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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유엔사무총장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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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유엔사무총장의 조건

입력
2005.01.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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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사무총장은 유엔 사무국의 수석행정관이며 가맹국 및 다른 국제조직과의 관계에서 유엔을 대표한다. 사무총장은 안전보장이사회의 권고로 총회에서 임명하는데, 유엔 운영의 실질적인 책임자로서 행정적 임무 이외에도 정치적, 기술적, 재정적 관리와 유엔직원임명 권한까지 가진 실로 막강한 자리다.

사무총장 후보 추천은 안전보장이사회의 막후에서 강대국 간 고도의 정치적 교섭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래서 역대 유엔사무총장은 이념적으로나, 국제정치의 역학관계로나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중간그룹 국가에서 배출됐다. 대륙별 안배도 고려되는데 그간 유럽에서 두 번, 아프리카에서 두 번, 남미에서 한번 배출됐다.

아시아는 1960년대 미얀마의 U. 탄트 이후 30년 이상 사무총장을 배출하지 못하고 있어 현재의 K. 아난 사무총장의 임기가 내년 말 끝나면 다음은 아시아 차례라는 것이 유력한 설이다. 알려진 바로는 태국, 싱가포르, 인도 등이 차기 사무총장을 자국에서 내기위해 물밑 작업 중이다. 이번에 주미대사로 내정된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도 사무총장 선거에 출마할 뜻을 내비침에 따라 한국도 이 대열에 합류할 듯 하다.

유엔 사무총장은 고매한 인격과 높은 학덕은 물론, 국가간 정치의 장(場)인 유엔을 균형 있게 이끌어 나갈 수 있는 고도의 국제정치 감각과 경륜을 갖춰야 한다. 세계평화에 대한 신념과 헌신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실제로 역대 사무총장들은 각 시기 유엔이 직면한 긴박한 국제정치 현안을 해결키 위해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았다. 스웨덴 출신의 제2대 사무총장 D. 함마슐트는 61년 콩고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몸소 현지로 떠나다 불의의 비행기 사고로 사망했고, 차기 사무총장으로 가장 유력시되던 브라질의 S. 짐멜로 유엔인권고등판무관은 이라크 전장에서 폭격으로 숨졌다.

무엇보다 유엔 운영은 사기업 경영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유엔은 기본적으로 정치적 기관으로서 금전적 이익창출을 위한 곳도 아니며, 또 그래서도 안 된다. 역대 사무총장들도 정치가(리, 함마슐트), 교육자(탄트), 외교관(발트하임, 케야르), 학자(갈리) 혹은 유엔관료(아난) 출신이었지, 사기업 경영자로서 사무총장이 된 경우는 없다. 물론 사기업 경영자라고 해서 유엔 사무총장이 될 수 없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지금까지의 관행과 다른 인물을 유엔 회원국들에게 어떻게 설득할지가 문제다.

더욱이 홍석현 회장이 주미대사를 거치면서 자칫 노골적인 친미파로 분류될 경우 유엔 운영에서 미국의 전통적 라이벌인 프랑스나 중국의 견제로 입지가 쉽지 않을 수 있다. 힘이 모든 것에 앞서는 일반 국제정치와 유엔 정치는 다른 점이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유엔총회에서 191개 회원국 대표의 기립박수를 받으며 입장한 아난 사무총장이 부시 행정부의 일방적인 사임 압력을 이겨낸 것도 좋은 예다.

더욱이 사무총장 선거에서는 우리 외교부가 그간 보여준 발군의 ‘표 끌어모으기’ 실력도 별 소용이 없을 것임을 알아야 한다. 안전보장이사회 5개 상임이사국의 전원 찬성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외교부는 무리한 표 작업으로 부적절한 인사를 국제기구 고위직에 진출시켜 나라 망신시켰던 경우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홍석현 회장의 주미대사 내정은 51년 제1차 한일회담의 우리측 수석대표로 양유찬 주미대사를 발탁한 이승만 대통령의 인사에 버금갈 파격적 기용이라고 할 수 있다. 어느 때보다 어려운 한미관계의 현안과 난제를 그의 탁월한 능력을 통해 풀어가고자 하는 정부의 의지로 해석된다. 우선은 맡은 바 직무에 충실하기 바란다. 그런 후에야 앞서 말한 어려운 장애를 모두 극복한 한국 출신 첫 유엔 사무총장을 기대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용중 동국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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