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으로 공개되었던 영화들이 장편의 옷을 입고 잇따라 개봉한다. 송일곤 감독의 ‘깃’과 김동빈 감독의 ‘레드 아이’가 그 주인공.
송일곤 감독의 ‘깃’은 환경재단이 제작한 환경 옴니버스영화 ‘1.3.6’의 세편 중 한 편. 단편 아닌 단편인 셈이다. 지난해 10월 열린 제1회 서울환경영화제 개막작에 ‘포함’되어 첫 선을 보였다. 환경재단이 처음 요구했던 상영시간은 30분. 더 이상 줄일 수 없다는 감독의 고집이 70분짜리 단편을 낳았다. ‘1.3.6’에서 떨어져 나와 14일 개봉되는 ‘단독 버전’은 재편집하지 않은 그대로다. 좀 짧지만, 극장서 즐기기에 부족함이 없다.
김동빈 감독이 ‘링’에 이어 6년만에 내놓는 ‘레드 아이’는 인터넷포털 ‘다음’ 온라인영화제에서 8분짜리로 처음 소개되었다. 처음부터 단편 버전을 염두에 두고 장편 촬영을 했다. 장·단편 모두 열차승객이 겪는 공포라는 구성은 같다. 2월4일 개봉하는 103분 짜리 장편은 단편을 뼈대로 여기저기 살을 붙여 영화적 재미를 더했다. 남자 주인공 찬식(송일국)이 단편에서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과 인터넷 검색장면이 장편에 포함되지 않은 점이 다르다.
옴니버스영화 중 한 편이 따로 독립해 개봉하고, 한 영화가 장·단편으로 동시에 만들어지는 ‘기현상’은 디지털 제작환경에서 비롯되었다. ‘깃’은 6㎜디지털 캠코더로 촬영했기에 7,000만원으로 장편같은 단편이 될 수 있었다. 35㎜로 찍은 ‘레드 아이’는 디지털편집이 없었으면, 단편은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디지털이 영화에 미치는 놀라운 영향력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해준다.
단편 ‘소풍’에서 한가족의 집단자살 과정을 잔인하다 싶을 정도로 정밀하게 묘사하고, 장편 데뷔작 ‘꽃섬’에서는 신화와 판타지를 뒤섞어 가슴을 먹먹하게 했으며, 지난해 두번째 장편 ‘거미숲’으로 아내를 잃은 한 남자의 음울한 정신세계를 탐험했던 송일곤 감독. 독특한 영상미로 국내외 평단에서 인정받는 그에게 일반 관객은 거리감을 느껴왔다. 그러나 14일 개봉하는 ‘깃’은 풋풋하고 말랑말랑한 사랑이야기다.
이제 막 영화 한편을 끝낸 감독 현성은 제주 우도로 향한다. 10년전 헤어진 연인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다. 폴란드로 유학을 떠난 그녀는 독일 남자와 사랑에 빠졌고, 현성과는 영영 이별이었다. 옛사랑과 함께 묵었던 모텔에 투숙한 현성은 백사장에 묻힌 타임캡슐 속 빛 바랜 사진을 찾아내 즐거웠던 옛 시절을 더듬는다. 그리고 우도서 만난 모텔 아가씨 소연과 사랑을 싹틔운다.
‘깃’은 ‘무난한’ 사랑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현실과 환상을 가로지르는 예의 송일곤식 화법을 여전히 보여준다. 옛사랑이 서울 자취방에서 사용하던 피아노가 느닷없이 모텔로 배달되고, 공작이 바닷가를 거닌다. 그러나 주인공 현성이 추억을 묻고 새로운 삶을 꿈꾸도록 마련된 장치들이 낯설게 다가서지는 않는다. 디지털로 담아낸 우도의 풍광은 거칠면서도 부드럽다. 따사로운 초가을 햇볕이 객석에 드는 듯하고, 연신 불어대는 바람 소리는 귓가를 스치듯 가까이 느껴진다. ‘꽃피는 봄이 오면’의 장현성과 ‘스캔들’의 이소연이 주연을 맡았다. 12세 관람가.
라제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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