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개혁을 추진하다 반대파에 밀려 물러났다." "도덕성 문제와 무리한 대학운영에 따른 당연한 사퇴였다."
이기준 신임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 임명을 둘러싼 도덕성 논란이 일파만파로 확대되는 와중에 이 부총리의 서울대 총장 사임 사유를 놓고 청와대 및 이 부총리측과 시민단체간에 치열한 진위 공방이 벌어지고있다. 대기업 사외이사 겸직 등 도덕성 시비로 촉발된 인선 논란이 3년전 총장 사퇴 사유 논쟁으로 번지는 양상이다.
청와대는 지난 4일 이 전 서울대 총장을 신임 교육부총리에 임명하면서 "(그는) 대학개혁을 추진하다 중도하차 했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서울대를 세계적 수준의 대학으로 확 바꾸는 작업을 벌이다 반대파들의 압력에 부딪쳤고, 도덕성 시비가 겹치면서 결국 사퇴했다"는 것. 하지만 이 부총리가 서울대 총장 재직 당시 LG 계열사 사외이사 겸직 사실 등을 폭로했던 참여연대는 "새빨간 거짓말"이라며 정면 반박하고 나섰다. 참여연대는 다음날인 5일 기자회견과 성명을 통해 "이 부총리가 대학개혁을 벌이다 낙마했다는 청와대 관계자의 말은 명백한 사실왜곡"이라고 발끈했다.
참여연대 관계자는 "이 부총리는 총장 취임 후 학내의 거센 반발을 무시한 채 일부 교수들과 독단적으로 학교를 운영했다는 것은 부동의 사실"이라며 "특히 인문사회 분야 학문을 사실상 고사시키는 정책을 펴 학내 갈등을 부추긴 장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서울대교수협의회 집행부를 맡았던 한 교수도 "이 부총리가 개혁을 하다 반대세력에 쫓겨난듯한 이야기가 나도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특정 분야 우대 정책으로 학문간 격차를 더욱 벌리거나 무리한 학과 통폐합 등 밀어붙이기식 행정, 판공비 과용, 연구비 몰아주기 등 이해할 수 없는 학교운영으로 사퇴를 자초했다"고 지적했다. 서울대 총학생회측도 "2002년에 ‘부끄러운 서울대인’에 불명예 선정됐다는 사실만으로도 그의 독단과 무능을 쉽게 알 수 있지 않느냐"고 했다.
하지만 다른 의견도 적지 않다. 자신을 ‘서울대 중도파 교수’라고 소개한 한 교수는 "이 부총리가 강력한 개혁마인드를 가졌던 것은 당시 교육계에 알만한 사람은 모두 안다"며 "워낙 이공계 등을 우대하는 실용주의 노선이 강한 반면 기초학문에 대한 배려가 상대적으로 적다보니 적을 많이 만들었고, 엎친 데 겹친 격으로 사외이사 겸직 등 사안이 터져 물러났다고 보는 게 정확하다"고 전했다. 사회대의 다른 교수도 "이 부총리가 총장 재직시 서울대는 눈에 띄는 질적 향상을 가져왔다"고 주장했다. ▦교수업적평가제 도입 ▦대입시 학교장 추천제 ▦SCI(과학기술논문인용색인)급 논문수 발표 ▦교수임용시 타 대학 출신 3분의1 임용 등은 이 부총리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했던 업적이라는 것.
참여연대측은 교육개혁시민운동연대와 범국민교육연대 등과 6일 청와대 인근에서 다시 기자회견을 갖고 "이 부총리의 교육개혁 업적은 학문과 학내 구성원을 갈라놓은 것 밖에 없다"며 "청와대는 공인으로서 갖춰야 할 기본적 도덕성 마저 결여한 인물의 임명을 즉각 철회하고 개혁적 인사를 재임용하라"고 몰아붙였다.
한편 이 부총리는 이날 오전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 "일련의 불미스러운 일이 생겨 유감이지만 맡은 소임을 더 잘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교육개혁을 잘 이끌어 궤도에 올리는데 일조하겠다"고 말해 사퇴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김진각기자 kimj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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