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日 "미국의 지갑 노릇만 할라"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는 4일 연두 기자회견에서 남아시아 지진해일에 대해 "일본은 아시아의 일원으로서 최대한의 부흥 지원활동을 해나가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일본 정부는 이미 약속한 5억 달러의 무상원조에 더해 ▦전염병 방지 의약품 제공▦가설주택 제공▦급수설비 제공▦자위대 수송기 및 의료·방역팀 파견 등을 추가로 검토하고 있다.
일본이 아시아의 연대감을 강조하면서 적극 지원에 나선 것은 피해지역이 ‘경제적 텃밭’이라는 점 때문만은 아니다. 일본에선 미국이 주도권을 쥐고 지원확대를 독려할 경우, 부담만 늘어나고 생색은 미국이 내는 상황이 되풀이되는 게 아니냐는 걱정이 상당하다. 미국이 지원 핵심국가로 지목한 일본, 인도, 호주, 네덜란드, 캐나다 중에서 대규모 자금력이 있는 나라는 일본 뿐인 것도 사실이다. 이라크전과 마찬가지로 "일본이 ‘미국의 지갑’ 노릇만 하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나온다. 일본은 이번 지원을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에도 활용한다는 복안이다.
실제로 지진해일 방재·복구는 일본이 특기로 삼는 분야다. 피해국들이 일본의 정부개발원조(ODA)를 가장 많이 받아온 나라들이어서 일본의 현지 경험과 실적도 미국에 비해 풍부하다.
미국 주도로 가면 일본의 기여도가 희석되고 일본과 국제기관·피해국과의 협조에 혼선이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올 만도 하다.
마치무라 노부다카(町村信孝) 외무성 장관은 "지원물자 수송, 의료지원 등에서 미국과 연계해 활동하겠다"면서도 구체 협력방안은 자카르타 긴급 정상회담 때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과 별도 회담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마이니치(每日)신문은 "미국 주도의 지원 구도가 강해지는 가운데 일본이 노하우를 어떻게 발휘할 것인가가 주목된다"고 지적했다.
도쿄=신윤석특파원 ysshin@hk.co.kr
■ EU "국제기구통해 구호논의"
남아시아 지진해일 대재앙 피해 구호와 관련, 유럽 국가들은 유엔 등 국제기구나 국제회의를 통한 공조와 협력을 통해 구호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유럽인이 가장 많이 희생된 이번 사태에서도 미국이 ‘대장 노릇’을 하려 드느냐"는 정서가 확산하고 있는 것.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지난달 30일 올해부터 영국이 G8(서방 선진 7개국+러시아) 의장국이 되는 만큼 영국이 구호에 앞장설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구호는 유엔 주도로 이뤄져야 한다"고 못박았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도 판돈 올리기식 구호 경쟁보다는 피해국의 장기 경제 지원을 위해 국제 사회가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거듭 밝히고 있다.
유럽연합(EU) 국가들은 실제로 6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리는 동남아국가연합(ASEAN) 특별 확대 정상회의에도 나라별로 대표 없이 EU 대표만 파견한다. 7일엔 벨기에 브뤼셀에서 각료급 긴급회의를 소집, 루이 미셸 개발원조담당 집행위원의 인도네시아 등 피해국 방문 결과를 보고 받고 EU의 지원 방향을 내부 조율한다.
EU는 피해국에 대한 나라별 지원 분담액은 11일 스위스 제네바 유엔 지원국 회의에서, 피해국 채무 유예·면제 방안은 12일 프랑스 파리 ‘파리클럽’(국제 채권국 모임) 회의를 통해 결정하도록 추진할 방침이다. 이럴 경우 미국의 활동 여지는 상당히 좁아질 수 밖에 없다는 관측이다.
유럽은 4일 현재 8억5,400만 달러의 정부 구호금을 쌓아 미국(3억5,000만 달러)을 2배 이상 앞서고 있다. 미국의 구호금이 수십억 달러에 이를 것이란 얘기가 나오지만 유럽이 정부·민간 구호금 모두 미국을 넘어설 것이란 전망이 더 많다.
안준현기자 dejav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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