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에는 규칙이 있다. 제대로 된 게임에는 제대로 된 규칙이 있고, 막 된 게임에는 막 된 규칙이 있다. 떠돌이 뜨내기들이 벌이는 게임의 규칙은 ‘한탕’이다. 먹고 튀면 된다. 점잖은 사람은 이런 게임을 피한다. 규칙과 일관성은 통상 함께 가야 한다. 일관성이 결여된 규칙은 시행착오를 가져온다. 원칙 없는 일관성은 파멸로 이르는 특급열차다.
지난 월드컵 때 우리는 축구도 원칙 있는 축구가 강함을 보았다. 히딩크식 축구, 이는 선수 개개인의 체력과 모든 포지션을 소화해 내는 전천후 능력, 그 위에 쌓은 조직력이 원천이었다. 이는 보편성과 상식에 부합된다. 축구의 세계적 조류와도 맥을 같이 한다. 한국 축구는 히딩크 감독을 통해 세계에 닿았고 월드컵 4강에 올랐다. 이를 두고 " 한국식 축구의 개가"라고 하는 것은 지나친 아전인수다.
반복게임, 이는 게임 참가자들로 하여금 당장 눈앞의 이익 뿐만 아니라 장래의 이득에도 관심을 기울이게 한다. 예를 들어보자. 17세기 초부터 260여 년간 일본을 지배한 막부 정부는 지방의 봉건 영지를 직영하기도 하고 일종의 직업 관료를 통해 간접 경영하기도 했다. 직영한 지역의 인구증가율이 간접 경영한 지역의 인구증가율을 상회했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이는 간접 경영지보다 직영지에서 경제성장률이 높았음을 시사한다. 왜 일까. 아마도 직영지를 맡은 막부 정부의 사무라이들은, 간접 경영지를 맡은 관료들에 비해 막부 정부의 지속성에 더 큰 이해가 걸려 있어 해먹더라도 세세(世世)로 해먹기 위해 경제성장에 유리한 정책을 집행한 것은 아니었을까.
다른 예를 보자. 중국은 지난 4반세기 동안 무섭게 성장하고 있다. 집권 공산당은 지역 책임자의 승진에 담당지역의 경제성장률을 하나의 성과지표로 반영시키는 인사고과제도를 운용해오고 있다. 젊은 책임자가 맡은 지역의 성장률은 제도 도입 이전에 비해 현저히 증가했으나 나이 든 책임자가 맡은 지역의 성장률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왜 그런가. 아마도 젊은 책임자는 해먹더라도 승진한 뒤 보다 크게 해먹기 위해 당장은 참고 견디며 지역의 경제성장에 도움이 되는 정책을 편 것이 아닐까.
그간 우리는 일회성 게임만 해왔다. 국민연금, 이대로 곤란하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하지만 역대 집권층 누구도 그 구조를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데 앞장서지 않았다. 온갖 혜택만 늘려 도리어 그 구조를 악화시켰다. 어차피 자신의 재임기간 연금이 바닥나지는 않을 테니까. 결국 막차 타는 후세대만 부담을 떠안게 된다. 그래서 뒤늦게나마 연금법 개정이 진행되고 있는 것은 바람직하다. 지난 30여 년간 우리가 경험한 바에 따르면, 교육과 입시에서 경쟁은 사라지지 않는다. 교육부만 사라지기를 바라고 믿는다. 교육부의 착각 속에 우리는 후손들에게 비뚤어진 경쟁을 시켜왔을 뿐인 것이다. 차라리 경쟁을 인정하고 그 경쟁을 의미 있는 방향으로 유도했어야 했다.
최근 우리 사회는 근시안적, 소모적 게임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정치계든, 학계든, 종교계든 여기저기서 토대가 흔들리고 있다. ‘어른’이 없고 위계질서가 없다. 반복이 없으니 쌓이는 것도 없다. 온갖 분야에서 ‘신지식인’이라는 사람들이 한바탕 재주를 뽐내고 사라진다. 후회해도 고치지는 않는다. 지속성과 철학과 비전이 결여된 국가 정책은 시행착오를 가져오고 역사를 후퇴시킨다.
저절로 되는 일은 나이 먹는 일 빼곤 없다. 남미의 지난 반세기를 보라. 이웃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을 보라. 정신 차리지 않으면 힘들어진다. 집권층은 금년부터라도 온갖 기초를 무너뜨리는 실험을 중단, 더 이상 혼선과 불확실성을 증폭시키는 일을 하지 말고 차분히 미래를 위한 장고에 들어가야 한다.
류근관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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