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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에세이/ 소풍 못 가던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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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에세이/ 소풍 못 가던 아이

입력
2005.01.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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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1학년 담임을 맡았을 때의 일이다. 봄 소풍을 며칠 앞두고 한 학생이 못 가겠다고 하는데 아무리 이유를 물어도 대답하지 않았다. 비용이 부담돼서 그런가 했는데 의외의 얘기가 다른 학생들에게서 나왔다. "쟤는요.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껏 버스를 타고 가는 소풍을 가 본 적이 없어요. 차를 타면 멀미가 난대요." 잘 이해가 되지않았다. 고등학생이 되도록 버스를 못 타다니.

"좋은 멀미약을 사주겠다"고 달랬지만 그래도 그는 고집을 부렸다. 어떻게든 이번에는 꼭 데리고 가야 되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소풍 하루 전날 그 학생의 친구가 멀미를 가라앉히는 데 효능에 있다는 송진가루를 종이에 싸 가지고 왔다. 안심시키려 내가 먼저 절반 정도를 입에 털어넣고는 학생한테도 먹도록 했다. 그런데 곧 속이 메슥거리는 바람에 결국 화장실 신세를 졌다. 그도 버스가 출발한지 얼마 안돼 봉투를 찾기 시작했다. "아마 멀미고통으로 하루를 보내면서 담임을 원망했겠구나"하고 생각했다.

이후 그 학생의 집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다 허물어져가는 집이었다. 빈집 뒤 켠 마당의 가마솥을 열어봤더니 물에 불은 밥알 몇 개만 떠다녔다. "아, 사실은 소풍 갈 형편이 못돼 그 동안 한번도 가지 못한 것이었구나"하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다. 며칠 뒤 마침 동창회장이 기증한 20㎏ 쌀 부대를 들고 다시 그 집을 찾았다. 인사를 하고 돌아서려는 데 어머님이 부끄러운 듯 비닐봉투를 건넸다. 닭이 막 낳은 따뜻한 달걀 3개가 들어 있었다. 지금 그 학생은 한시간이 넘는 등교 길을 씩씩하게 다니고 있다.

이호천·충남 당진군 송악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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