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하는 자녀와 함께 외국에 살면서 불륜에 빠진 아내와 경제적 지원만 해 주고 아내와의 관계를 소홀히 한 ‘기러기 아빠’에게 법원이 가정파탄의 책임을 동등하게 인정, 이혼과 함께 재산을 절반씩 나눠 가지라는 판결을 내렸다.
은행에서 퇴직한 A씨는 1994년 음악에 소질이 있는 두 자녀를 아내와 함께 외국에 유학 보내고 기러기 아빠 생활을 시작했다. A씨는 현지에 아파트를 아내 명의로 구입해주고 학비와 생활비 명목으로 2억4,000여만원을 송금하는 등 경제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운영하던 회사가 부도나면서 A씨는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A씨는 그 와중에도 저축 등으로 마련한 1억원을 추가로 보냈다.
남편이 사업에 실패하고 생활비 등을 제때 보내지 못하자 아내는 함께 외국에 나가자고 권유했으나 A씨는 회사와 소송이 진행 중이라는 이유로 거절했다. A씨가 전재산을 날릴 것을 우려한 아내는 아파트 등을 자기 명의로 이전하고, 주소를 친정으로 옮기는 등 이혼 의향을 내비쳤으나 A씨는 적극적인 재결합 의사를 보이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아내는 2001년 아들의 지도교수와 동거에 들어갔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A씨는 아내를 상대로 이혼 및 재산분할 청구 소송을 제기했고, 아내는 오히려 남편의 경제적 무능과 허황된 행동으로 혼인이 파탄에 이르렀다며 이혼 및 위자료를 청구하는 맞소송을 냈다.
서울가정법원 가사3부(이강원 부장판사)는 2일 "A씨 부부는 이혼하고 부인은 남편에게 4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부인이 외국에 장기 체류하면서 경제적 형편이 어려워지자 관계가 멀어져 혼인이 파탄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며 "양쪽이 대등한 책임이 있으므로 재산을 절반씩 나누는 게 옳다"고 밝혔다. 부인의 위자료 청구는 "이유 없다"고 기각했다.
이진희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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