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뜬금없이 ‘선진(先進)’이란 용어를 놓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선진한국’과‘선진경제’를 올 주요 국정목표로 제시하자 한나라당이 ‘저작권 침해’라며 반박하고 나섰다.
‘선진’은 노 대통령이 3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선진한국으로 가는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전략지도를 정리하자"고 강조하면서 공식적으로 처음 사용했다. 이에 한나라당이 즉각 발끈했다. 박근혜 대표가 지난해 이미 국회대표연설에서 ‘선진화를 위한 4대 개혁과제’를 제시하는 등 선진 개념을 선점했는데, 노 대통령이 이를 가로채 버렸다는 이유에서다. 박 대표는 6일 "열린우리당이 주창한 선진의 개념이 옳다고 생각한다면 열린우리당이 줄곧 주창했던 상생의 정치를 실천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며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다. 박대표의 반응이 민감해진 것은 물론 당 체질개선의 중요한 ‘컨셉트’가 ‘선진’이라는 사실도 배경에 깔려있다.
그러자 우리당 김현미 대변인은 "한나라당이 특허를 내지 그랬나. 박 대표의 수구적 행태 볼 때 선진 거론하는 게 우습다"며 역공에 나섰다. 청와대 관계자도 "한나라당의 저작권 시비는 비선진적인 발상"이라고 비꼬았다.
하지만 지난해 마지막 날까지 지속된 정쟁에 시달려온 국민들로서는 신년벽두의 ‘선진타령’이 어이없기만 하다. 사실 선진은 이미 3공, 5공시절에 경제개발 캐치프레이즈로 사용돼 온 단어로 전혀 새로울 것도 없고 저작권을 주장할 만한 사안도 아니다. 설사 논전을 벌일만한 가치가 있다고 양보해도, 경제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는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선진이란 ‘간판’이 아니라 국민모두가 공감하는 정치문화의 선진화다.
권혁범 정치부 기자 hb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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