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섯 자녀와 오순도순 홍덕영씨 부부
성탄 전야인 지난달 24일 저녁. 3남3녀의 자녀를 키우는 홍덕영(40·양천구 신월동)씨 가정. 셋째인 성준이(8)와 넷째 성연이(6), ‘왈패’ 소리를 듣는 다섯째인 성경이(4)가 잠시라도 가만있질 않아 온 집안을 들쑤시며 돌아다닌다. 장남이 성민이(14)는 막내인 성현이(생후 3개월)를 재우느라 바쁜 엄마 이은숙(38)씨가 "미사 가야지"라고 채근해도 졸음에 겨운지 작은방에 누워 움직이질 않는다.
조용한 성격인 장녀 성아(12)는 주위의 부산함에 아랑곳하지 않고 책에 정신이 팔려 있다. 케익으로 조출한 성탄파티를 열자 집안은 팀絹湧?노래소리로 가득했다.
천주교 성당에서 만나 결혼한 지 14년째. "생명을 거부해서는 안 된다"는 종교적 신념으로 피임을 하지 않아 2, 3년 터울로 낳은 아이들이 어느새 6남매. 홍씨 부부는 "무슨 고생을 하려고 매번 아이를 낳느냐"거나 "지금은 좀 고생되지만 키우고 나면 보람이고 힘이 된다"는 친지의 타박과 격려를 번갈아 받곤 했다.
둘째 아이 때까지 사진관을 했던 이씨는 "성격이나 재능이 6인 6색인 아이들을 볼 때마다 신기한 생각이 들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며 "교육의 원천은 가정에 있기 때문에 아이들을 두고 돈을 좇고 싶지는 않다"고 말했다. 이젠 장녀인 성아가 어린 동생들을 챙겨줘 엄마 일손을 크게 덜어준다고 한다.
컴퓨터 학원을 경영했던 홍 씨가 2002년 부도를 맞은 데다 교통사고까지 겹치면서 가정이 큰 고난을 겪기도 했다. 지금은 수도원에서 후원사업 관리를 하고 있는 홍씨는 "아이들이 있었기에 어려움도 견딜 수 있었다"며 "여성의 경제·사회적 진출도 소중하지만 아이 키우는 일의 경제적 가치도 그 못 지 않다"고 비교우위론을 폈다.
■ No Kids… 알콩달콩 장청수씨 부부
비슷한 시간. SK생명 생활설계사인 이혜경(39)씨는 서둘러 퇴근을 하고 남편 장청수(37·SK생명 지점 소장)씨와 함께 외식 준비를 했다. 결혼 4년째의 맞벌이로 전형적인 딩크족(Double Income No Kids)인 이씨 부부는 금요일 저녁이면 가까이 있는 친정 부모와 함께 저녁식사를 하고 주말에는 무조건 떠난다. ‘집안에 가만히 있으면 손해’라는 게 이씨의 생각. 대부분 목요일쯤 계획을 잡지만 즉흥적으로 떠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이씨는 "늦게 결혼을 한 데다 결혼 초기 유산까지 해 자녀에 대한 간절함은 없다"며 "출산에 대한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자유로운 신혼(?)의 재미에 만족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씨는 남편이 장남이라 마음의 부담이 있지만 시부모로부터 출산 압력을 받아본 적은 없다고 했다.
정진황기자 jhchung@hk.co.kr
■ 전국 가구 15%가 자녀 없어/ "결혼해도 아이 필요없다" 15%
자녀에 대한 가치관은 확실히 변했다. 자녀가 더 이상 인생의 필수영역이나 행복의 조건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인터넷에 딩크족 모임은 동호회 만큼이나 많다. 반면 30대와 40대 초반에서 다출산 가정은 주변에서 거의 찾아보기 힘든 실정이다.
한국여성개발원이 지난해 전국 3,500가구를 대상으로 한 가족조사에 따르면 자녀 없는 가정이 무려 15%에 달한다. 이들 중에는 자녀 갖기를 일시 연기하거나 혹은 불임 등 불가피한 사유가 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상당히 높은 수치다.
결혼하면 자녀가 필요한가에 대한 질문에 응답자 7,622명 가운데 15.3%인 1,164명이 필요 없다고 대답했다. 불필요하다는 대답은 10대(24.4%), 20대(26.9%)로 갈수록 많았고, 기혼(12%)보다는 미혼(29.8%)이 두 배 이상이나 돼 무자녀(NO Baby) 가정은 향후에도 더욱 늘어날 공산이 크다.
"무자녀는 많은 고민과 아픔 속에서 택한 아름다운 선택입니다." 한 인터넷 사이트의 딩크족 카페(cafe.daum.net/ dink) 대문에 걸린 ‘대한민국 무자녀 가정 선언문’. 출산을 선택으로 여기는 이유는 다양하다. 결혼 4년째로 맞벌이 부부인 CJ홈쇼핑 김우진(35) 과장은 "아내 역시 일에 대한 욕심이 크고 2세를 가져도 될 만한 준비도 안돼 있다"며 "과도한 사교육비 등 지금의 교육여건을 감안하면 2세를 제대로 키워낼 수 있을지도 염려가 된다"고 말했다. 출산으로 부부가 하고자 하는 일을 못할 바에야 출산을 포기하자고 부인과 약속했다는 이승엽(38·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연구원)씨. 결혼 12년째로 부인이 박사과정에 있는 이씨는 "남편은 뼈빠지게 일하면서도 생활비와 자녀 과외비에 쪼들리고, 부인은 아이들에 묶여 지내는 게 정상적이라 할 수 있느냐"며 "무자녀가 최선은 아니라도 차선은 될 수 있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나 홍씨 가정과 마찬가지로 종교적 이유로 6자매를 둔 성신여대 박영근(42·미술과) 교수. 넷째 딸이 백혈병으로 고생하기도 했던 박 교수는 "미래나 사회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자녀를 선택사항으로 생각하는 데는 일부 공감되는 부분도 있지만 기쁨과 어려움을 함께 하는 데 가족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주변의 맞벌이 부부가 우리 가족을 보고 출산을 결심한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한국여성개발원 장혜경 가족보건복지연구부장은 "IMF 이후 고용불안 등 사회 불안정성이 높아지면서 자녀에 대한 가치관이 크게 변한 것으로 보인다"며 "자녀가 주는 기쁨에 대한 생각을 접고 부부의 삶을 우선하는 인생관이 확산되는 등 총체적 변화가 생겨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김승권 연구기획조정실장은 "향후 다출산 가정은 줄고 무자녀 가정은 더 늘어나겠지만 인간본능적 측면에서도 무자녀 가정이 사회적 주류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 고교 졸업까지 1인당 양육비 1억6,934만원
세계 최저수준으로 하락한 저출산(2003년 출산율 1.17명)의 가장 큰 원인은 경제적 부담이다. 그렇다면 부모와 미혼자녀로 이루어진 일반가정에서 고교졸업 때까지 자녀에게 들어가는 비용은 얼마나 될까.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03년 전국 4,534가구의 18세 미만 자녀 8,000명을 대상으로 한 자녀양육비 조사결과에 따르면 일반가정에서 출산에서부터 고교졸업 때까지 자녀 한 명에게 들어가는 총 비용은 1억6,934만4,000여원에 달했다. 월 평균으로는 78만4,000원이며 연 평균으로는 940만8,000원. 자녀양육비는 교육비, 식료비, 보건의료비, 피복비, 주거비, 교양오락비, 통신비 등 10개 항목이며 가족공통비용 중 자녀몫과 순수자녀양육비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일반가정의 평균 자녀수가 1.78명임을 감안하면 일반가정에서 고교졸업 때까지 자녀양육에 드는 총비용은 3억110만원이고 월평균으로는 139만4,000원에 달했다. 일반가정의 월 소득이 296만4,000원이고 월 평균 소비지출이 239만8,000원임을 감안하면 소득의 47%를 자녀양육에 사용하고 있다.
특히 자녀양육비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교육비의 지나친 지출이다. 자녀양육비용을 지출항목별로 볼 때 순수하게 자녀에게 들어가는 월 비용(82만4,000원) 가운데 60.5%인 49만9,000원이 교육비에 들어가고, 이 가운데 27만7,000원이 사교육비다. 결국 교육비 문제가 가장 큰 경제적 부담인 셈이다. 실제로 이들 가정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가장 어려운 경제문제로 주거비(9.2%)나 공과금(8.0%), 식료품비(4.6%)보다 훨씬 높은 비율로 교육비가 포함된 자녀양육비(28.9%)를 꼽았고, 이에 버금가게 사교육비(27.2%)부담을 호소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김승권 박사는 "적어도 아동양육에 따른 경제적 부담을 사회가 상당부분 책임지지 않을 경우 출산율을 회복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정진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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