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건만, 새해는 모든 것이 새롭다. 꿈을 꾼 지가 하도 오래여서 꿈꾸는 것을 꿈꿨을 정도인데, 마침내 간밤에 이상한 꿈을 꾸었다. 그것도 닭의 해를 앞두고 닭 꿈을 꾸다니. 제구포신(除舊布新)의 징조가 아닐까? 지난해 마지막 날 잠들기 전에 본 것은 국회의원들이 쟁점법안 통과를 놓고 싸움하는 모습이었는데, 그들의 서슬 퍼런 싸움에 무의식적으로 투계의 한판 승부가 연상됐던 때문일까? 플라톤이 ‘인간은 날개 없는 두 발 짐승’이라고 정의하자, 이를 전해들은 디오게네스가 털을 벗겨 낸 닭을 집어 던지며 "이것이 플라톤이 말한 인간이다"라고 일갈 했던 일이 떠오르긴 했다.
그러나 내 꿈에 나타났던 닭으로 말하면, 깃털이 눈부시고 도도하기 그지없어 마치 태양이 자기 목소리를 듣고 싶어 떠오른다고 착각할 정도였다. 그가 한 말을 다 옮길 수는 없지만, 어쩌다 땅에 떨어진 깃털을 줍는 셈치고 옮겨본다면 대강 이런 것이었다.
"우리 닭이 누굽니까? 한국인들은 조상이 곰인 줄 착각하지만 그것은 삼국유사만 알고 계림유사는 몰라서 그렇습니다. 김알지가 알에서 나왔고, 그보다 앞서 혁거세가 알에서 나왔으며, 그들이 태어난 곳이 또한 계림이니, 경주는 물론이거니와 신라 땅 전체가 계림으로 불리지 않았습니까?
계림은 고려에 들어서는 죽림으로 바뀌고, 조선에 와서는 사림으로 바뀌었으니 시절의 변화야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만. 계명을 터뜨려 제나라 맹상군을 구한 것이 우리 조상이며, 기성자가 왕에게 받쳤던 목계가 또한 우리 조상입니다. 초서의 ‘캔터베리 이야기’에 도도하게 등장하는 챈티클리어, 셰익스피어가 ‘햄릿’에서 ‘새벽의 트럼펫’이라 일컬은 자가 바로 우리 계류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계류가 인류보다 못한 것이 무엇입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은 닭을 장끼보다도 더 잘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까투리보다도 미련한 장끼는 기억하면서도, 베드로에게 참회의 눈물을 쏟게 했던 우리들 닭은 잘 모르다니. 소로우는 ‘철학이 제 앞마당에서 닭 울음소리를 듣지 못하면 그것은 우리 생각이 이미 고루해진 까닭’이라고 했는데 인간은 인간의 소리밖에는 듣지 못합니다.
그러니 이제 우리도 통 울 맛이 나지 않습니다. 비록 조류독감에 목이 좀 쉬긴 했지만, 금년 한해 우리 조류는 인류를 위해 한 없이 울고 싶습니다."
최병현 호남대 영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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