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 질서와 무질서, 성장과 소외는 지난 한해 국제 사회의 흐름을 관통한 키워드였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테러와 이라크 땅에서의 혼란, 북한과 이란의 핵 위기, 인종학살, 가난과 질병을 앞에 두고 우리는 세계가 과연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물어야 했다. 세계의 흥망과 질서의 변화를 학문의 중심으로 삼아온 폴 케네디 예일대 역사학 교수를 만나 올해의 국제 정세 전망과 미래 역사의 방향을 들어봤다. 인터뷰는 지난 연말 예일대 캠퍼스 내 그의 연구실과 부근 자택에서 있었다. 케네디교수의 말을 상하로 나누어 게재한다.
-2005년엔 어떤 문제들이 국제사회를 지배할까.
"이라크와 주변국인 시리아 이란 문제에 높은 관심이 지속될 것이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사이엔 약간의 진전이 이뤄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져보자. 러시아와 유럽 국가사이에는 많은 어려움이 예상된다. 한쪽에는 중동의 분쟁, 한쪽에는 러시아와 유럽 국가의 갈등으로 세계가 아프리카의 재앙을 다룰 수 없는 상황이 무엇보다 염려된다. 여기에 북한 정권을 둘러싼 퍼즐은 한국의 민주주의는 물론 동북아의 안정과 예측 가능성에 심각한 도전이 될 것이다. 2005년 세계는 결코 유쾌하지 않을 것 같다."
-북한 정권이 가까운 미래에 붕괴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는데….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동서독이 통일했을 때 나는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는데 당시 나는 남북한의 통일에 대해 다소 낙관적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북한이 더 완고한 지도력과 내부 통제력을 유지하는 경찰국가라는 결론에 도달해야 한다. 이것이 두 개의 한국을 쉽게 통합하는 것을 막게 될 것이다. 나는 가까운 미래 두개의 한국이 평화적 통일을 이루기보다는 북한의 내부 위기, 아마도 식량 위기나 심리적 위기를 보게 될 것을 우려한다. 절망적인 상황에 놓인 근본주의적 정권들은 그들이 무너지고 있다고 느낄 때 대량살상무기를 사용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지역의 다른 나라들을 참여토록 하는 정책이 매우 중요하다. 현명한 외교가 절실하다. 서울과 워싱턴은 중국과 러시아의 외교적 지원을 얻기 위해 값을 치르게 될 것이다."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하나.
"워싱턴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미국에 우크라이나에서 물러설 테니 체첸 사태를 비난하지 말고 더 이상 중앙아시아에 군사 기지를 세우지 말라고 말할 것이다. 중국은 인권 상황이나 티벳 문제를 다루는 방식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지 말라고 얘기할 수 있다. 한국이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미국 정부로부터 그런 요구를 받게 될 것으로 본다."
-조지 W 부시 미 행정부엔 북한 핵 해결의 유일한 길이 북한 정권의 붕괴라고 주장하는 목소리가 있다.
"네오콘들은 세상을 흑백으로만 보고 적과 동지를 가르는 이분법적 견해에 집착, 미국을 위기로 몰고 있다. 그런 미국에 한국을 포함 동맹국이 놀라는 것을 충분히 이해할만하다. 이라크 상황이 더욱 나빠지고 있고 1월 30일 선거가 성공할 여지가 크지 않자 네오콘은 이제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을 공격하고 있다. 솔직히 말해 미국의 군사력은 과도하게 산개해 있다. 딕 체니 부통령이 북한 정권을 제거해야 한다고 말한다면 리처드 마이어스 합참의장은 더 이상 한국에 보낼 군대가 없다고 말하게 될 것이다. 이런 점은 네오콘이 북한 정권 교체를 요구하더라도 그것이 미국의 대외정책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그런 정책은 너무 위험하고 위태롭다. 네오콘들이 부시 정부를 떠나 법률회사나 싱크 탱크 등 민간 부문으로 옮기는 것은 흥미롭다."
-부시 정부 2기에선 네오콘의 영향력이 줄어들 것이라는 말인가.
"콘돌리사 라이스 국무장관 내정자는 콜린 파월 장관처럼 독자적인 힘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나는 그녀가 조정자로서의 역할을 할 것이라고 믿는다. 집권 2기 부시 대통령에 대한 내각의 영향력은 줄게 되고 대신 외부로부터 압력이 오게 될 것이다. 중동의 난제들, 러시아와의 문제들, 유럽과의 불편한 관계, 불어나는 재정적자, 달러화의 폭락, 동아시아 국가들의 미묘한 대미 감정, 북한과 이란의 핵 문제, 이런 모든 문제가 부시의 책상에 올려질 것이다. 네오콘이 부시 대통령에게 이란을 공격하고 다음에 북한을 공격해야 한다고 말하면 라이스 장관은 이미 당신의 책상 위에 충분한 문제가 올려져 있다고 말할 것이다. 그게 나의 희망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공화당 정강은 여전히 선제 공격론을 택하고 있고 부시 대통령도 재선 확정 후 일방주의를 포기하지 않을 것임을 강조하지 않았나.
"나는 2년 전 예방적 전쟁 독트린에 대해 쓴 적이 있는데 여전히 그게 유효하다고 본다. 가령 한국이 북한 탱크가 휴전선을 넘어오고 있다는 점을 알게 될 때 국제법상 한국은 그것을 멈추게 하기 위해 선제공격을 하는 것이 허용된다. 그러나 예방적 행동을 취하는 것은 국제법상으로 불법이다. 부시가 미국의 행동에 어떤 제약을 두지 않겠다고 말할지라도 미국의 이라크에 대한 예방적 전쟁이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란이나 북한 시리아에 대해 예방적 행동을 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
-그러면 2기의 부시 대통령이 취해야 할 대외정책의 방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독일 통일의 위대한 지도자 비스마르크 재상에게서 부시 대통령이 따라야 할 역사적 전범을 본다. 1861년 프러시아의 재상에 오른 이후 10년 동안 그의 대전략은 공격적이고 확장 지향적이었다. 그가 제2제국을 세웠을 때 그는 변했고 ‘비스마르크 2’가 됐다. ‘비스마르크 2’는 훨씬 외교적이었다. 그는 유럽과의 갈등을 원치 않았고 전쟁이 아니라 평화를 유지하는 것이 그의 목표가 됐다. 나와 함께 예일대에서 ‘대전략’을 강의하는 존 개디스 교수가 지난 8월 백악관에서 부시 대통령을 만났는데 그 때 부시 대통령은 비스마르크가 첫 임기 후 어떻게 외교적 조정자가 됐는지에 관해 관심을 보였다. 이 점은 부시 대통령이 우리가 염려하는 것보다는 훨씬 온건한 정책을 취할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역사 속의 자신의 위치를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가 부시의 다른 얼굴을 보게 된다는 말인가.
"그럴 것이다. 부시 대통령은 재선 후 첫 방문한 캐나다에서 온건한 발언을 쏟아냈는데 그게 국제사회와의 관계 회복을 원하고 있다는 첫 신호이다. 한국일보는 가까운 시일 내 그가 유럽과의 관계를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보도를 하게 될 것이다."
-미국과 유럽과의 관계 회복이 제 궤도를 탈 것으로 보는가.
"두개의 중동 문제 즉 팔레스타인과 이라크 문제가 가장 큰 장애가 될 것이다. 팔레스타인의 온건 지도자들이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총리와 협상하고 샤론이 강경 정책을 누그러뜨리면 유럽은 미국을 지지할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라크의 계속적인 혼란이다. 유럽 국가들, 특히 독일과 프랑스는 이라크에서 혼란이 계속되고 미국이 주도하는 체제 아래서는 군대와 원조 요원을 보내지 않을 것이다. 유엔도 내전의 한 가운데로 요원들을 보내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정말로 많은 것이 이라크 문제에 달려 있다."
-네온콘들이 이라크 전쟁을 중동 민주화 확산의 기회로 이용하려 했다면 별로 성공해보이지 않는데….
"그들에게는 두 가지 동기가 있었다. 하나는 미국을 중동 지역에 굳건하게 뿌리내려 샤론 정부에 이슬람 극단주의들로부터 이스라엘을 보호한다는 확신을 심어주는 것이었다. 보다 주요한 동기는 독재 정권을 제거하고 미국식 민주주의를 심을 수 있다는 본보기를 다른 아랍 세계에 보여주려는 것이었다. 이것은 공격적이고 야망으로 가득찬 이상론이다. 대부분의 중동 전문가들이 그 일은 불가능하다고 말했지만 그들은 사담 후세인을 제거하면 이라크 국민들이 환영하고 그래서 민주주의 국가를 세울 수 있으며 미군은 몇 달 내로 떠날 수 있다는 몇몇 전문가들의 입맛에 맞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것은 거대한 계산 착오였다. 그런데도 부시 대통령을 포함 그 누구도 실수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은 흥미롭다. 그들은 여전히 어떤 유리한 징후만을 보려고 한다. 미국은 네오콘의 행동 때문에 너무 비싼 대가를 치르고 있다."
-그렇다면 미군을 이라크 땅에서 철수해야 한다는 말인가.
"나는 미군의 철수를 원하지만 혼란과 내전의 와중에 그들을 빼내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이란과 북한 같은 국가들에게 잘못된 메시지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미국이 더 이상 다른 문제에 뛰어 들려고 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이런 상황을 이용해 핵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미사일 발사 시험을 해도 괜찮겠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것은 한국 정부에도 커다란 걱정 거리가 된다.
-좀 더 시각을 넓혀보자. 지금 미국은 ‘강대국의 흥망’에서 지적된 제국적 과잉팽창(Imperial Overstretch)의 상황을 맞고 있는 것인가.
"나는 1980년대 그 개념을 생각해 냈고 네오콘들은 그것을 아주 싫어했다. 내가 쇠락주의자로 불렸던 것을 기억하나. 1990년대 소련의 도전은 사라졌고 일본 경제의 도전도 후퇴했으며, 유럽은 같은 상태로 머물고 미국 경제는 매년 3~4%씩 성장했다. 그래서 네오콘들은 ‘케네디가 틀렸어. 제국적 과잉 팽창이란 없고 영원히 우리는 넘버 원이야’라고 말했다. 그런데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부시 정부는 거대한 재정적자를 기록했고 중국과 한국 일본에 수십억 달러의 연방 채권을 매각함으로써 재정 적자를 메우고 있다.
또 11월 미국의 무역적자는 500억 달러였다. 경제 무역과 재정 측면에서 미국은 점점 더 300년 전 제국적 오점을 답습하고 있다. 달러 가치는 점점 더 하락하고 있다. 그것은 제국적 과잉팽창이 부활하고 있다는 하나의 신호이다. 또 다른 조짐은 군사적 임무와 약속의 과잉 팽창이다. 내 계산에 따르면 미국은 미국 밖, 세계 130개국에 36만8,000명의 병력을 산개하고 있다. 내 주장의 핵심인 과잉 팽창에 대한 두 척도, 즉 경제는 상대적으로 약해지고 있고 군사적으로는 너무 많은 분쟁에 개입해 있다. 그 두 가지는 여전히 유효하다."
-그렇다면 미국은 앞으로도 계속 초강대국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겠는가.
"미국은 거대한 힘을 갖고 있다. 네오콘들이 그 힘을 과장하고 잘못 사용하고 있어 문제이지만 그것이 곧 미국이 약하다는 뜻은 아니다. 무엇이 미국의 힘인가. 미국의 인구는 중국이나 인도보다는 많지 않지만 자원의 효율적 분배 측면에서 훨씬 균형 잡혀 있다.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큰 연구시설과 대학, 기술을 가지고 있어 세계의 다른 나라로부터 인재를 끌어 모으고 있다. 둘째로 미국은 천연자원과 농업 자원 광물과 석유 금속 목재로 가득찬 거대한 영토를 지니고 있다. 셋째로 유연한 민주적 시스템을 지적할 수 있다. 나는 이번 선거 결과를 좋아하지 않지만 선거는 민주적으로 치러졌고 아무도 내전을 상정하지 않는다. 넷째 미국은 가장 유리한 지정학적 위치를 지니고 있다. 한 쪽엔 태평양, 다른 쪽에 대서양을 대하고 우호적인 캐나다 멕시코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이런 지리적 여건과 인구, 천연자원, 탁월한 기술 교육 등의 결합은 21세기에도 미국이 강력한 위치를 고수할 것임을 의미한다. 군사력을 너무 팽창해 스스로 손상을 입히는 게 문제지만 말이다."
-미국은 전쟁을 치른 뒤에 약 달러 정책을 통해 단기간에 경제적 헤게모니를 회복하는 정책을 취해 왔다. 지금의 약 달러 기조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나.
"미 재무부가 약 달러를 즐기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것은 인플레이션을 감소시키고 미국의 소비자들은 한국과 중국 일본 유럽산 제품을 싼 가격으로 살 수 있다. 그러나 이전 시대와는 한가지 분명한 차이가 있다. 지금의 약 달러는 막대한 재정적자와 관련이 있다. 1차 대전과 2차 대전 후 미국은 강한 달러 정책을 실시했고 모두가 달러를 원했다. 지금 중동의 산유국은 달러를 투매하고 금과 석유를 서방에 팔고 있는 러시아는 유로를 원하고 있다. 미국을 외국의 채권 구매에 의존하게 하는 약 달러 정책은 위태롭기 짝이 없다."
-중국과 미국이 동북아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서로 대치하는 상황을 예상하는가.
"장기적 국면에서 우려해야 할 사안이다. 앞으로 10년, 15년 동안 중국은 대만이나 러시아 인도가 자극하지 않는다면 조용히 경제를 성장시키기를 원할 것이다. 중국이 장기적 성장에 성공하면 미국만큼 경제적 거인이 될 것이다. 미국이 ‘넘버 2’가 되고 있는 중국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가 문제다. 두 번째 우려는 중국이 매년 국방비를 증액, 첨단 실크 웜 미사일이나 핵 잠수함 등 군사력 증강과 군사 시스템 구축에 투입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이 앞으로 20년 동안 매년 그렇게 증강하는 상황을 가정한다면 중국은 아마 서부 태평양과 극동에서 상당한 해군력을 보유하게 되고 미국의 전략적 힘은 상대적으로 줄게 된다. 중국이 내전이나 불안정으로 무너지지 않는다면 이런 상황 변화는 불가피하다고 본다."
-중국의 부상이 결국엔 동북아에서 미국의 안보 역할에 대한 도전이 될 수 있다는 얘기인데….
"중국의 군사력은 어떤 나라도 미국에 도전하지 못할 것이라고 선언한 2002년 네오콘들의 미 국가안보전략, 이른바 ‘월포위츠 독트린’에 대한 위협이 될 것이다. ‘월포위츠 독트린’은 얼마나 비현실적인가. 정글 속 아기 코끼리가 매일 풀을 먹고 자라고 있다. 코끼리가 크는 것을 막을 수 없듯이 중국의 성장을 막을 수 없다. 문제는 미국과 같은 현재의 강국과 중국 인도 같은 성장 강국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이냐는 것이고 바로 나의 저서 ‘강대국의 흥망’에서 다룬 중심 주제이기도 하다. 부상하는 중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진전시킬 수 있느냐가 향후 미국의 과제이다. 우호적이고 경제적 통합에 관심을 두고 전쟁을 피하려는 메카니즘을 갖게 될 중국과 말이다. 향후 25년 사이 미국과 중국 사이의 분쟁보다 한국에 더 심각한 영향을 미치게 될 요소를 생각할 수 없다."
■ 폴 케네디 교수는 누구
폴 케네디 예일대 교수(60)의 연구실과 자택에는 전함(戰艦) 그림들이 유독 많이 걸려 있다. 19세기 5대양을 누볐던 영국 해군 함대들이다. 학자와 전함.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요소는 케네디 교수가 평생을 두고 매달려온 연구 주제,‘대전략(Grand Strategy)’이라는 화두 속에서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역사에 점멸해온 대제국들의 역동을 전략의 개념으로 꿰뚫어온 영국 태생의 학자에게 대영제국의 전성을 구가하게 했던 군사력의 표징은 그의 세계 인식에 영감을 불어넣은 훌륭한 자극제가 됐는지 모른다.
1987년 케네디 교수가 ‘강대국의 흥망(The Rise and Fall of the Great Powers)’을 발표했을 때 세계 지식인들은 환호했다. 냉전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었던 그 무렵 경제력과 군사력을 변수로 강대국 흥망의 패턴을 해명한 케네디의 이론은 세계 패권의 방향을 호기심있게 지켜보던 그들의 지적 갈증을 풀어주었다. 이 책은 뉴욕 타임스 집계 30주 연속 논픽션 부문 베스트 셀러에 오르면서 40대 초반의 케네디를 석학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그는‘강대국의 흥망’에서 미국과 구 소련과의 값비싼 군비 경쟁은 양국의 멸망을 재촉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예견은 4년 뒤 구 소련이 해체됨으로써 부분적으로 실현됐지만 현재의 관점에서 보면 그는 ‘영험한’ 예언가는 아니었다. 미국의 몰락을 내다보면서 그 자리를 일본이 차지할 것이라는 그의 예견은 빗나갔다. 그러나 케네디 저술의 의도는 미래의 예측이 아니었다. 그의 진정한 목적은 경제적 힘과 군사적 힘의 상관관계를 분석, 강대국 흥망의 의문을 푸는 것이었다.
케네디는 1500년대 이후 강대국의 흥망성쇠에서 ‘제국적 과잉 팽창(Imperial Overstretch)’이라는 개념을 추출했다. 민생에 분배할 자원을 과도하게 군비에 투입하는 제국은 멸망할 수 밖에 없다는 그의 결론은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 이후 군비확장에 열을 올리는 미국에 여전히 유효한 경고로 남아 있다.
그는 연구의 영역을 21세기를 진단하는 쪽으로 확장하고 있다. ‘강대국의 흥망’의 후편 격인 ‘21세기의 준비(1993년)’에서 그는 초국가적 힘들, 예컨대 자연재앙과 인구증가, 환경의 변화, 기술정보혁명 등이 세계를 혼란에 빠뜨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케네디 교수는 영국 뉴캐슬 대학에서 역사학을 공부하고 옥스포드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영국에서 강의를 하던 중 1983년 미 예일대로 옮겨 현재 이 대학 국제안보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그는 도미한 지 2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영국 국적을 갖고 있다. 기사(騎士) 다음의 영국 왕실 서훈(Commander of the Order of the British Empire)을 수여받은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고 그의 비서가 귀띔했다. 영국로열아카데미 회원이기도 한 그는 올해 6월까지 영국에 머물며 유엔 관련 연구서를 집필할 예정이다.왜 유엔을 연구하느냐는 질문을 던졌더니 "21세기 인류가 불확실한 문제들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국제기구의 활용이 중요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뉴 헤이번(코네티컷주)=김승일특파원 ksi810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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