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새해 첫 새벽 연 여성 버스기사 조옥자씨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새해 첫 새벽 연 여성 버스기사 조옥자씨

입력
2005.01.03 00:00
0 0

2005년 1월1일 새벽 3시30분. 알람 시계가 요란스럽게 새해 첫 잠을 깨웠다. 서울 강동구 강일동과 수서경찰서를 오가는 3413번 지선버스 기사 조옥자(42·여)씨는 허겁지겁 옷을 챙겨 입었다. 중3 딸에게 "아침 잘 챙겨 먹으라"는 메모를 남기고 서둘러 안개속으로 나갔다. 새벽 4시. 집에서 10분 거리인 강일동 차고에서 하루를 함께할 ‘애마’를 살폈다. 와이퍼에서 배기구까지 이상이 없음을 확인한 뒤 출근부에 도장을 찍었다. 경쾌하게 시동 키를 돌리니 오전 4시30분. 을유년 새벽을 맞는 13년차 시내버스 기사 조씨의 희망을 들어 보았다.

"새해에는 서민들이 살기 편한 세상을 만들어주세요."

핸들이 버거워 보이는 아담한 체구의 조씨가 대형운전면허를 따고 운전대를 잡기 시작한 것은 결혼 4년차였던 1990년. 어려워진 살림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어 동네 학원에서 버스 운전을 배웠다. 조씨는 92년 시내버스 회사(서울승합)의 문을 두드렸다.

"당시만 해도 버스기사 가운데 여자는 흔하지 않았죠.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버스에 오르다 저를 보고 그냥 내리신 적도 많았다니까요." 하지만 버스기사로 일하면서 조씨는 여자이기 때문에 힘들었던 일보다 보람된 일을 더 많이 기억하고 있었다. "한번은 자정이 다 되어가는 시각에 초라한 행색의 젊은이가 운전석 뒤로 다가와 불쑥 말을 걸더군요. 실직한 듯한 행색이었는데 나를 보면서 힘을 얻었다면서 불쑥 고맙다는 말을 하더라구요. 여자의 몸으로 버스운 전을 하는 모습에서 희망을 찾았다나요."

지난해는 시내버스 기사들에게 격동(?)의 한 해였다. 건국 이래 처음으로 단행된 버스노선·체계 개편으로 낯선 길을 달려야 했고, 개편 초기 시민들에게 욕도 많이 들었다. "개편 첫 달에는 어리둥절해 하는 손님들 안내하느라 진땀 좀 흘렸어요. 하지만 제시간에 다니니 버스를 타도 약속시간을 맞출 수 있게 됐다고 말하는 손님이 많아졌고, 시간을 대기 위해 난폭운전을 하던 기사도 줄어 작업환경은 나아졌어요."

밖에서는 시민의 발로, 안에서는 엄마와 아내로 살아가는 조씨의 생활이지만 의외로 여유도 있다. "버스기사라는 직업이 얼마나 여자들한테 ‘딱’ 인데요. 새벽에 출근하면 낮 12시 무렵에 하루 일을 마칠 수 있고, 그때부터 다음 날 낮 12시까지 전부 자유시간이에요. 이만하면 ‘웰빙 직장’ 아닌가요." 조씨는 회사 산악회 회장과 노조 일까지 맡고 있으면서도 직장생활이 여유롭다고 자랑한다. 사내 화합에 공이 크다며 2003년에는 강동구청장으로부터 공로상을 받기도 했다.

"올해에는 시민이 좀 더 편하게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으면 해요. 아 참! 그리고 대중교통 개편 때문에 피해를 보신 택시기사 분들도 어려움이 없도록 새로운 제도 마련에 신경을 좀 써 주셨으면 좋겠어요."

새해 첫날 여명 속으로 달려나가는 3413번 시내버스의 엔진소리가 새벽 닭 울음처럼 상쾌하다. 조씨의 을유년 첫 운행일지는 설렘으로 시작되고 있었다.

양홍주기자 yangho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