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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잔인한 자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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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잔인한 자연

입력
2005.01.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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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지금 매일매일 다른 사람보다 높은 값을 불러 이겨야 하는 경매장 같은 곳에 있는 건가." 지난주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이 한 말이다. "프랑스를 왜 이렇게 왜곡해 공박하는지 이유를 알고 싶다." 이는 주미 프랑스 대사가 유엔 국제개발처장에게 보낸 항의서한에서 프랑스를 성금 기부국 명단에서 빼고 언급한 데 대해 밝힌 불만이다. 미국을 배후로 의심하는 가시가 잔뜩 담겨 있는 질문이다. 어디서 오가는 말들인가 하면 15만명이 넘게 죽은 남아시아 지진해일 구호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국제경쟁 무대에서다.

■ 외교의 달인이라 할 만한 국제 명망가들이 구사한 말들 치고는 은유도, 수사도 버린 직설적이고 치졸한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유엔 국제개발처장은 지난주 주요 해일 피해 지원국들로 영국 일본 유럽연합 캐나다 등을 거명하면서 프랑스를 제외했었는데, 이에 프랑스가 발끈했다. 프랑스 대사의 다음 말은 더 걸작이다. "경제규모가 훨씬 작은 프랑스가 낸 돈 2,800만달러는 미국이 낸 성금보다 700만달러밖에 적지 않은데, 왜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는가." 미국이 맨 처음 3,500만달러를 성금으로 내놓은 지난주 말 시점을 비교한 항변이다. 이후 미국은 성금을 3억5,000만달러로 10배 증액했고, 이는 일본에 이어 두 번째다.

■ 남아시아 지진해일 구호 기금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국제경쟁에 인도주의와 인류애만이 넘친 것은 아니다. 45개국에서 20억달러를 넘는 구호성금이 마련된 데 대해 각국 언론들은 어느 때보다도 신속하게, 대규모 모금을 이룬 것을 놀라워 하며 자찬하고 감탄했지만 그것만이 다는 아니다. 일본의 신속한 타산과 이를 의식한 중국의 행보, 미국의 핵심국 중심 주도에 유엔을 내세우는 유럽의 견제 등은 항상 있는 국제정치의 경쟁이라고 보기엔 철면피하다. 한순간에 사라진 15만명의 목숨에 비하면 역겨운 속물 근성이다.

■ 대재난의 역경을 이기는 것은 그나마 인간이 이어갈 수 있는 최선의 드라마이지만, 여기서 새삼 위대함이나 외경을 깨닫기에는 이번 자연은 너무 잔인하다. 지구촌 인류 인도 박애도 이런 재앙 앞에선 산 사람들의 위로를 위한 말들에 지나지 않을 것 같다. 다시 세우고 고치고 치료하며 계속 가려 하지만 어디서 무엇이 예비돼 또 닥칠지 누가 알겠는가.

조재용 논설위원 jae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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