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습자지대고 그린 듯 새 지도와 일치
이번 국토연구원의 연구결과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은 조선 후기의 지리학자 고산자(古山子) 김정호(金正浩·?~1864)가 제작한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의 정확성과 가치가 새삼 재확인됐다는 것이다.
국토연구원에 따르면 주요 산맥의 방향이나 위치에 관한한 이번에 완성한 새 산맥지도와 대동여지도는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다. 연구원 관계자는 "마치 습자지를 대고 그린 듯하다"는 표현까지 사용했다. 구체적으로 대동여지도상의 백두산에서 지리산에 이르는 산줄기와 개마고원 지역, 평안북도 지역의 산줄기가 3차원 산맥지도와 거의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평안남도와 황해도 지역의 산줄기도 동일했고, 전라남북도, 특히 지리산 주변 고흥 지역의 산줄기는 자로 잰 듯 완벽하게 맞아 떨어졌다.
연구원은 "북한이 1996년에 재정립해 내놓은 산맥체계나 산경표의 백두대간체계, 현행 교과서에 수록된 산맥체계 등과 달리 대동여지도의 산줄기체계는 연구결과와 매우 흡사했다"며 "남북한의 서쪽에 흩어져 있는 작은 산줄기들까지 산맥방향이 일치해 현대과학으로 볼 때도 (대동여지도의) 자료적 가치는 대단한 것으로 평가된다"고 말했다. 과학기법이나 측량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에 제작됐다는 점을 감안하자면 도무지 믿기 어려운 수준이라는 것이다.
김정호가 30여 년에 걸친 현장답사와 문헌조사 등을 통해 1861년(철종 12) 완성한 대동여지도에는 산맥뿐 아니라 하천과 바다, 섬을 비롯해 역참, 창고, 관아, 봉수, 목장, 진보(鎭堡), 성지(城址), 온천, 도로 등이 상세히 담겨져 있고 도로에는 10리마다 점을 찍어 거리를 표시했다. 20세기 초 일본 해군이 보유한 근대식 지도보다 더 정밀한 것으로 평가될 정도인데 이번에 현대과학에 의해 다시 한번 그 과학성과 정교함을 인정받게 된 셈이다.
변형섭기자 hispeed@hk.co.kr
■ 김영표 GIS연구센터장/ "실제 산맥 교과서와 다르다" 주위 얘기듣고 연구 착수
"국토의 66%가 산지인 우리나라에서 산맥은 국토를 이해하는 기준입니다. 코흘리개 때부터 시작하는 게 산맥 이름 외우기 아닙니까? 그런데 100년 동안 있지도 않은 산맥을 달달 외워온 거지요."
이번 연구 책임자인 김영표(53) 국토연구원 GIS(지리정보시스템)연구센터장은 막상 3D 산맥지도가 완성되자 스스로도 깜짝 놀랐다고 했다. 그 역시 학창시절에 배우고 익힌 한반도 산맥체계가 이 정도로 오류투성이였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서울대 응용수학과 출신으로 국토연구원 공채1기인 김씨는 자타가 공인하는 국내 GIS 분야의 1인자. 1980년대 말 GIS 기술을 처음 국내에 소개했고 95년부터는 건설교통부가 주관하는 ‘국가GIS구축사업’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그는 산을 좋아하는 주변 친구들로부터 자주 "실제 산맥이 교과서에서 배운 것과 다른 것 같다"는 얘기를 듣고 이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했다. 광대한 지형과 지질현황까지 정교하게 분석해낼 수 있는 GIS 기법을 접목하면 이런 궁금증을 풀 수 있을 것 같아 개인적으로 틈틈이 연구를 해오다 지난해 국토연구원이 산맥연구를 공식 연구과제로 선정한 뒤부터는 이 일에만 매달렸다.
고지도 등 관련문헌 조사부터 5,100개가 넘는 남북한 산지의 수치표고자료(DEM) 입력과 지형모델링 만들기, 위성영상 재구성 등 잔손이 많이 가는 작업을 도맡았고, GIS 재현만으로는 미진하다고 생각되는 곳은 매월 1~2회 지리교사나 산악인들과 함께 직접 현장답사를 했다. ‘우리 산맥 바로세우기 포럼’ 이라는 별도의 연구단체까지 만들어 학술적 논의도 병행했다.
"지난해 말 연구의 개략적 윤곽이 나오면서부터는 사명감 같은 것이 느껴져 휴일도 없이 연구에 매달렸다"는 그는 이번 연구결과에 자부심을 보이면서도 기존 학계나 교육계에 미칠 충격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워 했다. "워낙 기존의 틀을 송두리째 무너뜨리는 결과라…. 하지만 정밀한 과학적 결과인 만큼 선뜻 수용하리라 믿습니다. 새 산맥이름만큼은 우리 정서에 맞게 아름답게 지어지면 좋겠네요."
변형섭기자
국토연구원이 첨단 과학기법을 통해 완성한 한반도 산맥지도는 현행 산맥체계가 얼마나 잘못돼 있는가를 보여준다. 말하자면 우리 스스로 우리 국토의 모습을 100년이 넘도록 ‘오해’해 왔다는 의미다.
■ 백두 ~ 지리산 잇는 ‘등뼈’백두대간 실제로 확인
위성영상처리 및 지리정보시스템(GIS) 등의 실측기술로 구현된 이번 3차원 산맥지도로 인해 ‘낭림, 적유령, 강남, 묘향, 차령’등 우리 국민들이 학창시절 줄기차게 외웠던 산맥들이 실재하지도 않을 뿐더러 산줄기의 방향이나 위치조차 엉터리였음이 드러났다. 1903년 일본인 지질학자 고토분지로(小藤文次郞)의 낡은 이론을 아무런 과학적 검증도 없이 맹종해온 국내 학계에 대한 거센 비판과 함께 각급 학교의 교과서 수정 및 개편 등 상당한 후 폭풍이 예상된다.
◆ 교과서 한반도 산맥은 ‘오류투성이’= 이번 3차원 산맥지도는 무엇보다 우리 국토의 ‘등뼈’에 해당하는 백두대간이 엄연히 실재함을 보여준다. 남북한의 주요 지형을 입체영상으로 재현한 결과 백두산에서 두류산, 금강산, 설악산, 속리산, 지리산에 이르기까지 총연장 1,494.3㎞의 거대한 산줄기(1차 산맥)가 아무런 끊김 없이 뚜렷하게 형성돼 있는 것이 확인됐다. 현행 교과서 산맥체계에는 등뼈에 해당되는 낭림산맥과 태백산맥이 한반도 중부의 추가령구조곡을 사이에 두고 서로 단절돼 있는 것으로 돼 있다. 18세기 말에 편찬된 지리서 산경표(山經表) 이래 우리 민족의 국토 인식체계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백두대간이 고의든, 아니든 간에 일제에 의해 절단된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더구나 현행 교과서 지도에 북한의 자강도 북부에서 남서쪽으로 뻗어 있는 강남산맥이나 평안북도의 적유령산맥은 실제로는 아무런 산줄기조차 없는 지역이었고, 평안남북도에 걸쳐 있는 묘향산맥 역시 지도와는 전혀 다른 형태로 산줄기가 형성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낭림산맥과 태백산맥에서부터 서해안 방향으로 뻗은 것으로 돼 있는 언진, 멸악, 광주, 차령, 노령산맥 등은 대부분 낮은 노년기 산지인 구릉만이 간헐적으로 흩어져 있는 곳으로 사실상 산맥으로 보기 힘든 것으로 조사됐다. 또한 개마고원 내부지역이나 마천령, 함경, 낭림산맥이 지나는 높은 산지에는 크고 작은 산줄기들이 여러 방향으로 분산돼 각기 뚜렷하게 산맥을 형성하고 있으나 교과서에는 전부 누락돼 있다.
◆ 일제의 억지 ‘창지개명’= 북한의 함경산맥과 낭림산맥에서부터 남쪽의 태백산맥, 소백산맥으로 이어지는 현행 산맥체계는 고토 분지로가 저서‘조선산악론’에 발표한 내용을 그대로 수용한 것. 초·중·고등학교 지리부도나 교과서들은 산맥의 표현방식이 약간씩 다르긴 해도 조선산악론의 14개 산맥체계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 그 동안 산악 지형에 밝은 산악인들 사이에서 교과서 산맥이 실제와 다르다는 주장이 자주 제기됐지만 그때마다 지리학자들은 고토분지로가 그은 산맥은 땅 밑의 지질 및 단층구조를 근거로 했기 때문에 실제 외형적인 지형과는 다를 수 있다는 논리로 반박했다. 하지만 이 같은 반박논리 역시 터무니없는 낭설임이 입증됐다. 지하의 지질 및 단층구조를 기초로 산맥지도를 만드는 것은 세계에서도 유례가 없을 뿐더러 분석결과 현행 산맥체계와 지하 구조와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예컨대 단층선의 경우 강남산맥과 적유령 산맥의 일부 지역이 단층방향과 유사하게 그어져 있으나 나머지 모든 산맥들은 단층선 방향과 전혀 무관하게 설정돼 있었다.
한편 18세기에 편찬된 산경표(山經表)의 백두대간 체계도 실제 산맥지형과는 적지 않은 차이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산경표는 우리나라의 산맥을 백두산을 중심으로 백두대간, 장백정간, 낙남정맥, 청북정맥, 청남정맥 등 1대간, 1정간, 13정맥으로 분류한 지리서다. 교과서 산맥체계보다는 그래도 실제와 유사한 측면이 많지만 백두산에서 지리산에 이르는 산줄기의 흐름이 다른데다 개마고원 지역의 산맥이 단절된 것처럼 표시돼 있다. 특히 한반도 서쪽 저지대에 위치한 것으로 나와 있는 산줄기들에서 오차가 많았다.
성신여대 양보경(지리학과) 교수는 이번 연구성과에 대해"고서에서만 나와 있던 백두대간의 존재를 과학적으로 입증했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큰 의의가 있다"며 "100년 만에 처음으로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한반도 산맥지도가 탄생한 것인 만큼 기존의 잘못된 산맥체계에 대한 개편을 서둘러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변형섭기자 hispeed@hk.co.kr
■ 새 산맥지도 어떻게 만들었나/ 각종 데이터를 GIS로 재현 지도상 오차 30m에 불과
국토연구원은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산맥의 개념(선상(線狀)이나 대상(帶狀)으로 길게 연속되어 있는 지형)을 근거로 산맥을 분류했다. 예컨대 산봉우리가 길게 연속된 지형 가운데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산줄기만을 산맥으로 보았다. 그 결과 한반도에는 현행 교과서 산맥체계(14개 산맥)보다 3배 이상이나 많은 48개의 산맥이 형성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각 산맥들은 한반도 전역의 산지에 대한 수치표고자료(DEM)와 지질현황도, 위성영상 등 각종 데이터를 컴퓨터에 입력한 뒤 지리정보시스템(GIS)의 공간분석기법을 통해 재현했다. 지도상 오차가 30c에 불과하기 때문에 사실상 실제 산맥지형을 그대로 축소한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는 게 연구원측의 설명이다.
이렇게 재현된 산맥 가운데 한반도에서 가장 고도가 높고 긴 주(主)산맥을 1차 산맥으로, 다시 1차 산맥과 나뭇가지처럼 서로 연결된 산맥들을 규모에 따라 2차(20개)와 3차(24개) 산맥으로 구분했다. 또 1, 2, 3차 산맥과는 연결되어 있지 않지만 일정 규모 이상의 연속된 산맥이 형성돼 있는 곳을 ‘독립산맥’으로 표시했다.
주산맥은 가장 높은 고도의 백두산에서부터 발원해 두류산, 금강산, 태백산을 지나 남쪽의 지리산 천왕봉에 이르는 총 연장 1,494.3㎞의 연속된 산지로 이루어져 있다. 아직 학계에 정식 보고된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새로 그어진 산맥에는 고유이름 대신 번호를 매겼다. 2차 산맥은 각각 북쪽에서부터 주산맥에 연결된 순서대로 1번(MR2-1)에서 20번(MR2-20)까지, 2차 산맥과 연결된 3차산맥도 1번(MR3-1)에서 24번(MR3-24)까지의 번호를 부여했다. 독립산맥은 황해도 구월산 주변, 서울과 경기도 일원에 걸친 삼각산(북한산) 주변, 남해안에 걸쳐 있는 산맥 등 3곳에 형성돼 있다.
현재 번호로 매겨진 산맥들은 앞으로 학술적 논의와 지역민 의견수렴 등을 거쳐 국민정서에 부합하는‘제 이름’을 찾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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