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칠고 입심 센 초선들의 눈치를 살피며 ‘백팔(당내 초선 의원 수)번뇌’ 에 빠졌던 열린우리당 중진 의원들이 입을 열기 시작했다. 초선 강경파들이 주도하는 투쟁 일변도 정국대응과 이념 드라이브를 더 이상 보고만 있지 않겠다며, 민생 우선과 대화정치 복원을 잇따라 외치고 있다. 튀는 초선들을 계속 방치할 경우 당 화합에 저해가 되는 것은 물론, 당이 국민에게 외면 당할 것이라는 게 이들 중진의 공통된 인식이다.
임채정 의장은 7일 "당이 경제와 민생문제 해결에 주도적 역할을 하겠다"며 "당·정·청이 한 마음으로 매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전날에도 "천학비재(淺學菲才)지만 몸으로라도 때우겠다"며 대통령의 새해 국정운영 방향인 민생경제 활성화에 코드를 맞추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이달 28일로 예정된 원내대표 경선을 앞두고 실용주의자인 정세균 의원이 대세를 잡아가고 있는 것도 중진들의 역할과 무관치 않다. 이들은 지난해 말 국보법 대체입법을 주장했고, 연초 당 지도부 공백사태를 맞아 집행위원 명단을 정하는 데 거중 조정역할을 했다.
만남도 잦아졌다. 최근엔 김혁규 문희상 유인태 김덕규 이미경 배기선 한명숙 의원 등이 이부영 전 의장을 위로하는 모임을 가졌다. 이 전 의장은 "정치는 가능한 최선을 추구하는 것이지, 원리주의 운동이 아니다"며 "121석을 갖고 있는 한나라당의 존재를 부정할 수 없는 만큼 대화와 타협은 하기 싫어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원기 국회의장도 연초 중진들에게 "그간 당과 국회에서 중진들의 활동이 위축되거나 스스로 활동을 자제한 감이 있다"며 중진의 적극적 역할을 주문했다.
그러나 ‘중진의 힘’이 초선들에게 통할지는 좀더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강경파 초선들은 당 비상사태를 맞아 잠시 주장을 접은 것일 뿐 기본 노선을 포기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정청래 의원이 "집행위원 명단을 밀실에서 구성한 과정을 밝히라"고 반발한 것이나, 당 홈페이지에 일부 중진을 겨냥한 ‘살생부’가 돌아다니는 상황은 예사롭지 않다.
국보법 문제 등이 재론될 다음 달 임시국회가 중진들의 당 평정이냐, 초선들의 뒤집기냐가 판가름날 1차 고비가 될 전망이다.
조경호기자 sooy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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