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3년밖에 남지 않았다. 이 정부에게 하는 말이다. 난리를 친 지난 2년을 되돌아보면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고, 하지 않아도 좋거나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한 것이 많다. 현 정부 출범 때 급박한 과제는 북핵 문제와 경제였다. 둘 다 전 정부에서 제대로 풀지 못했거나 더 꼬인 상태로 넘겨받은 점도 있다. 그러나 정부를 책임진 이상 전 정부에게 책임을 돌릴 수는 없다.
지금도 우리는 변혁과 경장(更張)의 시대를 살고 있다. 우리 삶에서 시대착오적인 모순들을 털어내고, 미래를 개척하는데 필요한 새로운 구조와 문화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국가운영의 시스템도 혁신해야 하고, 인재를 길러내는 방식도 개조해야 하며, 담론을 형성하는 방법도 바꿔야 한다. 있는 것을 마구 부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것을 만들어내 모순이 구조적으로 해소되게 하는 것이다.
현 정부가 이에 대한 인식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방법에서는 많은 실책을 저질렀다. 개혁의 실행은 반개혁의 저항에 부딪치지만, 개혁의 방법을 잘 알면 이런 저항을 무리 없이 극복하고 시간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면서 개혁프로그램을 체계적으로 이끌어갈 수 있다. YS, DJ정부 모두 초기에는 개혁의지가 있었지만, 방법에서 실패했기 때문에 2년이 채 못 돼 국정운영능력에서 바닥만 드러내고 말았다. 개혁이 실패하고 갈등만 심화 시키면 임기말로 갈수록 각자 자기 살 길을 찾기 때문에 권력내부의 부패가 가속화된다.
현 정부 출범당시부터 많은 이들이 개혁의 목표나 의지보다 방법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음에도 불구하고 현 정부 역시 방법에서 시행착오를 거듭하다가 결국 이 시점까지 별 성과 없이 불필요한 갈등만 많이 만들어냈다. 진보와 보수 논쟁도 국가권력이 개입할만큼 의미있는 것은 아니다. 서구에선 이미 20세기 중반에 종식된 혁명노선이나 사회주의변혁노선을 내세워 진보인양 했지만 그건 철저히 관념적이고 종파주의적인 것이었다. 본질은 냉전반공이념 만큼이나 교조주의적 수구에 지나지 않는다.
여기에 1970~80년대 운동세력들은 미래개척의 새로운 담론을 만들어낼 역량부족에 허덕이다가 민주화담론을 내세워 자기 몫들을 챙겨갔다. 이 과정에서 현 정부는 ‘노무현 도구론’에서 한치도 빠져 나오지 못했다. 코드를 알면 코드를 말하지 않지만, 개혁의 방법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코드 운운하며 허송세월 해버린 것이다.
이 정부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불합리한 권위를 탈각시키는 데는 어느 정도 성공했다. 이제는 실질총리제를 체계적으로 운용하고, 대통령은 해외순방의 경험을 최대한으로 살려 20~30년 후에도 누구나 잘 했다고 할 국가적 핵심과제 2, 3개를 대통령과제(President’s agenda)로 정해 남은 임기동안 집중해야 한다.
북핵과 경제는 상시적 과제로 풀어나가면서 미래한국에 대한 구도를 그리고 밑돌을 놓아야 한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청산은 승자독식의 구조를 극복해야 하기 때문에 실질총리제를 운용하되, 승자독식의 대통령제를 계속 유지할 건지 분권적 정부형태로 나아갈 건지에 대해서도 심도 깊은 모색이 필요하다. 승자독식의 구도를 놓고 또 사생결단의 대선에 돌입하면 한국의 미래는 정말 없다.
이제 이 정부는 출범 당시의 초심으로 돌아가 과감하게 야당도 내각에 참여할 수 있게 하고, 개혁의 비전과 능력을 가졌으면 내편 네편 구별말고 천하의 인재들을 모아 대통합의 국정운영으로 나가야 한다. 개혁의 방법을 제대로 아는 개혁전문가들을 등용해 국가를 생산적이고 미래지향적으로 개혁하고, 국력을 한데 모아 국민들이 다시 신바람 나게 뛸 수 있게 해야 한다. 민주화담론에서 빠져 나와 미래한국과 희망한국으로의 길을 여는 새 담론을 만들어낼 시점이다.
정종섭 서울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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