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7호선 방화사건에 대한 경찰 수사가 잇따라 허점을 드러내 미궁에 빠지거나 장기화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경찰이 사건 초기 지목했던 유력한 용의자가 증거 부족으로 풀려나 부실 수사에 대한 비난이 일고 있다.
경기 광명경찰서는 이번 사건의 용의자로 긴급체포한 윤모(48)씨의 혐의 입증이 어려워지자 추가 조사를 벌이기로 하고 5일 오후 4시 윤씨를 석방했다. 경찰은 불에 탄 흔적이 있는 윤씨의 옷과 신발을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보내 지하철 방화 현장과의 연관성 분석을 의뢰했으나 "시료부족으로 휘발성 물질을 확인하지 못했다"는 통보를 받았다.
윤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믿고 있던 경찰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경찰 관계자는 "윤씨를 범인으로 지목한 목격자의 증언이 매우 구체적이었고, 윤씨에게 최근 방화 경력이 있었으며, 검거 당시 신발과 옷에서 불에 탄 흔적이 발견돼 상당 부분 의심이 갔다"며 "현재로서는 수사를 원점에서 다시 시작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경찰은 초동 수사 과정에서 윤씨가 범인이라고 지나치게 확신한 채 국과수 분석 의뢰 이외에는 추가 증거 및 증인 확보를 위한 조치를 거의 취하지 않았다. 현재 윤씨의 혐의를 뒷받침하는 것은 목격자 1명의 진술 뿐이다. 경찰 관계자는 "목격자 한 사람의 진술로는 구속하기 힘들다"고 인정하면서도 "그러나 당시에는 기관사와 서울도시철도공사 관계자를 불러 사건 경위를 파악하는 데 중점을 둬 다른 목격자 확보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고 해명했다. 또한 윤씨의 알리바이 가운데 일부가 맞는 것으로 확인됐고 거짓말 탐지기 조사에서 진실 반응이 나왔다는 점에 무게를 둘 경우 경찰이 엉뚱한 용의자에 매달리는 통에 진범에 대한 수사가 늦어졌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결국 경찰이 불완전한 목격자 진술과 ‘방화 경력의 노숙자’라는 식의 정황 증거 만으로 성급하게 사건을 마무리하려다 어려움을 자초했다는 것이 상당수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경찰은 이날 화재발생 구간을 중심으로 수배전단(현상금 1,000만원)을 배포하고 플래카드를 내걸어 추가 목격자와 증거 확보에 나섰지만 사건 발생 후 시간이 상당히 흘러 성과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경찰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제보를 받는 수밖에 방법이 별로 없다"며 "윤씨에 대해서도 계속 수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진성훈기자 bluejin@hk.co.kr
신기해기자 shinkh@hk.co.kr
■ ‘승강장에 불’오판 사령실 "열차에 불" 수정해 전했나
지하철 7호선 방화로 화재가 발생한 직후 열차가 아니라 승강장에서 불이 난 것으로 오판했던 종합사령실이 상황을 제대로 파악한 뒤 인근 역에 이를 다시 전파했는지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경기 광명경찰서는 5일 "승강장이 아니라 열차에서 불이 났다"는 철산역의 재보고를 받은 종합사령실이 다음 역에 상황을 다시 알렸고 소화기를 들고 기다리던 광명사거리역 역무원이 화재를 진압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광명사거리역 CCTV에는 사고 열차가 역에 진입하는 순간에도 승객들이 평소처럼 승장장에서 기다리고 있고 역무원이 뒤늦게 소화기를 들고 나타나 진화를 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 종착역인 온수역 CCTV 화면에서도 마찬가지로 승강장의 승객들이 연기를 뿜으며 진입하는 열차를 쳐다보는 모습이 잡혀 인근 역들이 종합사령실의 재전파를 받지 못했거나 전파를 받고도 대피 안내 방송 등 제대로 된 대처를 하지 않았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화재 열차 기관사 역시 "광명사거리역에 진입하면서 후사경을 통해 열차 뒷부분에서 연기가 나는 것을 보고 화재 사실을 알았다"고 말했고 광명사거리역 다음 역인 천왕역 관계자도 "철산역 승강장 화재는 전달받았지만 이후 객차 내 화재가 났다는 수정 전파를 받은 기억이 없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종합사령실은 승강장 화재보다 위급한 객차 내 화재에 대해 신속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안형영기자 ahn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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