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화작가 서공임(45)씨가 5일부터 한국일보 갤러리에서 갖는 닭 그림 초대전 ‘닭이 울면 을유년 새벽이 밝아온다’로 닭의 해, 을유(乙酉)년을 기운차게 연다. "닭은 십이지 동물 가운데서 호랑이, 용과 함께 민화에 즐겨 등장하는 소재에요. 닭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액을 막는다는 벽사초복( )의 동물입니다. 수탉이 울면 먼동이 트니까 광명이 비친다는 의미도 있고, 붉은 볏은 벼슬을, 매일 알을 낳는 암탉은 다산을 상징합니다."
서씨는 조상들이 정초에 대문이나 집안에 닭 그림을 걸어놓고, 한 해의 행운을 기원한 것을 이번 전시 관람으로 대신하라고 권한다. 그는 1998년 호랑이해와 2000년 용의 해에도 각각 호랑이 민화와 용 그림만으로 전시를 꾸며 화제를 모았던 인물. 호랑이 그림을 그릴 때부터 십이지 동물 중 염원의 의미가 강한 용과 닭 역시 전통 민화로 차례로 표현하기로 마음 먹고 오래 전부터 준비를 해왔다.
상상의 동물인 용 민화 전시를 준비할 때는 용에 관한 내용이 있는 고문서나 용 무늬가 남아있는 고미술을 찾아 다니며 열심히 탐구했지만, 닭은 어릴 적 기억에 많이 의존했다고 한다. 전북 김제 농촌마을에서 사춘기까지 보낸 서씨에게 닭은 매우 친숙한 동물이다. "요새는 토종 닭을 찾아보기가 어렵지만, 예전의 닭을 떠올려보면 빛깔이 얼마나 곱고 자태가 훌륭한지 몰라요."
이번 전시에는 멀리 동 트는 것을 배경으로 늠름하게 서있는 수탉을 그린 ‘동틀 녘의 수탉’, 부귀영화를 뜻하는 모란과 수탉을 어우러지게 한 ‘부귀공명’, 화려한 석류 아래서 모이를 쪼는 암탉 등 세밀하고 단정한 필체로 그린 닭 그림 30점을 내놓았다. 한지를 울퉁불퉁하게 특별히 제작한 요철지에 앙증맞은 닭 한쌍을 그린 ‘꿈’은 토속적이지 않고 현대적 느낌이 강하다.
고교 졸업 직후 미대에 가려고 물감을 사러 경기 성남 한 화방에 들렀다가 ‘민화 배울 분 모집’이라는 광고를 보고 민화 작업실 문하생으로 들어간 지 26년. 철저한 도제식 교육에 추운 겨울엔 손이 곱는데도 가는 붓을 쥐고 민화 원화를 모사했고, 눈을 너무 혹사한 나머지 노안까지 왔다. 하지만 세상의 푸대접도 모르는 척 하면서 민화작가로 자리를 굳힌 지금, 그의 그림은 TV 사극 소품으로 활용되고 개인소장가들로부터 사랑도 받고 있다. 대학 사회교육원에서 강좌를 열어 민화 대중화에도 앞장서고 있는 서씨는 "민화는 상징적 요소들의 메시지를 독해하는 매력이 있고, 현대적으로 재해석할 여지도 많다"며 "음양을 상징하는 소재들을 갖고 민화의 에로티시즘이라는 테마에도 도전해볼 생각"이라고 밝혔다. 전시는 2월 13일까지. (02)724-2882
문향란기자 iam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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