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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한국일보 신춘문예 희곡 당선작/ 청혼하려다 죽음을 강요당한 사내 - 김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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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한국일보 신춘문예 희곡 당선작/ 청혼하려다 죽음을 강요당한 사내 - 김수정

입력
2005.01.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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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물 = 남자1, 남자2, 여자

◆ 무대 = 규모가 큰 식당의 설거지실. 무대 앞은 테이블을 들여 놓을 경우에도 배우들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비워두고 무대 후면에 설거지실이 구조화 된다.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홀(객석에서 봤을 때 무대 왼편)과 연결 되어 있어 빈 그릇이 선반을 통해 들어온다. 무대 오른 편은 상가의 창고와 복도로 연결 된다. 싱크대는 나란히 있는데 남자1과 남자2가 관객을 보며 일을 할 수 있도록 한다. 싱크대 옆으로 설거지가 끝난 그릇들을 쌓을 수 있는 건조대가 있다. 건조대 위에는 향수병 두 개가 놓여 있다. 건조대 옆으로 벽에 고급스러운 정장 한 벌이 걸려 있다.

남자1은 밀려들어오는 빈 그릇을 싱크대에 밀어 넣으며 중얼대고 있다.

남자1:젠장, 그만 먹어 치우란 말이야. 당장 그만 두지 않으면 오줌통에 이것들을 모두 담가 버릴 수도 있다는 걸 알아야지. (더욱 요란하게 그릇들을 싱크대 안으로 넣어 버린다. 무대 밖에서 시끄럽다는 핀잔의 말들이 들려온다) 나도 이 놈들 입을 다물게 했으면 좋겠어. (하던 일을 멈추고) 뭐야. 나더러 어쩌라고. (자신의 옆을 보며) 이 자식은 또 어딜 간 거야. 하루 종일 사라졌다 나타나고 사라졌다 나타나고. (그릇이 들어오는 선반에 얼굴을 내밀고) 거기서 뭘 하는 거야. 어서 들어와. (관객을 보며) 바보같은 놈. 또 실없이 웃고 있어. 세상에 웃을 일이 뭐가 있다는 건지 모르겠어. 웃을 일이 대체 뭐야? (유심히 관객을 둘러보고) 왜? 웃겨? 날 비웃는 거야? (자신을 타이르듯) 오! 그만해. (다시 설거지를 한다) 그릇을 다 엎어 버리기 전에 어서 들어와.

남자2:(웃으며 등장) 자리를 오래 비워서 미안해. 지배인이랑 할 얘기가 있었거든. (싱크대로 달려들어 일을 시작한다)

남자1:그만 웃어. 네 주둥이에 이걸 모조리 쳐박기 전에. 보너스를 준다든지 봉급을 올린다든지 그런 게 아니라면 그만! 그만! 웃는 얼굴을 보면 날 비웃는 것 같아서 기분이 더러워.

남자2:지금은 보너스 줄 시기도 아니고 봉급은 저번 달에 올렸잖아.

남자1:그래, 이번 달 달력엔 빨간 숫자라곤 주말 밖에 없어. (사이) 봉급은 저번 달에 올렸다? (한 숨)

남자2:널 비웃는 게 아냐. 내가 기분이 너무 좋은 거야. (휘파람을 분다)

남자1:미치겠군. 대체 오늘 하루 종일 자리를 비우고 멍청하게 웃는 이유가 뭐야.

남자2:빨리도 묻네. 지배인이 오늘 여길 빌려 준대.

남자1:빌려줘? 식당을?

남자2:아니, 이 설거지실을 오늘 밤에 빌려 준대. (사이) 혹시 안 된다고 하면 어쩌나 하루 종일 손에 일이 안 잡혔어.

남자1:오늘 밤에 여기서 뭘 하려는 거야. 밤새도록 설거지라도 하려는 거야. 넌 미쳤어.

남자2:청혼!

남자1:(일손을 멈추고 남자2를 쳐다본다) 난 결혼했다.

남자2:(일손을 멈추고 남자1을 바라본 후 더욱 크게 휘파람을 불며 헹궈 낸 그릇을 건조대에 쌓는다. 율동까지 섞으며 일을 하다 그만 향수병 하나를 떨어 뜨려 깬다)

남자1:(고무장갑을 아무렇게나 팽개치고 박살 난 향수병에 달려든다. 울먹이는 목소리) 아쿠아 드지오 옴므! 오늘 이걸 뿌리는 날이야.

남자2:미안해. (조심스럽게 남자1에게 다가가다가 코를 움켜쥔다) 지독하군.

남자1:(정색을 하며) 뭐야?

남자2:아니, 미안해.

남자1:이게 어떤 건지 알아? 판테델리아 섬에서 영감을 얻어서 만든 그야말로 시같은 향수야. 비싸서 사지도 못하고 벼르고 벼르다 산지 일주일 됐어. 고작 일주일.

남자2:그렇게 위태롭게 놓여 있는 줄 몰랐네.

남자1:항상 놓여 있던 자리에 어제처럼 놓여 있었어.

남자2:기분이 좋아서 신경을 못 썼나봐.

남자1:허. 네가 기분이 좋은데 왜 내 향수를 깨는 거야. 그것도 제일 비싼 걸, (선반대의 빈 그릇이 밀려들며 홀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뭐 하는 거야.') 내가 지금 일하게 생겼어.

남자2:내일 똑같은 걸로 사줄게. 오늘은 다른 걸 뿌려.

남자1:아까도 말했지만 이걸 뿌리는 날은 오늘이야. 우리 마누라가 연구실에서 늦게 오는 날 이걸 뿌려줘야 좋아해.

남자2:억지 부리지마. 난 오늘 청혼해야 할 사람이야. 그 따위 향수 사러 갈 시간 없어. (홀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빈 그릇 치워') 네. (그릇을 개수대에 넣는다) 그런 식으로 억지 부린다고 산산조각난 향수병이 어떻게 된다든? 이 지독한 냄새가 뭐가 좋다는 거야.

남자1:억지라니. 박살낸 게 누군데. 네가 향기가 뭔지 알기나 한 놈이니. 여기서 나가면 네 놈 몸에서 시궁창 냄새나는 건 알기나 해? 그 꼴로 청혼을 한다고?

남자2:차라리 시궁창 냄새가 나아. (코를 움켜쥐고 참을 수 없다는 듯) 시라고는 한 줄도 모르는 놈이 시적인 향수를 뿌리면 뭐가 달라진대.

남자1:(벽에 걸린 양복을 가리키며) 이 양복에 향수 몇 방울이면 그게 바로 시야. 여자들이 정신을 못 차리지. 그게 시가 아니고 뭐야.

남자2:(빈 그릇을 정리하며) 그만 떠들고 와서 일해.

남자1:못 해. 너 혼자 해.

남자2:(쌓여 있는 그릇을 무너뜨리며) 미안하다고 했잖아. 그래 너는 시고 난 시궁창이다. 됐냐.

남자1:누가 그걸 모르냐. 난 조용히 사라져 줄 테니까. (앞치마를 벗는다) 혼자서 속 편하게 일하셔. 우린 안 어울려. (나가려 한다)

남자2:(버럭 화를 내며) 야.

남자1:(깜짝 놀라 그 자리에 서서 돌아본다)

남자2:절대 못 가. 나도 안 해. 못해.

남자1:왜 그래? 오늘은 원래 내가 빨리 가는 날이라는 거 잊었어? 괜히 억지 부리는 게 아니야.

남자2:원래 빨리 가는 날이라니!

남자1:오늘은 내가 건물 청소 하는 날이야. 그러니 빨리 가는 날이 맞지? (돌아 나가려 한다)

남자2:(빈 그릇이 밀려든다) 말은 똑바로 해야지. 원래는 하루 종일 떠드는 이 것들을 다 씻어내고 쓰레기 버리고 여기 청소하고. 전부 너랑 나랑 같이 해야 하는 거야. 네가 하도 죽을상을 해서 내가 양해를 구해준 거잖아. 네가 휙 가버리고 나면 나 혼자서 이걸 다 정리해. 그래도 봉급은 똑같잖아. 내가 손해 보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널 위해서 내가 배려하고 있다는 걸 잊었나 보지. 그렇다고 네가 건물 닦고 번 돈으로 나 술이라도 한 번 사준 적 있어?

남자1:그래. 치사하게 나오겠다는 거지.

남자2:치사한 게 아니라 네가 먼저 원칙을 말 했잖아. (빈 그릇 들이 밀려들다가 바닥으로 무너져 내린다. 잠시 침묵. 서로 노려본다)

남자1:그래서 나더러 오늘 남아서 끝까지 일 하라는 거지.

남자2:그러니까.

남자1:(말을 자르며) 내가 하루 종일 여기서 설거지하고 저녁에 6층짜리 건물까지 닦고 나면 녹초가 될 거라며 일주일에 두 번 일찍 가라고 한 건 너야. 내가 원한 게 아니라 네가 그렇게 하길 원했다고. 쫀쫀한 놈. 그런데 오늘부터는 끝까지 일하고 가라고?

남자2:전후 사정이 불명확해 지는 것 같으니까 한 번 따져 보자는 거지. 오늘부터 끝까지 남아서 하라고 한 적은 없다.

남자1:그럼 가면 되는 거지? (나가려 한다)

남자2:잠깐. (쌓인 그릇을 보고) 오늘은 안 돼.

남자1:쳇, 손해 보는 것 같아서 속이 꼬이나 보지.

남자2:아니라니까.

남자1:아니긴 뭐가 아니야. 너 혼자 남아서 저걸 다 치우려니까. 약 오르는 거잖아.

남자2:아니야. 오늘은 나도 바빠서 그래.

남자1:많고 많은 날 중에 왜 오늘 바쁘실까.

남자2:아까 말했잖아. 오늘은 내가 청혼하는 날이야.

(중략)

여자:(청혼이라는 말에 당황하며) 아, 청...청혼 하는 날. (흥분하여) 친구가 청혼을 한다고 했단 말이죠? 청혼$

남자1:(의아한 듯 여자를 보다가) 그래요. 내 양복을 빌려줘서 당신은 화가 나겠지만 청혼하는 날은 중요한 날이잖아요. 비록 여자가 당신처럼 멋진 사람은 아니지만, (목소리를 죽여) 밤무대에서 노래를 한다는군요. 그렇고 그런 여자예요.

여자:(어쩔 줄 몰라하며 무대를 오간다)

남자1:화가 많이 난 거요?

여자:(마음을 숨기며) 그래요. 화가 나서 미치겠어요. 그 꼴을 하고 어딜 갔다 온 거죠. 누가 당신을 알아 봤을까봐 겁나네요. 당장 옷을 벗어요.

남자1:이런 모습을 누가 봤을까봐 겁이나요? 잠시. 아주 잠깐 동안 입고 있었을 뿐인데. 그렇게 화가 난단 말이요?

여자:그걸 말이라고 해요? 거울을 한번 봐요. 마음껏 비웃어 주고 싶으니까. 오늘도 하루 종일 학교에서 시달렸는데 당신을 보고 편히 쉬지도 못하다니.

남자1:내 꼴이 당신을 역겹게 했구려. 지금쯤 서재에서 책을 보고 있어야 할 당신 마음을 휘저어 놨으니 어쩜 좋지.

여자:책 속의 글자들이 온통 벌레처럼 기어 다닐 것 같아. 소름이 돋아.

남자1:(여자를 유심히 보고) 당신 치마가 짧아졌구려. 화장은 짙어지고. 가슴은 위태롭게 드러냈어. 천박해. 길바닥에 뒹구는 쓰레기 같은 여자같잖아.

여자:(그제야 자신의 차림을 깨닫고 옷매무새를 고친다)

남자1:이런 꼴로 어딜 다녀오는 거요. 학생들 앞에서 이걸 입고 강의를 하진 않았겠지. 쇼라도 했소. 무슨 쇼를 했는지 나도 보고 싶구려.

여자:수… 수업이… 수업이 너무 딱딱해서 좀 부드럽게 보이려고 했을 뿐예요. 당신이 요즘 학교 분위기를 모르니까 그런 식의 막말을 하는 거라구요. 동료 교수들도 훨씬 보기 좋다고 했고 아이들도 좋아 했어요. 나란 사람이 워낙 딱딱하다 보니까 강의가 효율적으로 전달되지 않는다는 건 당신도 알고 있잖아요. 이제부턴 계속 이런 식으로 다닐 텐데. 당신 눈엔 쓰레기로 보이니 어떡하죠.

남자1:오호. 난 책상에 앉아서 돈이나 세고 있으니 그런 지성의 공간이 요즘 어떻게 돌아가는 지 알 길이 없죠. 그런데 여보. 나도 내일부턴 계속 이런 역겨운 옷을 입고 출근 할 생각인데 당신은 날 벌레 취급하니 어쩌죠.

(잠시 침묵)

여자:이상하군요. 당신 친구 말로는. (사이) 옷을 빌려준 사람은 이 곳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라고 했는데.

남자1:(사이, 어색한 웃음) 그 녀석은 농담을 잘해요. 그런 시시한 농담을 한다니까. (다급하게 남자2를 찾으려 한다) 친구를 찾아서 왜 그런 소리를 하고 다니는 지 따져야겠어. 어딜 갔나.

여자:(자신의 뒤에 쓰러져 있는 남자2를 힐끗 보고) 그러게요. 그런 농담은 하지 말라고 해야겠어요.

남자1:친구를 찾아 봐야겠소. (무대 왼편으로 나간다)

여자:(남자1이 나가는 것을 확인하고 여자는 남자2를 울먹이며 테이블 밑으로 밀어 넣어 숨긴다) 청혼을 하려고 했군요. 내 사랑. (흩어진 국화를 보고) 그래서 이 꽃이 오기를 기다렸군요. 당신은 안절부절못했지. (사이) 당신이 남편의 친구일 거라고 생각도 못했어요. 알았다면 일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텐데. 난 이제 어쩌면 좋죠. 몸이 바스라질 것 같아요. (쓰러질 듯 휘청한다. 사이 관객을 향해) 당신과 결혼은$ 미안해요.

남자1:(무대에 등장하다가 테이블 밑으로 빠져 나온 남자2의 발을 본다. 비명을 지른다. 여자는 놀라 정신을 차린다) 사람$ 사람이 죽었어. (달려들어 테이블을 치운다) 내 양복을 빌려 입은 친구가 죽었소.

여자:여보. 죽은 건 아닐 거예요. 잠시 기절을 했다거나. 너무 놀랐다거나 그럴 수 있잖아요.

남자1:(남자2의 가슴에 귀를 기울이고) 심장이 굳었어.

여자:아니에요. 사람이 순식간에 죽을 리 없잖아요.

남자1:여보. 당신 얼굴이 말이 아니야. 이런 꼴을 보이다니. 놀라게 해서 미안해. 그런데 나도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모르겠어. 오늘은 이상한 일들만 일어나는군. (남자2의 손을 잡으며) 그 여자가 네 청혼을 받아주지 않은 거니. 아님 살인이라도 일어난 거야?

여자:(놀라며) 살인이라뇨. 그런 일은 없었어요.

남자1:당신은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세상에는 그런 일이 많아요.

여자:오늘은 그런 일 일어나지 않았어요!

남자1:당신 신경이 예민해진 것 같아요. 어서 홀에 나가 앉아 있어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여자:(지쳐 거의 쓰러질 듯 무대 왼편으로 걸어 나간다)

남자1:이런, 얼굴이 온통 된장 범벅이야. 그 여자가 너한테 무슨 짓을 했는지 알 것 같아. (조금씩 울먹이며) 이렇게 어이없이 네가 죽다니. 죽다니. 죽다니. 오! 넌 이해 할 수 없는 놈이지만 그래도 어딘지 따뜻하고 옆에 있으면 편했는데. 우린 친구였잖아. 널 위해서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사이) 그 여자를 내가 봤다면 가만 놔두지 않았을 거야. 양복은 네가 입고 가렴. 그래도 마지막에 내가 너한테 줄 수 있는 게 있어서 다행이다. 하지만 너 때문에 우리 마누라가 눈치 챌 뻔한 건 끔찍했어. (남자2의 품에 안겨 울부짖는다) 몸이 돌처럼 굳었구나. 이 몸이 썩어 들어가면....

남자2:(정신을 차리고 품에 안긴 남자1을 본다) 뭐해.

남자1:(놀라 남자2로부터 떨어진다) 왜 안 죽어.

남자2:내가 죽어?

남자1:네 심장은 뛰지 않았어.

남자2:네 귀가 먹었겠지.

남자1:(귀를 후벼댄다) 몸이 얼음장 같았다니까.

남자2:찬 바닥에 누워있으니 그렇지. (기절하기 전의 상황을 기억하고 두리번대며 여자를 찾는다) 그녀는 어딜 갔지. 그냥 가버렸을 리가 없는데. (홀로 나가 보려고 한다)

남자1:(남자2를 잡으며) 거긴 안돼.

남자2:그녀가 기다릴 거야. 그러고 그냥 갔을 리 없어. 분명 이유가 있었다구.

남자1:안돼. 내 말 잘 들어. 내가 왔을 때부터 그 여자는 없었어. 그리고 밖에는 내 마누라가 있어. 넌 내 마누라한테 헛소리를 했더구나. 농담이었다고 말해.

남자2:(남자1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남자1:내 부인이 왜 왔냐면. 글쎄, 네가 입고 있는 양복을 보고 나라고 착각을 한거야.

남자2:그녀가 좋아하는 연두빛 국화를 받고. (바닥에 흩어진 꽃을 보고) 그녀가 이걸 보고 얼마나 맘 아파했을까. (주섬주섬 모아든다) 내가 꽃을 받는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지.

남자1:내 말 잘 들으라니까. 우리 마누라한테 내가 여기 온 이유는 너한테 빌려준 이 양복을 받으러 온 거야. 알아들었어? 너한테 양복을 빌려 준 건 설거지하는 네 동료가 아냐.

남자2:절대. 주방에서 설거지하는 내가 싫어서 그런 게 아냐. 그년 행복하다고 했어. 절대 네 말이 맞을 리 없어.

남자1:홀에 있는 여자가 묻거든 절대로 내가 여기서 일하는 걸 말해선 안돼. 난 금융업에 종사하고 너하고는 친구고 오늘은$

남자2:(홀로 나가려 한다) 연두 빛 국화를 줘야해.

남자1:(남자2를 잡으며) 내 말 알아들은 거지.

남자2:아직 청혼도 하지 못했는데.

남자1:내 말 알아들었냐고. 이 멍청아.

남자2:어디가 아픈 건 아니겠지.

남자1:헛소리 그만해. 마누라한테 다 들통 나게 생겼어. 내 결혼이 너 때문에 엉망이 되게 생겼다구.

남자2:난 네 마누라를 못 봤어.

남자1:(말이 채 끝나기 전에 남자2를 주먹으로 친다. 남자2는 그 자리에 쓰러진다)

여자:(남자2가 넘어지는 소리에 놀라 무대 등장) 여보.

남자1:정신을 차리게 하려고 밀어 봤는데 진짜 죽었소. (긴장된 침묵) 경찰 부르고 집으로 갑시다.

여자:(사이) 정말 죽었나요.

남자1:오늘 너무 많은 일이 있어서 기력이 없구려. 당신 너무 창백해요. 경찰이 오면 전말이 밝혀지겠지.

여자:(걱정스레 남자2를 보다가) 경찰이요? (사이, 넋이 나간 듯) 빨리 집으로 가요.

남자1:경찰이 오기 전에, 경찰이 오기 전에 집으로 갑시다. 일이 복잡해질 거요.

여자:그래요. 여보.

남자1:(쓰러질 듯한 여자를 부축해서 나간다) 저 놈이 죽기 전에 또 실없는 농담을 했소. 당신을 못 봤다지 뭐야.

여자:아! 정말 농담을 잘하군요. (사이. 무대를 빠져 나간 뒤 소리만) 여기선 당신 향수 냄새가 나고 당신한테선 시궁창 냄새가 나요.

남자1:(혼자 뛰어 들어와 앞치마에서 향수를 꺼내 뿌려대고 뛰어 나간다)

끝.

■ interview/ "연극의 사람냄새가 날 사로잡아"

김수정(25·사진)씨는 스스로를 내성적이고 소심한 편이라고 했다. 그런데도 어울림이 좋단다. 책으로, 활자로 만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직접 관객과 대면할 수 있는 연극이 좋다는 것이다. 대학 졸업반 30명 가운데 희곡을 공부하는 이는 달랑 2명. 번역극에 밀려 창작극이 설 자리가 갈수록 초라해지는 현실까지 계산에 넣고 보면 ‘맨땅에 헤딩’하자는 듯 느껴질 때도 있단다. "그래도 왜 희곡이고 연극이냐고 묻는다면, 사람냄새가 가장 진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라고 말하겠어요."

그는 10대 때부터 시를 썼고 그러자고 문예창작을 전공했지만, 대학 1학년 때 이만희씨의 작품집을 읽은 이후 쭉 희곡에만 몰두해온 경우다. "뭐라 설명할 순 없지만 눈이 확 뜨이는 것 같았어요." 그 느낌의 실체를 따져 묻는 것은 무의미해 보였다. 생의 어느 국면에 느닷없이 직면하게 되는 팔자 같은 것. 본인이 그렇다면 그냥 그런 것이다.

하지만 그는 희곡보다 연극을, 세상을 먼저 알고싶다고 했다. "그래서 지난 여름부터 부산의 한 극단에 들어 밑바닥에서 차근차근 ‘노동’을 배우고 있습니다" 그가 말하는 ‘노동’이 곧 스스로 좋다고 말한 ‘어울림’이다. 그는 그 어울림 속에서 연극과 세상을 배우고, 희곡을 쓸 것이라고 말했다. "사람을 생각나게 하는 희곡을 쓰고 싶어요."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1980년 부산 생. 2005년 순천대 문예창작과 졸업예정

■ 당선소감/ 풀잎 하나 웃음 한번으로도 소통이…

네팔의 사랑곶을 향해 나는 산을 오르고 있었다. 중턱을 지났을까. 길가에 세 아이가 앉아 서로의 머리를 빗겨주며 웃고 있었다. 아이들은 나를 발견하고 저희들끼리 키득대며 웃고 수군댔다. 나는 그 웃음과 수군거림이 궁금해 ‘헬로우’ 하고 말을 걸었지만, 아이들은 인사를 하기는커녕 더욱 큰 소리로 웃기만 했다. 그러더니 이렇다 저렇다 말도 하지 않고 나를 끌고 저희들이 앉아있던 곳으로 갔다. 짧은 영어로 내 소개를 해 보았지만 들은 척도 하지 않았고, 조금 전에 저희들이 놀던 방식으로 모자를 벗겨 내 머리칼을 빗겨주거나 나뭇잎을 뜯어 팔뚝에 붙여주었다. 사진도 네 판이나 찍고 웃기도 많이 웃었다. 아이들은 영어를 할 줄 몰랐고 우린 말없이 그 시간들을 함께 보냈다.

사람의 소통은 언어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웃음 손길 마음 눈빛 하늘 풀잎 침묵…. 예술이 모두 그러하겠지만 연극작업은 특히나 사람과 사람이 하는 작업이고, 소통이 단절되면 이루어 질 수 없는 작업이다. 매 순간 사람을 이해해야 무대에 작품을 올릴 수 있다. 그러한 것을 관념으로 이해하지만, 이번에도 언어만으로 작품을 썼다.

제 멋대로인 딸 덕분에 가슴에 칼집 하나를 숨기고 있을 부모님. 항상 다투기만 하는 동생 수겸이. 따뜻하게 손잡아 주시던 곽재구 선생님. 부족한 작품이지만 관심 가져 주셨던 김길수 선생님. 연극을 고민하게 해준 극단 새벽 식구들. 조약돌 선배님들. 후배들. 희곡 같이 쓰면서 따뜻한 밥 해준 정화. 그리고 어릴 적부터 나를 봐온 친구들. 모두에게 감사 드린다.

■ 심사평/ "연출을 한다면?" 자문으로 최종 택일

최종적으로 논의에 오른 작품은 이춘강의 '들숨 날숨', 김수정의 '청혼하려다 죽음을 강요당한 사내', 박소영의 '저녁의 고백', 김특영의 '방문객', 황복구의 '눈사람'이었다.

이 가운데 '눈사람'과 '방문객'은 이야기를 풀어가는 호흡과 언어가 나름대로 돋보였으나, 극적인 요소가 부족하여 결말이 허약하다는 느낌을 주었다. '저녁의 고백'은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성숙된 시각이 감동을 줄 만하나, 과거의 사연으로 현재를 풀어가는 극적 수법이 다소 상투적이라는 지적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경합한 두 작품은 각각 뚜렷한 장점을 가지고 있었다. '들숨 날숨'은 압축된 언어로 깊이 있는 주제를 끌어가는 힘이 돋보였으나, 문둥이와 사미승이라는 소재 인물의 설정이 너무 전형적이지 않은가 싶었다. '청혼하려다…'는 마침 '그때, 그곳에서, 그 사람이' 등장하는 식의 억지스런 구성이 오히려 소극의 장점으로 빛을 발하는, 독특한 구성감각을 보여주고 있다. 언어 또한 경쾌하되 천박하지 않았다. 다만 다소 거칠고 빈 구석이 보여 조금 더 정제될 필요는 있는 작품이다. 이 두 작품을 두고 끝까지 결론을 내리지 못하던 심사위원들은 "만약에 연출을 한다면 어떤 작품을 택하겠는가?"라는 질문에 둘 다 '청혼하려다…'를 짚었다. 당선되지 못한 분들도 언젠가는 희곡 작가로 활약할 재목들임을 믿는다.

심사위원= 박상현 박근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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