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년 1월4일 프랑스 경제학자 레옹 발라가 스위스 클라랭스에서 작고했다. 향년 76. 오늘의 주인공 성(姓)은 로마문자로 Walras다. 국내의 경제학 책에서는 더러 ‘왈라스’나 ‘왈라’로 표기되기도 하지만, ‘발라’(국제음성문자로는 /valRa/)가 올바른 표기다. 레옹 발라의 아버지 오귀스트 발라는, 앙투안 쿠르노와 함께, 경제 현상 연구에 수학적 방법론을 적용하려 시도한 첫 세대 프랑스 학자들이었다. 이 두 사람의 영향 아래 지적으로 성장한 레옹 발라도 수학을 경제 연구의 무기로 삼았다.
레옹 발라가 처음부터 직업적 경제학자가 되고자 했던 것은 아니다. 광산학교를 중퇴한 뒤 저널리스트, 금융조합이사 등으로 일하던 그를 로잔대학이 경제학 교수로 초빙하지 않았다면 경제학의 역사는 꽤 달라졌을 것이다. 레옹 발라는 오스트리아의 카를 멩거, 영국의 윌리엄 제번스와 동시에 한계효용이론을 제창한 것으로 유명하다. 효용이란 소비자가 재(財)를 소비하며 얻는 주관적 욕망충족의 정도를 가리키고, 한계효용이란 추가된 한 단위 재의 효용을 뜻한다. 발라, 멩거, 제번스 세 경제학자는 독립적으로 ‘한계’ 개념의 중요성을 강조해 ‘한계혁명의 트리오’라 불리게 됐는데, 이 문제의식이 전형적으로 승계된 것은 멩거가 이끄는 오스트리아학파를 통해서다.
1870년 이래 로잔대학에서 가르치며 로잔학파의 창시자가 된 레옹 발라에게 한계효용이론은 그 자체로서보다 자신이 야심차게 구상한 일반균형이론의 한 부분으로서 의미가 있었다. 발라는 일련의 방정식 체계의 도움을 받아, 완전경쟁 조건 아래서 이뤄지는 가격과 교환의 일반균형에 대한 완성된 모델을 확립하려 애썼다. 그의 작업 틀은 로잔대학 후임자인 빌프레도 파레토만이 아니라 존 힉스, 폴 새뮤얼슨, 케네스 애로 같은 영미권 학자들에게도 계승되며 현대경제이론의 밑바탕이 되었다.
고종석 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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