

하지만 상황을 억지로 수습하려 했던 그의 과오는 청와대의 다른 이들에 비하면 그나마 작다. 이 전 부총리의 하자를 알면서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청와대의 그 누군가는 한참 잘못된 사람들이다.

그들은 뒤늦게 9일 책임을 통감한다며 일괄사의를 표명했지만, 한동안 스스로를 살피고 조심하는 경계의 몸가짐을 잊어버리지 않았는가 싶다. 권력에 가까이 있다 보면 ‘나는 옳다, 너는 따라 오라’는 오만의 미망(迷妄)에 빠지기 쉽다. 그것은 대통령도 마찬가지고 주변 측근들도 그렇다. 주공의 얘기가 더욱 가슴에 와 닿는 요즈음이다.

정치부 부장대우 leey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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