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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의 정치논평] 패거리 정치를 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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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의 정치논평] 패거리 정치를 넘어서

입력
2005.01.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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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밝았다. 지겨운 2004년이 지나간 것은 다행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새해를 맞는 기분이 즐거운 것은 아니다. 탄핵이다, 개혁이다, 난리를 치고 세밑 마지막 날까지 싸움을 하고도 이룬 것, 남은 것은 별로 없기 때문이다. 또 여러 문제들을 미해결의 상태로 넘겨 놓은 만큼 올해의 경우도 지난해와 별로 다를 것 같지 않다. 아니 앞으로 있을 보궐선거 등을 고려할 때 여야간의 기 싸움은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다.

새해의 문제는 모두가 지적하듯이 경제다. 그러나 재벌기업들은 사상초유의 수익을 내고 있다. 결국 경제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사회적 양극화가 날로 심해져 다수 서민들과 중소기업들이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이 문제다. 따라서 정부가 경제를 살린다며 단순히 경제계가 요구하는 경제 유인책을 펴 나갈 경우 사회적 양극화는 더욱 심화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앞선다. 정치권도 걱정이다. 탄핵으로부터 이철우 의원 간첩음해에 이르기까지 색깔론과 발목잡기로 일관한 한나라당이 새해라고 개과천선할 것 같지 않다. 답답한 일이다.

그렇다고 노무현정부에 기대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 지난해 국민들은 촛불시위로 탄핵 위기에 처한 노무현 대통령을 구해주고 국회 과반수 의석까지 만들어줬다. 그러나 노 대통령과 이해찬 총리는 쓸데없이 냉전세력을 자극하는 이념공세, 막말공세를 펼침으로써 세상만 시끄럽게 만들었지 국가보안법을 비롯한 개혁법안들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다. 무려 1,400여명의 시민들이 살을 에는 추위 속에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한 단식 노숙농성을 벌였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렇게 폼을 잡고 공격적으로 나왔으면 밀어붙여서라도 법안들을 통과시키거나, 그럴 자신이 없다면 폼이라도 잡지 말 일이지, 폼이란 폼은 다 잡아 평지풍파를 일으켜 놓고는 오랜 관습이 하루아침에 바뀌겠느냐며 꼬리를 내린 채 해를 넘기고 말았으니 화가 치민다. 게다가 소리만 시끄러운 빈 수레 개혁이 올해라고 바뀔 것 같지 않다. 개혁을 못 할거면 그저 소리라도 내지 않아주기를 기원해 볼 따름이다.

노 대통령은 신년사를 통해 사회적 양극화를 해소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신뢰가 가지 않는다. 노무현정부는 기존의 노조를 노동귀족이라고 비판하고 비정규직 보호를 이야기해왔다. 그러면서도 파견근로제를 전업종으로 확대하려고 하고 있다. 파견근로제의 확대를 통해 사회적 양극화를 해소한다? 알다가도 모를 기이한 논리다. 또 외국인 노동자들이 지난해 말까지 무려 1년 이상 농성을 벌리며 현대판 노예제도인 산업연수생제도를 폐지하고 노동허가제를 전면적으로 실시해달라고 울부짖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외면했다. 노무현 정부의 반환경성도 심각하긴 매한가지다. 환경단체들은 지난해 말 환경비상시국회의를 개최하고 광화문에서 30일간 노숙투쟁을 벌였다. 지율스님이 60여 일째 단식을 하고 있는 천성산, 새만금, 핵폐기장, 골프장 허가완화 등 노 정권의 반환경적 정책들이 위험수위에 이르렀다는 판단이다. 노무현 정부는 2003년 말 북한산 국립공원 관통도로 공사재개와 관련해 다시는 국립공원 관통도로를 만들지 않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그러나 지난해 말 계룡산 국립공원 관통도로 건설을 승인했다.

그래도 새해인데 뭔가 희망을 가져야 한다. 그것은 바라건대, 우리 사회가 이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최근 나타난 가장 심각한 현상은 패거리문화의 심화와 이성의 실종이다. 오죽했으면 교수들이 지난해의 사자성어로 "옳고 그름을 가리지 않고 뜻이 맞는 사람은 한 패가 되고 아니면 배척한다"는 뜻의 당동벌이(黨同伐異)를 뽑았겠는가. 당동벌이를 넘어 이성을 회복하는 것, 그것이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중요한 출발점이다.

서강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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