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아들이 건강하게 자랐으면 하는 마음으로 쿠키를 만들었습니다. 이젠 모든 이들이 행복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쿠키를 굽는답니다." 다운증후군 아들을 위해 어머니가 손수 만든 쿠키에는 정성과 사랑이 가득했다. ‘사랑의 쿠키’는 아들을 살려냈으며, 남편을 잃고 암으로 투병하던 여인의 삶을 이끌었으며, 힘들고 어려운 이들을 위하는 ‘희망의 쿠키’가 됐다.
전은희(50·부산 대연3동)씨가 아들 김신일(19)군을 위해 쿠키를 굽기 시작한 것은 17년 전. 유전적 이상으로 지능이 떨어지는 다운증후군에다 심장판막증·척추이상, 게다가 눈물샘이 막혀 늘 안약을 넣고 지내야 하는 두살배기 신일이가 간식거리를 찾기 시작할 때부터였다.
다운증후군 아이에게 설탕은 좋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전씨는 설탕이 없는 쿠키를 만들기 시작했다. 요리잡지를 사서 모으고, 요리전문가 하선정씨의 책도 빼놓지 않고 읽었다. 소량만 들어가는 소금도 오염되지 않은 히말라야산 소금을 수입해서 썼다. "몸에 조금만 이상이 생겨도 다운증후군 아이들은 상태가 더욱 악화한답니다. 제주도 백련초부터 북한산 오미자까지 직접 눈으로 보고 재료를 구하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을 뒤지고 다녔지요. 그것만이 제가 아들에게 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불행은 해일처럼 밀려왔다. 남편이 운영하던 중견 건설업체가 외환위기를 맞아 부도가 났다. 충격으로 남편은 자리에 누웠고 2001년 세상을 뜨고 말았다. 졸지에 생계를 걱정하게 된 전씨는 시장을 돌아다니며 행상 노릇까지 했다. 지쳐가던 전씨에게 또다른 시련이 겹쳤다.
2003년 시장에서 몸을 다쳐 병원에 입원했다가 자궁암 판정을 받았다. 온몸의 기운이 쑥 빠져나갔다. "온몸에 붕대를 동여매고 병상에 누운 엄마를 본 신일이는 어디를 껴안아야 할지 모르는지 여기저기 더듬거리기만 했어요. 제대로 말을 못하던 신일이가 ‘엄마 죽지마’라고 하더군요. 다시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아들에게 쏟는 정성으로 만든 ‘건강 쿠키’는 조금씩 입소문을 탔다. 이웃과 인근 시장에서 몇 봉지씩 사가던 것이 알려져 최근 부산 롯데호텔에서 주문을 받았다. 전씨는 ‘NCC(Natural Cookie & Cake)’라는 이름으로 정식 사업자등록을 했다. 홈페이지(www.incc.co.kr)도 생겼고, 지금은 여성용품 홈쇼핑 ‘행복이 가득한 집’과 ‘풍동 가는길’(경기 고양 풍동) 등 전국 커피숍에도 납품하고 있다.
포장 디자인은 신일이의 작품이다. 면과 선의 개념도 없던 아들에게 그림을 가르치기 위해 수백 번도 넘게 같은 말을 반복한 결과였다.
올해 신일이는 대학에 디자인 전공으로 수시 입학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서도 수업을 받지 못해 혼자 운동장에서 놀던 신일이가 하루는 ‘엄마, 나도 글 읽고 싶어요, 글 쓰고 싶어요’라고 했을 때의 감동을 잊을 수 없습니다. 미술과 한자교육까지 함께 따라다니며 가르쳤습니다." 전씨는 아들의 노력이 너무 고마웠다고 했다.
"전례가 없는 데도 기꺼이 신일이의 입학을 허락해 준 마산 창신대 정명훈·김종곤 교수님께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꼭 꿈을 이루어야지요. 쿠키도 더욱 맛있게 만들고요.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전씨는 아들과 같은 다운증후군 아이들의 그림을 전시하고 부모들끼리도 서로 도움을 줄 수 있는 화랑을 만드는 게 꿈이다.
신기해기자 shink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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