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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업 이것이 살길이다] (10) 일본 농업의 마케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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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업 이것이 살길이다] (10) 일본 농업의 마케팅

입력
2005.01.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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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스미토모(住友) 생명은 지난해 말 2004년 세태를 반영하는 4자 성어를 공모, 10개를 우수작으로 발표했다. 국내 언론에는 한류 열풍의 주역인 배용준을 표시한 ‘욘사마(樣樣樣樣)’가 집중 보도됐다. 그런데 나머지 9개 우수작 중에는 일본에서 기상 관측이 시작된 이후 가장 많은 10개 태풍이 일본 열도로 몰아친 것을 빗댄 ‘台風常陸(다이후 조리쿠)’도 포함됐다.

매년 평균 2.6개의 태풍이 상륙하던 일본에 그 네 배인 10개의 태풍이 들이닥쳤으니 농작물 피해가 대단했다. 전국 곳곳의 과수원이 피해를 입어 과일이 제값을 못 받는 사태가 잇따랐다. 우리나라 같으면 피해 농민들이 망연자실한 채 태풍을 원망했을 테지만, 일본 농민들의 반응은 사뭇 달랐다.

18호 태풍 송다로 피해를 입은 일본 동북부 아오모리(靑森)현과 아키타(秋田)현의 일부 과수 농가는 위기를 기회로 삼았다. 낙과를 수거해 깨끗이 씻은 뒤 ‘18호 태풍 과일’이라는 브랜드로 포장해 내놓았다. 맛은 떨어져도 태풍 피해 농가를 도와주려는 도시민들에게서 큰 인기를 얻었다. 일본 농민들이 더 이상 단순한 농산물의 생산자가 아니라, 마케팅의 중요성까지 알고 있는 사업가로 진보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일본 도쿄(東京) 한복판에 있는 ‘쌀 갤러리’도 일본 농민단체가 마케팅의 중요성을 얼마나 절실히 깨닫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쌀 갤러리’가 들어선 곳은 평당 땅값이 1억엔(한화 10억원)을 넘는 긴자(銀座) 거리다. 천문학적인 땅 값 때문에 고급 백화점과 명품 상가만 몰려있지만, 일본 전농(우리나라의 농협중앙회)은 당장의 손실보다는 다양한 브랜드의 쌀을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며 거액을 들여 6년째 ‘쌀 갤러리’를 운영 중이다.

일본 쌀의 모든 정보를 제공하는 ‘쌀 갤러리’는 1991년 긴자의 허름한 뒷골목에 문을 열었으나, 99년 쌀 시장을 개방하면서 현재의 중심가로 옮겼다. 총 200평 규모의 2층 건물에는 25명의 직원들이 오전 11시부터 오후 7시까지 근무하고 있다.

1층 절반은 미디어 전시코너이다. 컴퓨터나 대형 스크린의 버튼만 누르면 쌀과 관련된 모든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대형 스크린에서는 쌀로 만든 가공식품과 쌀에 관한 TV 프로그램을 소개하는 것은 물론, 주요 쌀 관련 행사도 알려준다. 1층의 나머지 절반은 샴푸와 목욕용품 등 쌀로 만든 화장품 80여종을 전시 판매하는데 사용된다.

쌀 갤러리 요시카이 료이치(吉海僚一) 주임은 "쌀로 만든 화장수가 가장 큰 인기를 얻고 있다"고 말했다.

2층에는 주먹밥 삼각김밥 등 쌀로 만든 음식을 판매하는 레스토랑이 있다. 음식 값이 인근 식당보다 10~20% 가량 저렴해 직장인 사이에 인기가 높다. 요시카이 주임은 "갤러리 이용객이 하루 평균 2,000명에 달하며 토·일요일에는 3,000명을 넘는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인의 1인당 쌀 소비량(2002년 현재 62.7㎏)이 감소하는 추세를 막지는 못하겠지만, 매년 감소세가 줄어드는 것에 의미를 두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 전농은 긴자의 쌀 갤러리와 비슷한 시설을 도쿄역과 오오사카, 후쿠오카에도 운영하고 있다.

일본의 각 지방자치단체도 자신들에게 맞는 브랜드 개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니가타(新瀉)현과 아키타현은 쌀 생산에 자원을 집중, 쌀 하면 ‘니가타 고시히카리’, ‘아키타 코마치’라는 브랜드를 구축했다. 시즈오카(靜岡) 지방은 차와 밀감, 아오모리 지방은 사과, 돗토리(鳥取) 지방은 배 등 지역 특산물에 브랜드를 붙이는 방식으로 고부가가치화를 실현하고 있다.

도쿄에 인접한 지바(千葉)와 도치기 지방은 도시인의 아침 식단에 빠질 수 없는 파와 배추, 당근 등 108개 품목의 야채를 하나의 브랜드로 묶으려 하고 있다. 저가시장에서 급속히 시장점유율을 높여가고 있는 중국산 농산물에 대항하려면 브랜드화를 통해 고품질 시장을 창출하는 게 절실하기 때문이다.

‘브랜드 상품’으로 경쟁력이 강력해진 일본 농업은 이제 해외시장까지 넘보고 있다. 아오모리 지방 농민들은 2002년 특산품인 사과를 동남아시아에 1만톤(26억6,000만엔)이나 수출했다.

㎏당 수출가격은 국내 출하가격(㎏당 230엔)보다 35엔 이상 높은 266엔이다. 아오모리 농협은 장기적으로 ‘아오모리 사과’라는 브랜드를 한국과 중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전역에 구축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도쿄=글·사진 조철환기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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