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드라마 연기자의 최대 수확이라고 할만한, 그래서 향후 활동이 기대되는 탤런트 소지섭(28). 그는 명멸하는 ‘청춘’의 아이콘이다. "그람시라고 들어봤어?"라고 묻던 ‘발리에서 생긴 일’의 인욱부터 "저 여자만 내 곁에 두신다면(중략) 증오도 분노도 다 쓰레기통에 처넣고 조용히 눈 감겠습니다"라고 독백하던 ‘미안하다, 사랑한다’의 무혁까지. 그가 연기한 반(反) 영웅 캐릭터들은 한결같이 저항, 고독, 비애 같은 단어들의 ‘합집합’이었다. 사람들은 그에게서 속절없는 운명에 쩔쩔매고 하릴 없는 슬픔에 아파했던 젊은 날의 상흔을 읽었다.
"나름대로 인생에 상처가 많죠. 그래서인지 비극이 좋아요. 비극은 그 감동이 여기, 가슴 아래까지 깊숙이 박히니까. 실제 사랑도 조금 슬픈 게 재미있을 거 같아요." 비극의 단골 주인공답다. "밑바닥 인생 연기를 좋아하나 봐요. 재벌 2세는 별로에요. 넥타이 매고 나오면 몸도 불편하고 표현에도 한계가 있고. 양복 입고 길바닥에 주저 않을 수는 없잖아요?"
소지섭은 참 말이 없다. 어떤 장황한 질문에도 ‘잘 모르겠어요’ ‘그런 거 같아요’ ‘그렇죠’ 정도로 답하기 일쑤다. 12월 31일 KBS 연기대상 시상식에서 인기상, 우수상을 탄 뒤 수상소감도 역시나 짧았다. "원래 말을 잘 못하고 많이 하는 걸 안 좋아해요. 그래서 건방지다는 오해를 많이 받았죠. 희한하게 제 팬들도 저랑 똑같아요. 만나도 수줍어서 말을 못하고 그냥 멀뚱멀뚱 바라만 보고 있어요."
그뿐이 아니다. "감성도 메말랐어요. 연기할 때 빼고 여태까지 한 번도 울어본 적 없으니까. 사람 많이 모여 있는 장소에 가는 것도 싫어하고 친구도 별로 없죠. 그래도 재작년까지는 제 휴대폰에 전화번호가 저장된 사람이 30명밖에 안 됐는데 지금은 두 배 됐어요." 어린 시절 부모의 이혼과 가난을 경험하며 체득한 삶의 태도를 바꿀 계획도 없다. "오랜 세월을 그렇게 아파하며 살아서 쉽게 바꿀 수 없을 것 같아요. 수정하면 주위에서 반응도 안 좋고."
그런 그가 도대체 왜, 그리고 어떻게 연기자가 됐을까?
"저도 제 자신에게 묻고 싶은 거에요. 수영을 10년 해서 한국체대 들어갔는데 선수 하거나 애들 가르치는, 예정된 삶을 살고 싶지 않아서 튄 거죠." 1995년 의류업체 전속모델로 송승헌과 함께 연예계에 발을 들여놓은 그는 "쇼 탤런트라는 이야기 들으며, 왜 내가 감독님 앞에서 술을 따라야 하나 이해를 하지 못해 연기를 그만두려 했던" 시절을 보냈다.
그러다 ‘발리’를 통해 내면 연기를 배우고 ‘미사’에서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찾았다. "대사는 별로 없고 복합적인 감정을 표현해야 했던 ‘발리’ 끝내고 나서 스스로 51점을 줬어요. ‘미사’ 마치고 52점이 된 거 같아요. 한 작품에 1점씩, 앞으로 48개 더 하면 100점인데, 10년은 더 걸리겠죠?" ‘미사’ 마지막 회에서 "아저씨 사랑해, 사랑해요"라는 은채(임수정)의 고백을 듣고, 어머니 오들희(이혜영)가 끓여주는 라면을 먹던 소지섭의 슬픈 표정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그저 겸손으로 받아들일 말이다. "어휴, 정말 가슴 아팠죠. 실제 저라면 그런 상황 안 만들었을 거 같아요. 일단 임자 있는 여자는 절대 안 돼요."
6㎏ 정도의 살을 앗아가고 엄청난 스트레스를 겪게 한 ‘미사’를 통해 비로소 ‘연기자’로 다가온 소지섭.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동안 그를 보기 어려울 듯 싶다. "올해 안에 공익요원으로 입대할 건데, 국가에서 부르시면 언제든 가야죠. 그 전에 작품 할 수 있으면 하고 싶은데, 고르기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영화에서 코믹한 연기도 해 보고 싶고."
김대성기자 loveli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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