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의 목이 민주주의의 상징이던 때가 있었다.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암울한 유신독재 아래 민주투사 김영삼씨는 외쳤다. 고통스런 시대가 낳은 함축성 있고 멋진 말이었다. 한참 늦어지긴 했어도 마침내 새벽이 왔고, 그는 ‘문민정부’의 대통령이 되었다. 닭은 가늘고 긴 모가지를 금관악기처럼 힘껏 구부려서 기상나팔을 분다. 한 번으로 성이 차지 않으면 몇 번이고 반복 연주하여, 한밤의 어둠과 적막을 금 가게 한다.
■ 고려 왕실은 닭 우는 습관을 새벽 시보(時報)처럼 이용하기 위해 닭을 여러 마리 키웠다고 한다. 여러 날 먼 길을 떠나는 사람이 시간을 알기 위해 작은 닭을 지니고 갔다는 기록도 있다. 닭 울음의 이미지는 이른 시간이나, 처음, 태초 등과 관련이 있다. 독립지사 이육사의 시 ‘광야’는 닭 울음소리를 아득한 과거에 연결시킨다.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이 의지적인 시는 조국광복이라는 미래에 가 닿는다. 닭 울음소리에는 현재의 고통을 이기게 하는 희망의 메시지가 들어 있다.
■ 2005 을유년(乙酉年), 닭의 해가 되었다. 닭과 친숙한 우리 민족에게는 난생설화도 많다. 박혁거세는 알에서 태어났고, 김알지가 탄생할 때 숲에서 닭이 울었다 하여 그 숲을 계림이라고 하였다. 들닭이 3,000여년 전 동남아 지역에서 인간에게 길들여진 이후, 닭은 인간에게 아낌 없이 주는 가축이 되었다. 단백질이 풍부한 고기와 달걀, 침낭용 닭털, 포장마차를 이용하는 서민을 위한 닭발의 특미까지 종합적으로 주었다. 물질적인 것 외에 시보 역할의 울음과 관상의 즐거움, 민주주의의 상징성마저 제공했으니 어찌 길조가 아니랴.
■ 닭 울음소리를 들으면, 고향에 온 듯이 반가움이 솟는다. 그러나 우리의 닭에 대한 마음 씀씀이는 인색하거나 부정적인 편이다. 고집이 센 사람을 조롱하는 ‘닭 고집’이라는 속담이 있다. ‘닭 대가리’라는 표현은 또 어떤가. 아프리카 속담에서는 가축과 더불어 살아가는 인간의 따뜻한 시선이 느껴진다. ‘암탉은 유방이 없어도 체온으로 병아리를 키운다.’ ‘자기 알을 쪼는 암탉은 없다.’ 닭의 해에 닭 요리만 발달시킬 게 아니라, 닭에게서 좋은 점을 배웠으면 한다.
박래부 수석논설위원 parkrb@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