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유년(乙酉年) 새해가 밝았다. 육십갑자는 음력으로 따지는 것이 원칙이긴 하다. 그래서 을유년이 정식으로 시작되는 것은 설날, 양력 2월9일이다. 그러나 육십갑자도, 해를 따질 때는, 보편의 중력에 끌려 일상적으로는 점차 양력에 흡수되고 있는 듯하다. 그러니 오늘 을유년이 시작되는 것으로 치자.
직전 을유년은 1945년, 해방의 해였다. 그 해에 설립된 출판사 하나는 을유문화사라는 이름을 달고 있다. 그러고 보니 올해가 해방 예순 돌이다. 해방 60년을 되돌아볼 때, 한국인들은 사뭇 자부심을 가져도 될 것 같다. 끔찍한 내전과 가혹한 군사정권 같은 곡절을 겪기도 했지만, 한국인들은 그 기간에 세계가 놀랄 만큼 경제를 키우고 정치적 민주주의를 정착시켰다. 지금부터 꼭 백 년 전이 절망과 분노 속에서 우리 국권을 외세에 넘긴 을사년(乙巳年)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지난 60년 동안 한국인들이 이룬 성취는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 비록 지난 을유년에는 합쳐져 있던 민족이 지금은 둘로 갈라져 있지만, 그리고 북쪽 사정이 여러 모로 을씨년스럽긴 하지만, 남과 북의 관계가 큰 틀에서 화해와 협력의 길로 들어서고 있는 것은 또렷해 보인다. 해방의 기쁨을 맞았던 바로 그 을유년처럼, 이번 을유년에도 남북의 한국인들 전체가 기뻐할 일이 생기길 기원한다.
올해는 닭의 해다. 자신이 옥사(獄死)하고 을유 해방이 된 뒤에야 활자화할 수 있었던 한 시를 이육사는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광야(曠野)'라는 연으로 시작한 바 있다. 사람의 자취를 대유(代喩)할 만큼 닭은 인류와 가까운 동물이었던 것이다. 물론 닭으로서는 그것이 큰 불행이었다. 제 고기만이 아니라 알까지 갖다 바쳐야 했으니 말이다. 아, 정초부터 동물해방전선 대변인 노릇을 자청하고 싶진 않다. 두루 근하을유(謹賀乙酉)!
고종석 논설위원 aromachi@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