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일본 신문과 TV에는 야생동물, 특히 ‘곰의 습격’ 소식이 하루가 멀다고 할 만큼 자주 보도됐다. 지난해 7월 관광 명소인 오세(尾瀨)에서 하이킹을 즐기던 남자 2명이 반달 곰의 습격을 받아 갈비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고, 아키타(秋田) 지방에서는 마을 인근 산에서 나물을 뜯던 할머니가 곰의 공격을 받았다. 닛코(日光) 국립공원과 오세 일대에서는 지난해 초부터 7월 중순까지 28차례나 곰이 출현했다. 2002년 연간 출현건수가 20건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차이다.
곰의 습격이 늘어나고 있는 이유는 뭘까. 일본인들이 자연보호를 너무 잘해 사냥꾼 무서운 줄 모르는 ‘신세대’ 곰이 늘었기 때문이라는 게 일본 언론의 분석이다. 과거에는 불곰 등 일부 종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곰은 인기척을 느끼면 도망갔는데, 사냥꾼에 쫓긴 경험이 없는 요즘 곰들은 사람 무서운 줄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나 주일 대사관 김홍우 농무관의 시각은 전혀 다르다. 그는 "일본의 농가인구가 우리나라처럼 총 인구의 7.6%까지 급감, 과거 산촌 농가 등의 제지를 받아 내려오지 못했던 곰 같은 야생동물이 사람들 왕래가 잦은 지역까지 내려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농무관은 "야생동물의 습격은 농촌 공동화에 따른 여러 문제 중 매우 지엽적인 것"이라며 "국가 안보와 국토의 균형발전을 위해서는 전체 인구의 최소 20%는 농촌지역에 거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비어가는 농촌으로 사람을 끌어들이는 방법은 없을까. 김 농무관은 "농촌 특유의 전원환경을 관광자원으로 활용, 도시인을 끌어들이는 것이 가장 유력한 방안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10여년 전부터 지방 정부와 농촌 주민이 힘을 합해 도시민을 끌어들이려는 각종 사업을 체계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지바(千葉)현 와다마치(和田町·마치(町)는 우리나라 면 소재지에 해당) ‘자연의 집’은 대표적인 성공 사례이다.
도쿄(東京)에서 동남쪽으로 100㎞ 떨어진 와다마치는 30년 전만 해도 관내 6개 부락 인구가 1만명을 넘었으나, 최근 6,000명 이하로 급감했다. 특히 6개 부락 중 하나인 카미미하라(上三原) 마을은 젊은이들이 도시로 모두 빠져나가 94년에는 당시 126년 전통의 카미미하라 소학교가 폐교되는 사태까지 맞았다. 이 마을 출신인 ‘자연의 집’ 관리인 스즈키 미노루(鈴木稔·73)씨는 "젊은이와 어린 애들이 사라지면서 유령마을이 됐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주민들이 생각해 낸 해결책은 도시인을 유령마을로 끌어들이기 위한 ‘자연의 집’ 프로젝트였다. 지바현에서 2억5,000만엔을 지원 받고 나머지 2억5,000만엔은 주민들이 부담해 재단을 만들었다. 폐교 3년 후인 97년 학교 건물을 개축, 현대식 수련장으로 바꾸었다. 도시 어린이들을 유치하기 위해 모내기 체험, 죽공예 강의, 일본 전통음식 만들기 체험 등의 프로그램도 개발했다. 운영비를 줄이기 위해 스즈키 관리인만 전임으로 일하고, 청소나 시설관리 등은 주민들이 시간당 100엔 가량의 임금만 받고 번갈아 하기로 했다.
스즈키씨는 "‘자연의 집’ 은 유령마을로 변해버린 우리 마을을 구해냈다는 점에서 대성공"이라고 자평했다. 지난해 도쿄나 요코하마 등 인근 도시에서 이 곳을 방문한 사람이 1만5,573명에 달했다는 것이다. 이 가운데 3,327명은 2~3일간 숙박을 하며 농촌체험까지 했다. 인구가 300명도 되지 않는 마을에 1만5,000여명의 젊은 도시사람이 찾아와 활기를 되찾았다는 것이다.
‘자연의 집’은 주민들에게 경제적 이익도 안겨줬다. 2003년 숙박료 수입이 연간 2,640만엔에 달했고 특산물 판매로 64만엔을 벌어들였다. ‘자연의 집’을 성공시킨 카미미하라 주민들은 비어있는 마을의 경작지를 도시 사람에게 임대, 수익을 올리는 도·농 교류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스즈키씨는 "도시인이 연간 3만엔만 내면 1a(30평)의 논을 빌려준다"며 "도시 사람들이 오지 못해도 우리가 농사를 대신 지어 쌀 35㎏를 보내주기로 했는데, 현재까지 16가구가 신청했다"고 말했다.
‘자연의 집’은 일본이나 한국처럼 고령화와 농촌 공동화가 동시에 나타나는 나라에서도 주민과 지역정부가 현명하게 대처하면 문제를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성공사례이다.
지바=글·사진 조철환기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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