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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시아 지진해일 대재앙/ 다큐멘터리 제작자 박종우씨가 전하는 아체 참상 2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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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시아 지진해일 대재앙/ 다큐멘터리 제작자 박종우씨가 전하는 아체 참상 2信

입력
2005.01.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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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다 아체는 인도네시아 아체주(州)의 주도이지만, 지금은 쓰나미(지진해일) 참사의 수도나 다름없다. 남아시아에서 가장 많은 시신과 이재민이 있을 뿐 아니라 가장 많은 구호요원과 취재진으로 북적이고 있다. 미국의 콜린 파월 국무장관도,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도 피해 시찰을 위해 이곳을 다녀갔다. 그럼에도 선로가 대부분 끊겨 외부와 통신이 어렵다. 700여㎞ 떨어진 도시인 메단으로 나가 기사와 사진을 송고하기로 했다.

메단까지는 자동차로 편도 15시간을 달려야 한다. 왕복 이틀이 걸리는 강행군길. 게다가 아체 중부 지방은 반군 세력이 우세한 지역으로, 밤에 통행하는 것은 위험하다. 하지만 다음날 취재일정을 위해 6일 오후4시 메단에서 다시 반다 아체로 돌아오는 차량에 몸을 실었다.

해가 지자 정부군 기갑부대가 도로 곳곳에 배치돼 지나가는 차량을 검문했다. 좁은 지방도로에서는 자정이 넘었는데도 반다 아체를 향해 구호물품을 가득 실은 대형 트럭들이 꼬리를 물고 이동하고 있었다.

구눙 바티큐브 산악지방에 이르자 인도네시아 특수 경찰부대 소속의 장갑차가 차량 행렬의 앞뒤에서 호위를 한다. 장갑차를 운행하는 이스마일 중사는 "해발 2,840m의 바티큐브 산이 산세가 워낙 험해 반군의 주된 본거지"라며 "지진이 일어난 뒤 대규?교전은 줄어들었지만 이틀 전에도 전사자가 발생하는 등 작은 전투는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병사들은 고원지대를 지나는 동안 실탄이 장전된 자동소총을 내려놓지 않고 긴장된 표정으로 주위를 경계했다. 그들은 반군이 구호품을 실은 트럭을 공격하여 물품을 빼앗았다고 했으나 사실을 확인할 수는 없었다.

7일 오전 반다 아체에 도착했다. 시내의 모습이 이틀만에 눈에 띠게 달라졌다. 해일의 직격탄을 맞은 시내의 중앙시장 파사르 센트랄은 폐허 그대로지만 다른 곳에서는 하나 둘씩 가게들이 문을 열기 시작했다. 바나나, 리츠, 파파야 등 열대과일을 파는 행상들이 모여들어 자그마한 시장이 서고 한 켠에는 대형 유조차가 와서 1인당 5리터씩 석유를 배급해 주었다.

구호품을 실은 트럭도 속속 도착하여 시내 이곳 저곳에서 구호품을 받으려는 주민들이 장사진을 쳤다. 반대로 시 외곽쪽으로는 쓰레기 더미를 산더미처럼 실은 트럭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었다. 시내 중앙의 바이투라만 모스크는 수백명의 군인들이 동원되어 정돈이 되어 있었고 중앙 시장도 포크레인이 진입하여 길을 내는 중이었다. 미디어 센터의 인도네시아인 공보 담당자는 "복구가 순조롭게 이루어지고 있는데도 외신이 약탈과 방화가 있다고 거짓 기사를 쓰고 있다"며 주장했다.

시민들의 움직임에도 어느 정도 활기가 돌아왔다. 지진, 해일의 충격이 가시면서 정신이 돌아온 주민들은 지진으로 무너진 건물 안으로 들어가 쓸만한 물건을 꺼내느라 분주하게 움직였다.

출입이 금지된 어시장 부근에 살고 있던 유안다 이브라힘(20)씨는 무너진 집에서 가재도구를 꺼내고 있었다. 그는 해일이 밀려드는 순간 오토바이에 타고 있다가 빠져 나와 목숨을 건졌다.

그는 "엉겁결에 혼자 오토바이를 몰고 도망쳤는데 나중에 집에 돌아와 보니 거실이 있던 자리에 20c 길이의 어선이 밀려와 쳐 박혀 있고 집안에 있던 부모님과 형, 여동생, 할머니는 사라졌다"고 울먹였다.

시신 처리 작업도 활기를 띄기 시작했다. 물에 퉁퉁 불은 시신들은 하나씩 비닐 팩에 넣어져 트럭에 실린 다음 매장지로 향했다. 해안 쪽 주택지에는 밀려온 물이 미처 빠지지 못하고 뻘을 만들어 자동차나 사람이 들어갈 수가 없었다. 이처럼 접근이 어려운 지역에서는 코끼리가 10여마리가 활약을 하고 있었다. 코끼리들은 붕괴된 건물의 잔해나 자동차, 오토바이 등을 치우고 밑에 깔린 시신까지 찾아내었다.

중앙 시장 근처의 BNI 은행 건물 앞에서는 20여명의 사람들이 모여 막대기로 땅을 파내고 있었다. 비닐 봉지에 가득 동전을 주워담은 압둘 라만군은 "해일이 밀려들 당시 은행 금고가 열렸다는 소문이 돌면서 사람들이 모여들어 땅을 파내고 있다"면서 "동전은 많이 나오지만 지폐를 찾은 사람은 아직 아무도 없다"고 입맛을 다셨다.

반다 아체 시내에는 해일이 집중적으로 밀려든 아체 강을 따라 네게리 박물관과 루마 민속관이 자리잡고 있다. 이곳에는 15세기 아체 지방의 무기와 가구, 의복, 보석등이 전시되어 있으나 별다른 피해를 입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번 지진과 해일 피해가 가장 극심한 것으로 알려진 서부 해안의 믈라보는 아직 고립되어 있는 상태이다.

믈라보로 연결되는 도로는 큰 교량만 10여 군데 이상이 끊어지고 곳곳이 유실 또는 붕괴되어 복구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반다 아체에서 헬리콥터를 이용하여 믈라보 지역으로 구호품을 수송하고 있으나 전체 난민들에게 전달하기에는 턱도 없다. 견디다 못한 주민들은 해발 3,000m의 푸삿 가요 산맥을 넘어 피난길에 나서고 있다.

AFP통신사의 인도네시아인 사진기자인 파이유씨는 이 길을 따라 믈라보에 가 참상을 취재하려다 실패했다고 한다. 그는 "길을 잃어 밤새 헤매면서 야생코끼리 떼를 만나고 호랑이 소리도 들었다"면서 "난민들이 산을 넘기는 어려울 것인 만큼 하루 빨리 구조의 손길이 미쳐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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