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공원 지리산 기슭에 자리한 전북 남원시 인월면 인월리 달오름마을.
2004년을 보내는 마지막 날인 31일 이곳 농촌전통테마마을 운영 사무실에는 10여명의 주민이 모여 송년모임 대신 방학을 맞아 마을에 몰려올 방문객을 맞이할 대책을 토의하고 있었다. 체험프로그램 선정과 민박집 배정, 음식메뉴 등을 꼼꼼히 챙기는 모습이 마치 대도시 이벤트회사 직원처럼 손발이 척척 맞는다.
전형적 산골인 달오름마을이 농촌전통테마마을로 탈바꿈한 것은 2년도 채 안됐다. 2003년 2월 농업진흥청으로부터 2억원을 지원받아 체험장과 산책로를 조성하고 벤치와 정자 등을 설치했다. 당시 여건이 좋은 이웃 마을들은 대부분 체험마을 지정을 기피했지만 달오름마을 황태상(55) 운영위원장은 "침체된 고향을 살릴 수 있는 좋은 기회"라며 주민들을 설득하고 나섰다. 이전까지 달오름마을의 이름은 월평·용계마을로 56가구 189명이 살고 있었다. 주민들은 마을이 ‘이성계 장군이 달을 끌어올렸다’고 해서 그 지명이 붙여진 인월(引月)에 위치하고 또한 월출이 장관인 점에 착안, 아예 두 마을을 합쳐 이름도 달오름마을로 고쳤다.
지리산 자락의 맑은 공기와 물, 달빛의 맑은 기운이라는 천혜의 자연조건을 내세워 ‘달마을의 건강’을 주테마로 삼았다. 기(氣)체조와 명상, 다도, 삼림욕 등의 프로그램을 마련해 이곳을 찾은 도시인들이 깨끗하고 맑은 자연 속에서 몸과 마음의 활력을 찾고 기를 받아가는 곳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웰빙의 추구라는 우리 사회의 흐름과 그대로 맞아떨어졌다.
이 마을 최고의 서비스는 하지만 마을 사람들의 표현대로 "징그럽게 순박한" 인심이다. 마치 가까운 친척집을 오랜만에 찾아온듯 대해줘, 한 번 온 도시인들이 꼭 다시 찾도록 만든다. 들머리집, 술익는 집, 마당 너른 집, 늘 푸른 집, 감나무집 등 10개의 민박집 이름도 정겹다. 산나물 반찬으로 준비한 아침상을 내놓는다. 특산품 인터넷(www.dalorum.go2vil.org) 판매도 선금도 받지 않고 주문 즉시 보내주는데, 아직까지 돈 떼먹은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첫 해 500여 명이던 방문자가 지난해 3,000명을 훌쩍 넘었다. 여름철에는 예약이 넘쳐 체험객들을 다 소화하지 못했을 정도였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두 배 이상 늘 것이라는 예상이다.
마을 사람들이 직접 만든 죽염, 된장, 고추장, 약초, 간장, 규방공예품 등 특산물 판매로 지난해 1억원 정도의 순소득을 올렸다. 다른 수입이 전혀 없던 마을 사람들에게는 놀라운 경험이었다. 김순임(68) 할머니는 "공기도 물도 징그럽게 좋고 마을 인심도 징그럽게 좋지. 우리 마을에는 진짜백이밖에 업슨께 오는 사람마다 다 좋다고 그려"라며 자랑했다.
마을을 찾은 사람들은 직접 죽염을 굽고 우리 콩으로 순두부도 만들어보고, 명창을 따라 신명 나는 판소리를 배울 수도 있다. 철 따라 벼 베기, 감자 캐기, 옥수수 따기, 호박 따기, 고추 따기 등 농사 체험과 장 담그기, 된장 만들기, 박공예, 다도, 기체조, 연날리기 등의 다양한 이벤트를 즐긴다. 한마디로 농촌의 정서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게 한다.
달오름마을은 최근 농협이 주최한 제3회 농촌마을 가꾸기 경진대회에서 3,000만원의 상금까지 받았다. 주민들은 3월께 일본으로 견학도 갈 계획이다. 농촌체험마을 운영에 노하우가 많은 일본 현지를 방문, 친절한 손님맞이와 농가소득을 높일 수 있는 농산물 가공제품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서다. 남원농업기술센터 생활개선팀 문수옥(43·여)씨는 "주5일제 정착과 웰빙 수요라는 도시의 요구와 달오름마을이 가진 자연과 문화가 제대로 맞아 떨어졌다"며 "적막하기만 하던 농촌이 어떻게 도시와 공생함으로써 생기를 얻을 수 있는가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고 말했다.
황태상 운영위원장은 "테마마을을 시작한 뒤 소득 증대는 물론 주민들 사이에 우의도 더 돈독해져 이웃 마을들이 앞다퉈 배우러 온다"며 "규모를 늘리는 대신 내실 있는 운영으로 테마마을 운영이 주민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도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남원= 최수학기자 sh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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