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11월9일 베를린장벽이 무너졌고, 그 장벽을 무너뜨린 직접적인 동력은 바로 ‘나’ 클라우스 울취트에게서, 엄밀히 말하면 ‘나’의 거대해진 성기에서 비롯됐다……, 고 한다면? ‘미친 놈!’ 소리나 듣고 말 이 억지를 ‘믿기지 않는 진실’이라며 정색하는 소설이 구 동독출신 작가 토마스 브루시히의 ‘우리 같은 영웅들(유로 발행)’이다. 소설은 그 엽기적 황당무계함을 통해 통일 전 동독과 동독 주민들의 실상, 장벽 붕괴의 과정을 이야기하고 있다.
‘나’는 한 권의 자서전으로 노벨 평화상과 문학상의 후보가 될 것임을 확신하는 마흔 살(2005년 기준)의 남자다. 확신의 근거가 바로, 장벽 붕괴의 ‘숨은 업적’이다.
‘나’는 슈타지(동독비밀경찰)인 아버지와 의사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칭찬에 극도로 인색한 아버지는 아들과의 간단한 대화조차 외면하는 억압적인 인물이고, 어머니는 ‘위생의 여신’이라는 이름이 어울릴 정도로 청결을 중시한다. ‘나’는 아버지의 시선을 통해 자신이 열등한 존재임을, 어머니로부터는 ‘집 바깥은 불결하고 타락한 세상’임을 끊임없이 세뇌당한다. 특히 성은 혐오와 은폐의 대상이다. 가령 어머니는 ‘섹스(sex)’의 발음상의 음탕함을 중화하기 위해 젝스(sechsㆍ6)로 발음하고, "너, 또 그것(성기)을 가지고 놀았구나"식의 꾸중으로 ‘나’를 위축시킨다. 어른이 되면 자신도 성기가 커지느냐는 질문에 어머니는 왜소한 성기를 지닌 근육질의 고대그리스 조각상을 상기시키며 그것을 미의 원형이라고 교육한다. 발기부전의 ‘나’는 극단적인 성도착증과 과대망상증 증세를 지닌 성적인 미숙아이자, 사회적인 열등생으로 성장한다.
훗날 생체실험의 부작용으로 비대한 성기를 지니게 된 ‘나’는 동독 당국자의 서독 여행 자유화 기자회견 직후 장벽 앞에서 대치하는 수만의 ‘민중’과 몇 안 되던 국경수비대의 우유부단함에서 바로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 "그들은 ‘너 또 그것을 가지고 놀았구나’는 말 한마디로 사람을 꼼짝달싹 못하게 하는 그런 어머니의 아들이었던 겁니다."(p.365) 그는 바지를 내려 수비대의 얼을 빼놓은 뒤 외친다. "자, 국경을 넘어가는 일만큼은 당신들이 직접 해야 합니다."
성적 억압과 권위주의적인 가족관계가 구동독 사회의 알레고리라면, 장벽 붕괴의 근원적 힘으로 상징되던 ‘민중’ 역시 체제순응적 소시민이자 주눅든 열등생에 불과했음을 작가는 가차없이 폭로하고 있다. 소설이 담고 있는 코미디에 가까운 풍자와 냉소, 허망함과 페이소스는 우리 사회의 감춰진 단면으로도 읽힌다.
최윤필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