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가 국내기업 최고경영자(CEO) 50명에게 새해 경제전망을 물어본 결과 절반 가까이가 ‘L’자형 장기불황 국면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라고 답했다. 하반기 들어 ‘U’자형의 완만한 회복을 점친 사람들도 성장률이 4%를 넘기는 힘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동안 쏟아졌던 민·관 연구기관들의 예측과 크게 다르지 않아 새삼스러울 것은 없지만 구체적 답변내용을 자세히 뜯어보면 시사하는 바 적지 않다.
우선 투자와 고용에 대해선 동결 혹은 소폭 확대라는 보수적 관점을 유지했지만 ‘수익이 생기면 투자하겠다’는 응답이 60%를 넘어 ‘내부 유보’나 ‘부채상환’을 압도한 것은 고무적이다. 서민층의 가계소득 감소와 중산층 이상의 지갑닫기에 따른 내수 부진이 새해 경제의 최대 걸림돌이라는 데는 이론이 없다. 그러?정착할 곳을 못찾아 시중에 떠다니는 뭉칫돈이 400조원에 달하고 대기업들은 수출로 유례없는 수익을 올리고 있다. 정부나 기업이 돈의 흐름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환란위기 극복 때와 같은 사회적 분위기가 조기에 형성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CEO들이 경제난 해결의 열쇠를 정부에게 기대하는 것도 이런 맥락일 것이다. 특히 규제완화 등 정책의 일관성을 지켜 시장의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당·정·청으로 나뉘어진 경제팀의 리더십을 분명히 해 시장의 예측가능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은 정책당국자들이 꼭 새겨들어야 한다.
아울러 CEO 10명 중 4명이 정부 정책을 반기업적이라고 보는 것에도 유념하기 바란다. 노무현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우리사회의 양극화 문제를 푸는 데는 여와 야, 진보와 보수, 성장과 분배가 따로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 점에서 재계는 시장에서 소외된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고 정부는 보다 실용적인 관점으로 재계와 소통해야 한다. 희망의 싹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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